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택정책 나아갈 방향은 '양극화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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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주택정책 나아갈 방향은 '양극화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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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말도 못하게 낡았어. 걘 무슨 그런 집에 수십년을 사니."

"언덕은 또 얼마나 험한지 몰라. 그래서 멀쩡한 차를 맨날 바꾸나 봐."

"요즘 나오는 좋은 집들을 봐야 정신 차리지."

지난주 어느 평일 정오가 다 됐을 무렵 지하철 2호선 열차에서 60대 여성 둘과 나란히 앉게 됐다. 이들은 친구 '뒷담화'에 신이 나 있었다. 함께 어느 견본주택을 구경하고 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열차 안이 한산해 귀 기울이지 않아도 속속들이 들렸다.

도마 위에 오른 친구는 오래 전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북서쪽 외곽에 위치한 낡은 빌라에 거주한다고 했다.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남편 고집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는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어영부영 살고 있다고.

여인들은 '그 집에 전기는 들어오냐'는 둥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더니 어느 역에서 내려 사라졌다. 주택시장 재개발∙재건축 훈풍이 내 집까지 미치길 고대하는 '친구 남편' 사연이 낯설지 않았다.

불확실한 경제여건 속에서 안전자산인 부동산에 대한 믿음은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 부동산 파워를 체득했든 아니든, 하나같이 발길이 부동산을 향해 있다. '오르는 곳만 오른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곳도 언젠가는 오른다'는 기대가 공존한다.

당초 서울 주택시장을 달군 건 강남권 재건축 단지다.

매매시장 활황은 청약시장으로 이어졌다. 최근 것만 봐도 청약 결과가 수십대 1 경쟁률은 기본이었다. 인기 있는 곳은 경쟁률이 수백대 1에 이르렀다. 불길은 점차 강해져 강남권을 넘어 서울 전체로, 또 부산으로 옮아갔다.

'8∙25 가계부채 대책'은 타는 불에 부채질을 했다. 당초 정부 의도와 달리 시장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공급이 줄고 대출길이 막힐지 모른다는 염려에 너나 할 것 없이 청약에 나섰다. 8∙25 대책 이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8월 상승률(0.67%)보다 0.54%포인트 높은 1.21%를 기록했다.

8∙25 대책으로 국민들의 금리 부담은 가중됐다. 시중은행이 집단대출을 거부하면서 국내 시중은행들은 작년 3분기 2%대였던 중도금 대출 금리를 최근 연 3.2∼3.6%로 올렸다. 16개 시중은행 중 11곳은 일반신용대출 금리도 인상했다.

'역풍'을 맞은 정부가 새로운 대책의 청사진을 일부 내비쳤다. 특정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해 관리하는 한편 분양권 전매 제한을 강화하고 청약자격을 엄격히 하는 등, 이전과 달리 수요에 직접 손을 대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책들이다.

시장 반응은 역시 빨랐다. 확정 사항이 아닌데도 투기과열지구 후보로 언급되는 지역에서는 거래가 뚝 끊겼다. 투기수요가 재빨리 숨을 죽였다는 의미다. 얼핏 꽤 효과적인 대책 같다.

분양권 전매 제한∙재당첨 제한은 분명 단기성 투기 세력을 잠재우는 효과가 클 것이란 데 이견이 별로 없다.

하지만 투기과열지구 지정은 선례에서 봤듯이, 지정 지역 주변 집값이 지정지역 수준으로 급등하면서 자칫 투기판만 키울 수 있기에 신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풍선효과'는 단기적 현상이며 실보다 득이 많다는 반대 의견도 있다.

당국은 대책마련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보금자리론' 신청 자격이 한시적으로 강화됐다. 당장 이사해야 하는 서민들 발등엔 불이 떨어졌다. 규제가 조여 들기 시작한 상황을 지켜보며 실수요자들은 열심히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집을 사려다가도 이후 집값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다.

투기수요를 솎아내는 동시에 실수요자들이 안심하고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당국의 심도 있는 고민이 요구된다. 잘못된 방법으로는 여윳돈을 굴리는 부유층만 배 불릴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은 점점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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