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항저우의 알리바바,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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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항저우의 알리바바, 열려라 참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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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군제(光棍節, 2015년 11월11일)는 중국의 사이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우리가 이날을 '빼빼로데이' 로 정해 상업전을 지향하지만 그들은 짝 없는 외톨이들에게 선물을 주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단기간에 쇼핑대박을 터뜨렸다.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광군제 하루 매출은 912억 위안 (16조5천억)을 기록했다. 거래의 68%가 스마트폰으로 이뤄졌고 무려 232개국 소비자들이 참가했다. 지상전이 사라진 현대 세계에서 사이버전의 승자로 중국이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주인공은 인터넷 쇼핑몰 '알리바바' 였다.

아라비안나이트는 왕에게 죽지 않으려고 천일동안 밤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 궁녀의 재치와 스토리텔링이다. 속편을 듣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어 목숨을 이어가는 기발함에 덧붙여 인간군상의 다양한 소재들이 무지개처럼 펼쳐진다. 이 때문에 인류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동화집으로 여겨진다. 바그다드의 천일야화는 세계인의 정신 문화속에 깊이 들어앉아 있다. 270편의 이야기보따리 가운데 으뜸은 역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다.

도둑들이 떼로 숨은 항아리에 기름을 부어 죽이려는 순간 알리바바의 시종 카흐라마나의 기지로 이들이 모두 살아나고 숲속의 보물창고 주문까지 알아낸다. '열려라 참깨' 는 알리바바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벼락부자와 함께 세상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누구나 이와 비슷한 꿈을 꾼다. 재물의 욕망과 상황적 이상을 동시에 담고 있으니 흥미를 갖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중국 항저우의 가난한 청년 마윈(馬遠)은 동화 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주문만 외우면 대박이 터지는 기업을 꿈꿨다. 창업 후 회사이름을 '알리바바(阿里巴巴)'로 정한 것은 그의 오랜 생각이었다. 남들의 비웃음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13명으로 조촐하게 시작(1999년)된 회사는 마윈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 알리바바는 17년 만(2016년)에 중국 전자상거래의 80%를 석권해버렸다. GDP의 2%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다. 뉴욕증권시장 상장이후 기업 가치는 180조원으로 평가된다. 3만 명 종업원은 대부분 2-30대 청년들이다.

항저우의 알리바바 캠퍼스 분위기는 압권이었다. 중원의 역사에서 수많은 제후와 군웅이 할거했던 대륙의 금싸라기 땅은 21세기 메가톤급 신세대 기업 알리바바가 이끌어가고 있었다. 중화 최대의 불교사찰 영은사와 용정차 단지를 안고 있는 북쪽의 구시가지는 첸탕강(淺湯江)을 경계로 나눠진다. 남쪽으로 가려면 거대한 현수교 푸싱대교(復興大橋)를 건너야 한다. 알리바바 단지는 항저우 남부 신시가지 입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중국 저쟝성 항저우시 알리바바 본사 앞에서.

세련된 대학캠퍼스를 연상하게 하는 배치와 디자인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메인 건물 외벽을 입체적 곡선 조형물로 씌워 신비감과 역동성을 자아내게 했다. 두 빌딩이 공중의 투명한 브릿지로 이어지고 주변의 저고도 모든 빌딩이 연결되도록 꾸며졌다. 시애틀의 마이크로 소프트 캠퍼스와 캘리포니아의 애플을 밴치마킹한듯한 느낌이다. 한 바퀴를 돌아 나오는 데는 2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마윈은 가난했다. 키와 몸무게 미달로 경찰시험에 떨어지고 KFC 인턴직원도 거절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호텔의 외국인 보조가이드 자리를 구했지만 50분 거리를 자전거로 출 퇴근 해야만 했다. 여기서도 해고당하고 월급 만 오천원 짜리 학원 강사를 시작했다. 시련은 인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한 번도 인생을 불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늘 꿈을 잃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성공비결이었던 셈이다. 외계인 같은 모습의 평범한 동양인 마윈의 비상은 이 시대 청년들의 피를 끓게 하는 장본인이다. 전 세계 10억 명이 사용하는 알리바바닷컴에 이어 온라인 결재 B2B 서비스, 클라우드 컴퓨팅, 모바일 운영서비스 타오바오, 알리페이, 티몰탓컴, 알리익스프레스 등 수많은 인터넷 기업군단을 일궈냈다.

▲알리바바 뉴욕 상장후 기자회견에서 마윈.

중국인들은 항저우의 영웅이 현시했다고 찬양한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수나라의 주요도읍으로 이름을 떨치고 송대의 수도였던 첸탕강변에서 천 년 만에 최고의 스타가 출현했다고 반기고 있다. 이 바람에 알리바바 그룹은 저장성의 또 다른 명소가 되었다. 성취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중국의 문화가 이미 서구의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으로 변화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는 알리바바보다 역사가 있는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를 갖고 있다. 네이버는 분당의 그린팩토리 건물 한 동에 역량을 집결하고 있고 다음카카오는 서울과 제주에 분산되어 있다. 외양으로만 보자면 국제사회에서 최상으로 인정받는 IT강국의 위용에 조금 못 미치는 아쉬움이 있다. 지방거점도시나 중소도시 한곳을 잡아 혁신적인 디자인 빌딩단지로 면모를 일신할 만도 하지 않을까.

소비재 인프라 구조의 부실은 중국의 고민거리였다. 도농격차와 낙후된 상업시스템이 성장의 장애물이었다. 물류체계와 도시화가 구매시장을 만들려면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 마윈은 집 전화 시대를 거치지 않고 휴대폰으로 점핑한 세계 통신시장 혁명사에 주목했다. 짝퉁유통과 회계부실 같은 그림자가 있긴 하지만 광대한 대륙을 하나의 인터넷 몰로 통일시킨 알리바바는 확실히 중국사회주의의 뉴 패러다임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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