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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5

 

 
교토, 철학자의 길 위에서

 

끝나지 않은 여름은 막바지 무서운 태양의 파상공세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상에는 아무것도 온전히 남겨둘 수 없다는 듯 빛은 강렬한 직선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2천개가 넘는다는 교토의 절들은 온전히 열기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달아올랐다. 살면서 좀처럼 만날 수 없었던 폭서다. 땀이 흥건히 젖어드는 더위를 헤치고 나는 묵묵히 ‘철학자의 길(哲學者의 道)’을 걸었다. 교토시내의 동쪽을 완만하게 감고 도는 코스다. 가끔 휘어지고 꺾이는 길 양쪽엔 수목이 빈틈없이 장벽을 만들고 있었다. 이 길의 주인공은 교토대학 철학과 교수 니시다 기타로(西田 幾多郞.1870-1945)다. 칸트처럼 어김없이 하루 한번 걸으면서 명상을 즐겼다. 이를 본 동료교수와 후학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메이지 유신이후 개항과 서구화로 국가의 정체성이 혼란을 겪을 때 정신철학의 중심을 잡아준 스승으로 아직도 일본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교토출신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의 말처럼 “철학자의 길은 가장 교토다운 길” 이다.

봄날 짧게 피었다가 꽃이 져버린 벚나무는 무성한 잎으로 개천의 허물을 감싸고 있었다. 가는 방향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거스르는 잉어가 백미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고이 노보리’의 현장이다. 강을 거꾸로 차고 올라가는 잉어처럼 강인한 아이들을 기대하며 그들은 매년 성년의 날을 잉어이야기로 장식한다. 이 길가에 수많은 잉어를 방류시킨 의미를 알 것 같다. 씨알이 굵은 어미와 새끼들이 끝없이 역류에 도전하고 있었다.


   
▲교토 긴가쿠지(銀閣寺) - 난젠지(南禪寺). 철학자의 길.
 


니시다는 대상의 주어들을 비판했다. 아리스텔레스를 재해석해 술어의 방향을 철저히 유화시켰다. 그렇게 해야 만이 무의 장소에 도달하고 그 절대무는 변증법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이해의 개념은 활동으로 얻어진 ‘안다(知)’ 의 세계이지 지각적 한계점의 도달은 애초부터 불가하다. 세계는 우리가 보는 시야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는 아니다 (善의 연구. 1911)” 이는 실존의 개념이 추상적 자기 한정에 머문다고 본 칼 야스퍼스의 현상학과도 상통하는 논리다.

니시다의 철학은 선(禪)불교가 바탕이다. 선종의 참선이 생각의 궁극에 도달한다고 믿었다. 이시가와(石川)현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퇴학당하고 떠나 도쿄대 철학과에 입학한 뒤 매일 참선을 통해 세상을 깨닫고자 했다. “직선적인 것은 통일을 이루고 시간적이다.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이고 객관적인 동시에 주관적이다. 모두가 상대적 세계다. 그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 만다라는 원형의 제단을 의미한다. 우주구성의 원리다. 그는 선종의 원환논리, 불교의 윤회나 회귀, 노자와 주역의 순환법칙 사유를 모두 담아내고자 했다.

세상을 순수한 경험의 실제로 본 사상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형이상학의 근본 바탕을 이루는 동양철학의 기초위에서 절대무의 이론을 논리화 시킨 셈이다. 이 때문에 서양철학의 비판위에 독자적인 일본 철학을 정립시켰다는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자각은 직관이다. 작용하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장소는 행위적 직관의 한정이며, 주체와 객체사이의 대립이 없는 순수한 경험이 근본이다” 이 같은 논리는 군국주의 철학의 기반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역사적 생명론으로 전쟁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니시다 교수가 산책을 시작한 지점. <철학자의 길> 석표.

 

철학자의 길 중간에서 만난 동네화가에게 그림을 하나 샀다. 매일 이 길에 나와 벌써 32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다듬어낸 연필로 철학자의 길을 완벽하게 재현시키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림값을 내미는데도 별 관심이 없다. 그 순간에도 연필 끝은 하얀 종이를 빠르게 매워나가고 있었다. 철사로 동여맨 허름한 낚시의자에 앉아 순례자들에게 ‘니시다의 길’ 을 팔고 있는 그가 마치 선불교의 고승처럼 보였다.

헤겔과 칸트는 세계철학사에 우뚝 서있는 양대 산맥이다. 메이지 유학생들은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이들의 사상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재해석했다. 그 중심에 니시다 기타로가 있었다. 오늘날 동양철학의 한 계보를 형성한 ‘교토학파’ 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벌써 100년 전의 일이다. 국책연구의 중심센터로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교토대학은 일본의 정신문화 그 자체다. 아직도 헤겔과 칸트를 가장 많이 연구하는 나라는 독일, 영국, 일본이 꼽힌다. 니시다를 기리는 철학자의 길 위에서 나는 수많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