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에게 침묵하라.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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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나에게 침묵하라. 마크 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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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필요 없는 그림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설명을 해서는 안 되는 그림이다. 오래전부터 동경해왔던 화가여서 작품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진다. 얼마 전 조찬 강의를 갔다가 선물로 받아왔다. 원작의 강렬한 색채가 대칭과 수평으로 살아있는 추상화. 유명한 한지공예작가 김지수의 손끝에서 종이 구상으로 완벽하게 재탄생된 또 다른 작품이다. 뉴욕 소더비에서 817억 원에 팔린 그림을 진품처럼 옆에 두게 된 것은 근사한 일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1970)는 전쟁을 피해 시애틀로 떠났다. 고향 라트비아와 유럽이 2차 대전에 휩싸여 유태인으로서는 생명을 부지하기 힘들었던 때문이다. 미국식으로 이름을 바꾸고(본명 마크쿠제 로스코비치)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려 무척 노력했다. 예일대학에서 잠깐 공부도 하고 서방세계의 예술적 감성을 잉태하려는 고통도 겪었다. 하지만 다 필요 없는 짓이었다. 전쟁의 광기에 감전된 그의 사고는 좀처럼 되돌려지지 않았다.

피폐해진 인간의 마음을 표현해내고픈 욕망은 그를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색의 심연으로 끌고 갔다. 로스코의 작업은 1950-60년대 화가들의 추상적 트랜드를 이끌어냈다. 모든 것을 생략한 채 단순한 색의 팽팽한 대결과 긴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치열함이 묻어나는 그림들이다. 캔버스를 나누는 색채는 평면공간이지만 뭔가 3차원적인 입체가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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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자와 내 작품사이에 어떤 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떤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보는 이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단지 침묵이다. 나는 내 작품을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 한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다. 그 어떤 설명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작품은 인간들처럼 스스로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에는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만났다. 오래전 미국 출장길에 뉴욕의 모마(MoMA)나 구겐하임에서도 마주했었다. 가장 많은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는 LA의 모카(MoCA)에서 나도 다른 관람객들처럼 쉽게 그의 그림 앞을 떠나지 못했다. 색채가 주는 강렬함 때문에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고 레드 앞에서는 인간의 힘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경험한 날이었다.

그는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 포시즌 레스토랑의 벽면 장식을 위한 그림의뢰를 받는다. 피카소와 잭슨 폴락 같은 당대 최고의 동료들과 색채스케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가족과 피렌체 여행을 다녀온 뒤 선금 7천 달러를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한다. 미술계의 유명한 '시그램 사건'이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 존 로건이 쓴 연극 '레드'의 인기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올해 초 예술의 전당 소극장에서 만난 강신일(마크 로스코역)은 대중영화의 형사반장이 아니었다. 탄탄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는 숨소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중년의 허구인물 조수 켄(연극배우 한기상)과의 질긴 대화는 로스코의 인생과 내면세계를 완벽하게 끄집어내고 파냈다. 붉고 빨갛고 강렬하다 못해 공포스러운 '레드(Red)'여서 눈에 핏발이 서버릴 것만 같은 전율이 기억의 화석으로 남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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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까 두렵다던 그의 말이 현실처럼 말년으로 갈수록 그림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마크 로스코는 결국 67세 되던 해(1970년) 뉴욕의 작업실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가난과 극심한 우울증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때로는 감정이 격렬해지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주를 다녀온 경험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들이 격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나와 같은 경험을 했던 거라고. 그리고 그런 합의 속에서 나의 작품이 살아 숨을 쉬기 시작 한다" 고 자평했다. "충실한 감정을 담기위해 조명은 어두워야 하고 그림과 관객사이는 45센티미터가 알맞고 그래서 그대로 색채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새로운 자유를 느끼게 될 것" 이라고.

바다와 하늘사이의 수평처럼 영원히 만나지 못할 인간과 우주의 심원을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의 주인공 마크 로스코는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아크릴 상자 안쪽 추상의 울타리로 나를 초대한다. 그리고 불투명한 사각그림 속에서 철학적 멘토로 부활해 온다.

모든 생명이 사라지는 시간, 그 존재의 기억조차도 조락으로 날아가 버리는 가을의 끝. 계절의 허무처럼 그의 추상은 늘 고요한 침묵으로 다가온다. 그 침묵은 시간의 고통을 딛고 다시 빛으로 부활한다. 밤을 지나 새로운 날이 밝아 오듯이, 가을과 겨울이 지나면 봄으로 이어지는 인간세상의 윤회처럼.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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