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타이지의 포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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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타이지의 포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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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4

 

홍타이지의 포견례

 

 

16세기 여진족은 강성했다. 후금으로 번성하면서 금나라를 세우고 중화대륙을 호령하였다. 누르하치는 복잡했던 고비사막 이남과 만주를 통일하고 여세를 몰아 명나라의 숨통을 조였다. 심양에 도읍지를 정하고 파죽지세로 새로운 제국을 만들어 나갔다. 전장에서 숨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홍타이지가 칸(汗)으로 즉위했다.

홍타이지(皇太極)는 누르하치의 16명 아들가운데 8번째였다. 서열로 따지면 칸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순서였다. 장남을 빼고도 15명의 생존한 아들과 조카 2명을 제치고 왕이 되었으니 그의 비결이 무엇인지는 당연히 후세사가들의 집요한 연구대상이었다.

장남 추엥(楮英)은 포악함으로, 차남 다이샨(大山)은 후처편애가 말썽이 되어 도태되었다. 삼촌 아민(阿敏)도 권좌에 오르지 못했다. 대범함과 포용력은 물론 덕망이 높았던 홍타이지가 칸에 즉위 한 것은 아시아 역사의 한 획을 그을만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청(淸)제국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홍타이지는 1627년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정확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중원의 강자 몽골족과 조선의 장수들, 명나라의 대장들을 껴안아야 천하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룰 수 있음을 간파했다. 수많은 전투에서 투항한 적장들을 후대하고 관직을 하사하면서 훗날을 도모했다. 그의 아량은 시작부터 큰 뜻을 품었던 것이다.

내륙국가로 수군이 약했던 여진에게 명나라 장수 공유덕(孔有德)과 경중명(耿仲明)이 함선을 이끌고 귀순해온다는 소식은 낭보였다. 홍타이지는 크게 고무되었다. 이들에게 줄 양마(良馬)를 마련하기 위해 관리들에게 100필을 차출하고 자신이 아끼던 내구마(內廐馬)도 내놨다. 투항자들을 바로 심양으로 부르지 않고 만주 요양 근처에서 쉬도록 배려했다. 부하들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재량권도 주었다.

이윽고 투항군이 심양에 들어왔다. 홍타이지는 백관을 이끌고 궁궐 밖 10리를 나아가 공경을 맞았다. 홍타이지는 공경과 포견례(抱見禮)를 행했다. 서로 얼싸 안은 것이다. 만주의 신료들은 누구든지 칸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세 번 큰절을 올리고 한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다. 이를 생략하고 항복해온 장수들을 단숨에 껴안아 맞이한 것은 실로 파격이었다.

투항자와의 포견례는 말도 안 된다며 반대하는 대신들을 그는 일언지하에 제압했다. 홍타이지는 다음날 공경을 다시 불러 옆자리에 앉히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들은 훗날 명나라 정벌과 조선의 정묘호란 길에 용맹을 떨치며 칸을 보위했다.

조선으로 군사를 보내면서 홍타이지는 다국적군을 편성했다. 사령관은 사촌형 아민이었고 한족출신 이영방과 조선출신 강홍립(1619년 심하 전투에서 투항) 한윤을 지휘부에 끼워 넣었다. 이영방(李英紡)은 1618년 누르하치가 무순성을 공격했을 때 성문을 열고 투항해온 자였다. 보병부대는 몽골의 투항 군사들을 앞세웠다.

이는 대단한 결단이었다. 아버지 누르하치는 물론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포용전술이었다. 대소 신료들의 반대는 격렬했다. 적장을 아군 지휘부에 배치했다가는 진군도중에 반란이 일어나고 말것이라는 주장들이 들끓었다. 하지만 젊은 칸은 흔들리지 않고 연합군을 밀어붙였다.

요동에서 붙잡힌 한인들은 모두 머리를 깎이고 여진의 포로가 되었다. 약탈, 겁탈에 잔인한 학대는 기본이었다. 홍타이지 즉위 이후 정책은 완전히 바뀌었다. 한인을 포용하고 우대해 만주족들이 함부로 괴롭히지 못하게 했다. 한인 거주지는 동양성(佟養性), 마광원(馬光遠) 같은 능력 있는 한관(漢官)들을 발탁해 자치를 맡겼다. 홍타이지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많은 한인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당연히 권력은 강화되었고 그의 덕망에 천하가 고개를 숙였다.

지금의 동아시아는 17세기 여진이 떠오르던 시대를 닮았다. 대국굴기의 중국과 우익으로 재무장하는 일본, 남북분단 틀 속에 갇힌 우리의 상황이 간단치 않다. 밖으로 조여 오는 외교압박은 숨이 막히는데 분열된 내치는 안개속이다. 반대파를 포견례로 껴안고 탕평과 아량으로 묶어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나아가 주변국가의 모든 장수들을 감싸 안으려 고심했던 홍타이지의 대범함은 우리가 가야할  지향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연속선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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