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소설] 윤종규 회장 8년 바쳐 되찾은 국민은행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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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 윤종규 회장 8년 바쳐 되찾은 국민은행 명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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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손충당금 합법적 처리에도 '중징계'…긴 법정다툼 끝 승리
   
▲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컨슈머타임스 조선혜 기자] "국민은행의 행위가 위법행위로서 소득신고에 오류·탈루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어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한다."

땅.땅.땅-

의사봉 두드리는 소리가 재판정의 긴 침묵을 깨고 나왔다.

윤종규 회장은 그제서야 곧추세웠던 상체를 편안히 의자에 파묻었다. 지난 시간들의 긴장이 사르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며 참아왔던 노곤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에게는 지난 8년간의 사형선고를 뒤집는 판결과도 같았다. 한 점 부끄럼 없었지만 세간의 눈총은 따가웠다. 나라를 상대로 한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재판정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부옇게 흰 먼지가 일었다. 그는 말없이 눈을 감고 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을 떠올렸다.

'조금만 더 계시지…오늘만 보고 가시지…'

◆ S&P도 인정한 '합법적' 처리…

2004년 국민은행 행장실.

쾅-. 

당시 부행장이었던 윤 회장은 노크도 없이 행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예의를 차릴 마음이 아니었다.

"행장님, 자진사퇴라뇨! 말도 안됩니다. 제가 용납 못합니다!"

김정태 행장의 발목을 잡은 건 탈세 혐의. '탈세'. 기업인에게는 지우기 어려운 치명적인 오점이다.

국민카드 흡수합병 당시 적립해야 했던 대손충당금 1조원 가량을 합병 후 9320억원으로 손실 처리해 법인세 신고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분명 세법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 합법적으로 처리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를 '세금탈루'로 판단했다.

"금융권 밥만 40년이 넘어요. 이게 어떻게 탈세란 말입니까? 따지고 싸워야 합니다. 자진사퇴, 행장님께 이런 불명예 말도 안됩니다!"

김정태 회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되레 그를 달랬다.

"금감원이, 국세청이 그렇게 결정 내린 것을 어떡하겠나. 나랏일 하는 기관들과 싸워 무얼 하나. 일단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진정이 되겠지. 오해는 시간이 지나면 풀리지 않겠나."

"굳이 그러시겠다면 저도 행장님 뒤를 따르겠습니다. 선장을 잃은 배에 남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김정태 회장과 함께 옷을 벗었다.

그렇게 잠잠해지나 했다. 끝이 아니었다. 2번째 파도가 국민은행을 덮쳐왔다.

2007년, 국세청이 세금탈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법인세 4420억원을 부과했다. 이미 부행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윤 회장은 해결책을 찾아 동분서주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중징계도 모자라 4000억이나 토해내라는데. 설명 좀 해보세요, 네?"

회계법인과 문제가 된 부분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고 법적 대응도 시작했다.

"문제 없는 거 확실합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푸어스(S&P)에서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소송, 합시다. 승산 있습니다."

의견이 모아졌다. 그때부터 국민은행과 국세청과의 긴 전쟁이 시작됐다. 1심과 2심에서 국민은행은 '완승'을 거뒀다.

국민카드 대손충당금 관련 중징계 이력의 낙인 속에서도 그는 지난해 11월 KB금융지주 회장 겸 국민은행장 자리에 올랐다. 진실을 끝내 밝혀내고 국민은행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의 진두지휘 끝에 결국 지난 15일 대법원은 원고 승소한 원심을 확정했다.

◆ "납세자의 선택권 적용…위법 아냐"

국민은행은 지난 2007년 국세청이 4420억원의 법인세를 부과하자 이에 불복, 부과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했으며 이달 최종심에서도 이겼다.

국세청이 부과한 법인세는 국민은행이 지난 2003년 '카드 대란'으로 대규모 손실을 낸 국민카드를 합병하면서 932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은 것과 관련된다.

국세청은 합병 전 국민카드의 회계장부에 없던 대손충당금을 대규모로 쌓은 것은 국민은행이 법인세를 덜 내려는 속셈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판결 모두 "(국민은행의 회계처리는) 납세자의 선택권이 적용되므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2004년 당시 국민은행 부행장이었던 윤 회장은 이 사건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3개월 감봉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는 자진 사퇴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연임을 막으려는 금융당국의 무리한 검사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KB금융지주 회장 선거 당시에도 2004년 사건은 윤 회장의 최대 약점으로 꼽혔다. 이번 승소로 윤 회장은 그간의 불명예를 완전히 털어버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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