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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

 

 
링컨의 협치를 생각한다

 

 

알래스카에는 스워드(Seward)라는 항구가 있다. 아름다운 도시다. 주(州)를 가로지르는 스워드 하이웨이도 있다. 알래스카 사람들은 왜 스워드에 집착할까. 이유는 그가 알래스카를 사들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스워드는 재정 러시아에서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사들였다. 땅 천 평당 1원씩 주고 산 셈이다. 거대한 자원보고를 미국땅으로 만든 영웅이다. 정적 윌리엄 스워드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사람은 바로 링컨이었다. 포용은 그를 미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기억하게 했다.(‘권력의 조건’. 도리스컨스 굿윈 )

발아래로 펼쳐지는 오벨리스크와 수평 광장으로 탁 트인 워싱턴 시가지는 한 여름의 더위에 이글거리고 있었다. 위대한 역사적 대통령 에이브레햄 링컨(Abraham Lincoln.1809-1865)을 추모하는 행렬은 ‘링컨템플’의 오르막 계단을 가득 메웠다. 뜨거운 오후의 태양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아버지를 기념관에서 나마 가까이 만나보기위해 방문객들은 긴 대열에서 인내하고 있었다. 추모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축제였다.

스워드는 링컨의 라이벌이었다. 당시 대선(1860년)에서 공화당내의 가장 강력한 상대였다. 학벌도 경력도 약한 링컨이 최종 후보로 선출되어 대통령까지 올랐지만 초반에는 스워드가 압도적이었다. 파격은 당선 후 벌어졌다. 링컨은 신정부를 구성하면서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었을 정적 스워드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했다. 전당대회에서 그를 캔터키 촌뜨기에 수준이하 인간이라고 뭉개던 라이벌을 정부의 가장 중요한 보직에 앉힌 것이다. 측근들의 엄청난 반대에도 링컨은 그 결정을 바꾸지 않았다.

링컨템플의 옆쪽에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인자한 모습, 다소 긴 물결머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진 좌상이다. 왼쪽에는 남북전쟁을 마치고 희생자들의 추도식에서 행한 그 불멸의 게티스버그 연설 내용이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신의 가호아래 이 나라에서 자유가 새롭게 태동할 것이며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는 이 땅위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워싱턴DC 링컨 기념관에서.
 

오른쪽 벽으로 시선을 돌려 링컨의 감동적인 대통령 취임사를 몇 번이나 읽었다. 남북으로 갈라서고 백인과 노예로, 보수와 진보로 갈기갈기 찢겨진 아메리카를 위해 비장하게 호소했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에게 자비심을 베풀며, 올바른 것을 보도록 신이 우리에게 내린 단호함을 바탕으로, 정도를 따르면서, 우리의 임무를 위해, 이 나라의 분열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두 힘을 합해야 합니다”

링컨 포용정치의 정점은 남북전쟁을 이끌 국방장관에 최고의 정적 스탠튼을 기용한 것이었다. 윌리엄 스탠튼은 같은 변호사 출신이면서 10여 년 동안 그를 끝없이 괴롭히고 비하한 원수지간이었다. 참모들의 극렬한 반대에 링컨은 “스탠튼 만한 인물을 데려오면 국방장관을 바꾸겠다” 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혜안은 적중했다. 스탠튼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1865년 워싱턴 포드극장에서 저격당한 링컨은 맞은편 가정집으로 급히 옮겨져 임시 보호되었다. 이때 링컨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은 스탠튼이었다. 다음날 링컨이 숨을 거둔 뒤 스탠튼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시대는 변하고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온 역사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그 이름은 오래도록 영원할 것이다”
 


   
▲뱀파이어 헌터 주연 영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장면.


남북전쟁이 끝난 뒤 링컨은 공화당 강경파들에 맞서 남군의 어떤 지휘관도 처벌하지 않았다. 모든 영광은 부하들에게, 책임은 항상 자신에게 있다는 자세를 지켰다. 보복보다는 화해가. 강요보다는 설득이, 비난보다는 칭찬이 공동체를 평화롭게 만든다는 신념의 결과였다. 44명의 대통령들이 지나갔지만 생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은 링컨이 유일하다.

워싱턴을 떠나 명연설의 현장을 향했다. 펜실베니아의 광활한 대지는 끝이 없었다. 2시간 만에 도착한 게티스버그(Gettysburg)는 평온했다. 낮은 언덕으로 이어지는 전투지(베틀필드)는 무성한 초록 속에 묻혀 있었다. 치열했던 전쟁은 끝났고 노예들은 해방되어 미국의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였다. 희생자들의 묘지를 만들고 민주주의 정부의 원리를 설파한 링컨의 추억만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도 북군의 조지 미드도 이미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사방은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이다.

링컨은 150년 전 사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포용과 협치는 빛나고 있다. 만델라가 따랐고 오바마가 택했다. 링컨의 길은 오늘날 모든 지도자들에게 근본 물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들어야 평화롭다는 상생정신은 불멸의 진리다. 스워드나 스탠튼 뿐만이 아니었다. 체이스 재무장관도 야전사령관 맥클레런 장군도 링컨을 죽도록 미워했지만 결국은 등용되어 승복했고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여기에 링컨의 위대함이 있다. 그 위대한 협치를 한국에서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justin-7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