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왕?" 블랙컨슈머 '갑질' 기업들 "안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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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왕?" 블랙컨슈머 '갑질' 기업들 "안 참아"
  • 한행우 서순현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4월 26일 0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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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처벌 불사하겠다" 완강한 대기업 늘어…중소기업 지원 필요성도
   
▲ 도시락업체 '스노우폭스'가 매장 앞에 내건 공정서비스 권리.

[컨슈머타임스 한행우 서순현 기자] #1. "우리 직원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면 직원을 내보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직원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시면 고객을 내보내겠습니다."

도시락 업체 '스노우폭스' 김승호 대표가 매장 앞에 내건 '공정서비스 권리 안내'다. 직원의 권리를 공표한 이 안내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2. "저는 홈쇼핑 회사 팀장입니다. 반품하실 때 상품 빈 박스로 보내시고 쓰레기 넣어 보내시고 하는 분들 정말 많으신데요. 바로 오늘부터 저희 회사는 해당되는 모든 고객을 고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홈쇼핑 팀장의 최후 통첩'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SNS에서 인기를 끈 글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 논란될까 '소극적' 응대 기업들 태도 변화 "직원 보호 우선"

블랙컨슈머를 대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점차 단호해지고 있다.

감정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고 재산상 손해를 끼치는 행위 등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도 마다치 않겠다는 식의 적극성·능동성이 감지된다.

상식 밖 소비자는 고객으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다. 소비자 권리를 남용하는 '갑질'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그 바탕에 있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앞으로 금융회사 직원을 향해 폭언·폭력·성희롱을 일삼는 소비자의 경우 법적 처벌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카드·보험회사 콜센터 상담원들은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로 분류되며 특히 익명성에 기댄 언어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처해있다.

막말 등의 피해를 입은 직원이 요구할 경우 회사는 해당 고객을 형사고발 할 의무가 생겼다. 지난달 초 '금융회사 감정노동자 보호법' 5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다.

각사별로 블랙컨슈머 근절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두긴 했지만, 날이 갈수록 악성 고객이 늘어나자 아예 법제화한 것이다.

고객에 대한 법적 조치를 부담스러워하던 기업들의 생각은 바뀌고 있다.

강원랜드는 고객이 블랙컨슈머로 판단될 경우 최종적으로 회사 법무팀에서 고소∙고발 조치를 취해 강력한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최근 내놨다. 

KB국민카드는 지난해 10월께 국내 금융사 최초로 악성 민원인을 형사 고발해 주목 받았다. 

'엄포' 차원이나 '공수표'가 아니다. 실제 블랙컨슈머가 법적 처벌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다.

짬뽕·햄버거 등을 구입해 먹고 배탈이 났다며 업체들에 보험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차례에 걸쳐 수백만원을 뜯어낸 한 남성은 지난해 징역 10월의 실형에 처해졌다. 

총 27회에 걸쳐 소셜커머스 이용권으로 식사한 뒤 '식중독'을 주장하며 환불을 받아오다 덜미가 잡혀 벌금 50만원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사건도 있었다. 

블랙컨슈머의 횡포가 갈수록 지능화·범죄화하자 그만큼 처벌도 엄중해지고 있단 얘기다.

'손님은 왕'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유통업계에도 상당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유통사업장 노동환경 실태 조사'를 보면 전국 유통 사업장 114곳 3470명의 종사자 중 61%가 고객에게 폭언·폭행·성희롱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관련해 대표 유통 기업 롯데는 직원들을 위한 상황대처 매뉴얼 '당신 마음 다치지 않게'를 최근 발간했다.

폭언·협박, 대면 폭력, 성희롱 등 고객접점 직원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6가지 상황을 중심으로 적절한 대처법 등을 설명한 책이다. 이를 바탕으로 직원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 신설도 고려한다는 방침이다.

신동빈 회장은 "사회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윤리의식과 일하는 방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그 중 가장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롯데 가족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라고 말했다.

'직원 우선'이라는 기업의 마인드 변화가 읽히는 대목이다.

AK플라자는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협력사 직원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 프로그램 '서비스 뉴 스타트'를 도입, 직원들에게 VIP고객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와 근무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부터는 업계 최초로 '인사 실명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직원이 고객 응대 시 이름과 직함을 먼저 밝혀 "어이", "야", "아가씨" 등 모욕감을 느낄 만한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문제는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블랙컨슈머 관리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경우 법무팀이나 전담 조직, 블랙컨슈머 관련 매뉴얼 등을 갖추고 있어 체계적이고 강경한 대응이 가능하지만 중소 업체들은 사실상 악성 민원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실정"이라며 "이 같은 허점을 아는 블랙컨슈머들이 작은 기업을 상대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놓고 봐도 블랙컨슈머를 경험한 업체는 83.4%에 달했지만 이 가운데 적극적 대응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업체는 14.3%에 불과했다.

대부분 시간·인력·자본의 한계로 속앓이만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더불어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 롯데가 자사 감정 노동자들을 위해 발간한 블랙컨슈머 대응 매뉴얼 책자. 직원의 심리 안정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 "건전한 시장 형성 위해 적극적 대응…중소기업도 지원해야"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이승신 교수는 "최근 블랙컨슈머들에 의해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등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되는 악영향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건전한 시장 형성을 위해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의 경우 블랙컨슈머 전담조직, 매뉴얼 등을 마련해 대처하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은 그렇지 못한 점이 문제"라며 "대기업의 하청으로 많은 중소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만큼 동반성장, 상생 차원에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방법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해결방안이 논의될 필요성도 제기됐다.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허경옥 교수는 "향후 블랙컨슈머 예방 차원에서 기업도 충분히 강하게 대응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일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처벌 수위를 너무 높이면 오히려 기업 이미지가 안 좋아질 수 있으니 강경책이 능사만은 아니다"라며 다양한 방안 모색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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