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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8

 

 
가슴 아픈 워싱턴 참전용사비

 

 

비가 내리고 있었다. 6월의 태양은 섭씨 35도의 폭염으로 모든 것을 녹여 낼듯한 기세였지만 그곳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장한 눈동자, 지친 육신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선 젊은이들의 결기가 흐르는 향나무 밭, 그 발밑으로 침묵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판초를 걸친 미군 병사 19명이 전열을 지어 여름장마속에 한국의 산하를 누비는 집단 동상은 나의 시선에 전율을 꽂아 넣었다.

자유를 지키기에는 이렇게 많은 피가 필요했을까.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링컨이 좌상으로 굽어보는 워싱턴 DC 광장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한데 그 오른쪽으로 한국전 참전 용사비는 오늘도 말없이 역사를 증언하고 있었다. 전후 70년을 향해 가는 세월 속에 6.25는 점차 잊혀진 전쟁으로 멀어지고 있다. 인구로만 따지면 우리는 전후세대가 압도적이다. 참상을 직접 목격하지 못한 젊은 한국인들이 멀리 워싱턴에서 전쟁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19명의 수색대 동상은 왼쪽 검은색 화강암에 비춰져 38명으로 보였다. 물론 38선을 상징한다. 동상 밑 향나무는 한국의 논과 밭을 형상화 했다고 한다. 공원으로 올라가는 낮은 계단에는 당시 사망자와 실종자, 포로들의 숫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사망. 미군 50246 UN 628833 / 실종. 미군 8177 UN 470267 / 포로. 미군 7147 UN 92970.

남침 3일 만에 모든 전선이 밀리면서 서울이 함락되고 패주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따라 민초들까지 눈물의 피난길에 올랐던 비극적 전쟁. 이미 자력으로는 포기한 상태의 남한 방어를 위해 국제사회는 신속한 대응에 착수했다. 미국과 16개국의 전투병이 급파되었고 5개국의 의료지원팀에 40개국의 물류 수송지원, 6개국의 전후복구 지원 등 모두 67개국이 피땀으로 이 땅에 헌신했다.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비 앞에서. 왼편으로 서울상대 17기의 헌화가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전투는 미 해병 1사단의 장진호 혈투였다. 영하 45도의 혹한에서 10배나 많은 중공군 12만 명을 격퇴시킨 이 전투는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동계전투 2대 교본으로 손꼽힌다. 장진호 전투의 승리로 흥남철수에서 10만 여명의 북한주민들이 생명의 배에 올라탈 수 있었다. 태국의 황실 근위대 1만 5천명의 평양 탈환 전투, 에디오피아 왕실 수비대 6천명의 화천 양구 결사항전,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연방 4개국의 역사적인 가평전투 등은 오늘의 한국을 존재시킨 신화들이다.

이 젊은이들의 숭고한 희생 앞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전비에는 크고 작은 조화들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고개 숙여 추모하는 코끝으로 익숙한 향기가 타고 올라왔다. 서울상대 17기 동기생들(이건산업 박영주 회장, 진념 전 부총리, 박용성 전 두산그룹회장 등)이 모은 성금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려지는 생화의 은은한 향기다. 이제 70대 중반을 넘어서는 노년에 초등학교 어린 시절 전쟁경험은 생명을 던져준 이들에게 빚을 진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헌사일 것이다.


   
▲19명의 보병이 수색작업하는 모습의 집단 동상


“얼굴 한번 본적도, 만나본 적도 없는 작은 나라를 지키라는 국가의 명령에 따른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참전기념비 화강암에 음각된 이 글귀를 되돌아보며 먹먹해져 오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극동의 이름 없는 나라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고 거침없이 달려온 젊은이들의 숭고한 넋이 포탄연기 자욱했을 그날의 하늘을 떠다니는 것 같았다. 오고가는 인파를 뒤로 한 채 나는 한 동안 포토맥 강변의 맑고 푸른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