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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18세기를 고집하는 사람들, 아미쉬

 

 

푸른 창공에 점점이 떠있는 조각구름이 마치 동화나라 같았다.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완벽한 청정하늘이다. 집집마다 지붕위로 솟아오른 사이로(silo.건초저장고)는 오후의 햇빛에 반사되어 목가적인 전원풍경을 소박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간간히 오가는 마차만이 마을의 정적을 가로질렀다. 사방으로 뻥 뚫린 벌판은 시선의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진초록이 넘실대는 무성한 밀밭, 여름기운이 왕성한 옥수수밭을 지나 아미쉬 마을로 접어들었다.

위성턴에서 몇시간 차를 몰아 펜실베니아 랭카스터에 들어섰다. 문명을 등지고 살아가는 아미쉬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기위해 오랫동안 벼르던 길이었다. 아미쉬(Amish) 마을(스트라스버그)은 ‘미국의 청학동’이다. 18세기 방식으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침례교의 한 종파다. 1693년 스위스의 야콥 암만(Jacob Anman)이 이끈 종파 분립의 결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종교 커뮤니티다.

유럽의 군국주의와 종교박해를 피해 신세계 미국으로 떠나온 사람들이 그들 방식대로 전통의 틀 속에서 살고 있다. 20만 명의 아미쉬들은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그리고 이곳 랭커스터에 가장 많이 거주한다. 내가 이곳을 동경한 것은 언론사 입사 무렵(1984) 장안을 휩쓸었던 해리슨 포드 주연의 아미쉬 배경 영화 ‘위트니스’도 한몫했다. 인간의 서로 다른 신념들이 충돌할 때 벌어지는 갈등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묘사된 명작이다.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바기(Buggies 마차)에 올랐다. 1시간동안 마을을 ‘훔쳐보기로’ 했다. 흰 머리 수건과 블라우스가 달린 검은색 치마 원피스(아미쉬 전통의상)를 입은 쥬디가 고삐를 당겼다. 마차는 들판으로 난 시골길로 서서히 움직였다. 검게 그을린 목덜미가 남자 이상이다. ‘건장한 여장부’의 마차는 중세의 리무진이다. 그녀는 또랑또랑한 영어로 보이는 모든 것을 설명했다. 세탁기를 쓰지 않는 손빨래와 아침마다 소젖을 짜는 이야기며 남자들은 왜 모자를 쓰고, 젊은 청년인데도 수염을 기르는지, 여인들의 퀼트는 어떻게 만드는지 등에 대해서.



   
▲아미쉬마을의 여성 마차꾼 쥬디와 함께.

 

“아미쉬 사람들은 교회가 없어 서로의 집을 돌아다니며 예배를 본다. 학교에서는 나이 든 상급생이 어린 아이들의 숙제를 돕고 들판에서는 함께 일한다. 야구나 축구같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즐긴다. 그들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 그래서 고독하고 결핍되며 소외된 사람들이 적다. 그들 삶속에서 시장과 경쟁은 저만치 멀리 있다. 대신 호혜의 정신과 자연 친화가 알차게 살아있다” (존A 호스테틀러. ‘아미쉬 사회’)

동네 마구간에 들렀다. 코를 감싸 쥐고 싶은 냄새가 어린 날 시골정취로 다가와 오히려 정겨웠다. 건초를 꺼내오고 밭을 가는 일들이 이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직접 짜낸 아침우유로 쿠키(아미쉬 브라우니)를 만들고 그것을 내다 파는 꼬마들의 작업이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8학년까지만 학교에서 배우고 남은 인생은 각자 농사를 지으면서 순박하게 살아간다. 지식보다 지혜를 택하는 셈이다. 18-9세에 결혼하고 곧바로 수염을 기른다. 우상숭배를 혐오해 절대로 사진을 찍지 않지만 그녀는 나에게 여러 번 셔터를 허락했다.

전화, 전기, 인터넷이 없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검소하게, 청렴하게 사는 게 하느님을 따르는 가장 올바른 삶의 방식으로 믿고 살아간다. 농사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 외부세계와 단절하여 아미쉬만의 전통을 고수한다. 옛 독일어를 사용하고 겨자에 버무린 돼지수육과 후라이드치킨 같은 요리, 쿠키가 주로 식탁에 오른다. 요즘은 체험민박이 생겨 문명에 지친 도시인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미쉬의 번영이냐 쇠퇴냐를 고민하는 침묵의 담론과 자기실현이나 개인적 성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언어적 담론이 그것이다.
 


   
▲펜실베니아 랭카스터 아미쉬 사람들의 외출모습.


“어린이들이여 부모님께 순종하라. 이것이 곧 주님을 기쁘게 하리니.” 마을을 돌아 나오는 두 번째 집 벽에 새겨진 글귀다. 효는 동양의 전유물이 아닌 듯하다. 그런 이들이 500년 전통에 따라 세속과 분리되어 폭력 없이 평화롭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곳이다.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가 문명으로 돌아가는 지름길인데도 느리게 느리게만 흘러가는 아미쉬의 시간은 나의 온몸을 흠뻑 적시고 스며들었다.

인간의 문명은 원래 공동체 사회였다. 종교사회에서 가족사회로 유기적 연합체를 이뤄냈다가 좀 더 발전해 통합사회가 되었다. 소규모성, 균질성, 자급자족모델의 소사이어티가 서구 자본주의의 정중앙 미국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신비로웠다. 국가는 가끔 폭력적이다. 징세와 치안을 볼모로 개인을 억압한다. 역시 인간의 존엄과 자유는 국가시스템보다 원시의 공동체가 더 나은 대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오래된 미래’ 를 보았다.

마차가 이끄는 절제와 겸손을 따라 오후의 한 복판으로 돌아왔다. 물질사회에서 찾기 힘든 만족과 평화, 인간의 궁극적 지향점인 유토피아가 다른 방식으로 존재 할수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물론 방문객으로 한 나절만 돌아보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그 종교적 가치관과 신념으로 버티는 최후의 18세기 사람들. 이들을 만나본 것만으로도 아미쉬 빌리지는 내 기억의 탱크에 오래 저장해두고 싶은 ‘무공해 산소’ 였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