신동빈 회장이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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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회장이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간 까닭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10월 26일 0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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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의 늦었슈] 회견문 3분여 짧게 낭독…질의응답 없어 현장 '냉랭'

'늦었슈'는 '늦었다'와 '이슈'를 결합한 합성어입니다. 이른바 '한물간' 소식들 중 여전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합니다. 물론 최신 이슈에 대한 날카로운 의견도 제시합니다. 놓치고 지나간 '그것'들을 꼼꼼히 점검해 나갈 예정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사과문과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기자] "앞으로 공부도 잘하고, 숙제도 빼먹지 않고, 편식도 하지 않고, 친구들과도 싸우지 않겠습니다."

평소 말썽이 잦았던 초등학생 철수는 며칠 전 엄마에게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효자가 되겠노라 다짐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 별명을 부르며 놀려대는 친구와 시비가 붙은 게 화근이었습니다.

주먹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얼굴과 팔 군데군데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겼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철수는 엄마의 얼굴도 보지 않고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교차했기 때문입니다.

신동빈 회장은 민망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시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인 자신의 모습이 낮 뜨거웠던 것 같습니다.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게 지난해 8월입니다. 불과 1년 2개월만의 대국민사과 '재방송'입니다. 재계에 이런 전례가 있을까요? 면목이 없을 만도 합니다.

기자들은 술렁였습니다. 질의응답도 생략한 채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가는 신동빈 회장의 모습에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럴 거면 왜 불렀냐"는 불만 섞인 투정도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룹 체질개선'에 방점이 찍혀있는 향후 계획은 지난해 대국민 사과 당시 밝혔던 사안들과 골격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내년 이후 5년간 40조원 투자·7만명 고용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즉, 질문도 답변도 그때와 크게 달라질 것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자들과 신동빈 회장이 동시에 민망해질 수 있는 연결고리가 그의 이른 퇴장을 통해 끊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물어볼 것도 이제 더 이상 없다"는 농담 섞인 대화가 현장에서 오갔을 정도니까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신동빈 회장이) 계획한 것들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내부적으로 팀도 꾸리고 조직정비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지켜봐 주시죠."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의 언급입니다.

신동빈 회장 스스로도 밝혔듯 롯데는 그간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는데 부족함이 있다는 혹평을 받아왔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런 평가를 단박에 뒤집을 만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보면 틀림 없을 것 같습니다. 기회라는 얘기입니다.

국민들 앞에 약속한 사안들을 롯데가 잘 지켜나가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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