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동학농민운동 1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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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동학농민운동 1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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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백산(白山)을 보고 앉으면 죽산(竹山)을 본다. 옛날에 이런 예언이 있었다고 한다. 백산과 죽산이라는 산이 남북으로 있어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신도 농민군이 백산을 근거지로 하고부터 이 말은 신비로워졌다. 백의(白依)의 조선 농민군이 모이면 온 산이 새하얗게 보였다. 그 정도로 많이 모였다. 그들은 손에 손에 죽창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앉으면 머리보다 높게 솟은 죽창 끝이 온 산을 덮었다. 백산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죽산으로 변했다"

중국인이면서 오사카에서 태어나 자란 천순천(陣舜臣)이 쓴 800쪽 분량의 방대한 '청일전쟁' 은 섣달 그믐밤과 갑오년 첫날의 시선을 온통 빼앗아갔다. '강은 흐르지 않고' 라는 원제목의 이 책은 남의 나라 민초들의 고통스런 역사를 사실대로 그려 낸 매력 때문에 진도를 멈출 수가 없게 했다. 역사는 언제나 꾸밈없이 기록되어야 한다는 원칙의 모델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동학군은 녹두장군을 따라 전라북도 고부 황토현에서 거병했다. 이씨 왕조의 선영 전주를 손에 넣고 부안을 접수했다. 농민들의 숫자는 점점 불어났고 임금은 당황했다.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던 백성들은 알 수 없는 어떤 초인이 출현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민심은 흉흉하고 왕조는 저물던 때의 가슴 아픈 이야기다.

조선국왕은 이들을 제압하는데 조선군만으로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청국의 원병을 청했다. 사자로 보내진 사람은 내무부사 박재순. 그는 결국 조정의 목표대로 청군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이는 일본도 따라 출병을 하게하는 구실이 되어 이 땅에서는 날벼락 같은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농민들의 절규와 개혁의 여망은 묻히고 조선은 다시 두 나라의 각축장이 되었다. 1894년을 생각하면 어떤 이는 청일전쟁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동학혁명을 반추하며 어떤 이는 갑오경장을 기억한다. 봇물이 터지듯 수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그 해 한반도를 휩쓸고 갔기 때문이다.

갑오경장을 기점으로 조선은 개화의 길을 찾아 꿈틀거렸다. 당장 수많은 개혁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세월은 이 나라를 조금씩 변화 쪽으로 몰아갔다. 갑오년에 거문고 줄을 풀어 다시 묶는 기분으로 경장(更張) 하자고 나섰던 세력이나 짚신 끈을 동여 맨 백성들은 모두 고단한 현재가 아닌 그 무엇을 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대원군과 민비로 나뉘어 분열했다. 그 동안 청군과 일군은 아산과 성환에서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동학란으로 시작해 청일전쟁으로 마감한 그 해를 지나면서 조선은 점차 국운이 기울어갔다.

그로부터 온갖 수모와 파란의 역사를 겪으며 육십갑자가 한 바퀴 돌았던 1954년은 전쟁의 상처와 휴전을 둘러싼 강대국의 헤게모니 싸움이 불꽃을 갈랐다. 미국과 중국이 그어놓은 휴전선은 아직도 현재 상황이다. 고래싸움에 끼여들 힘도 없이 굶주리고 피폐해진 이 나라 사람들에게 숨통이 남아있는 것만도 기적이었다. 아프리카 가나보다도 못한 1인당 70달러 소득으로 시작해야만 했던 맨 주먹 살림살이였다.

다시 60년이 흘러 2014년. 갑오 청마(靑馬)의 해가 밝았다. 역사의 기억은 경쟁한다. 120년 전 개혁의 깃발아래 문벌타파와 고른 인재등용, 조세혁파를 외치던 함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바로 이 시대가 동학농민의 요구를 어쩌면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지 놀랄 일이다. 인간사 세상만사가 시대만 다를 뿐 오십보백보라고 했던가. 대통합과 탕평을 말하기는 왕조와 공화국이 따로 없는 공통의 숙제였음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분열과 갈등이 여전한 현실 속에 동학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거대한 전환기에 우리는 중국과 미국의 표정을 살피며 새해를 맞았다. 그 틈바구니에 일본은 120년 전이나 60년 전과 똑같이 실리를 챙기는 중이다. 청나라를 굴복시켜 열강으로 도약했고 한국전쟁을 발판으로 경제를 일으켜 세웠던 그들. 지금은 또 재무장으로 아시아 맹주 자리를 넘보고 있다. 똑같은 관객 앞에 똑같은 레퍼토리의 낡은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꿰뚫지 못하는 우리들만 우왕좌왕 할 뿐이다.

통일이 되면 인구 8천만이 되고 한반도는 아시아의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다는 공허한 덕담들이 정초 인사말로 넘쳐난다. 짐 로저스가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겠다는 소식이 어느 신문의 머리를 장식하고 세상이 단번에 바뀔 것처럼 모두가 분주하다. 부풀려진 기대들이 팽창해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느 한 점으로 숨차게 달려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지나간 갑오년의 슬픈 기억들이 우리의 운명이기를 거부하려면 기나긴 갈등을 접고 분단을 풀어내는 일이다. 이 변곡점을 완전히 뛰어넘는 길. 그 도약에 동서와 여야 보수, 진보를 하나로 묶어내는 감동. 가장 어렵고 가장 하기 싫은 일의 샅바를 움켜잡는 리더의 결기를 보고 싶다. 우리가 주도권을 잡지 못하면 한반도는 다시 동학란 갑오년의 재현 조짐이 짙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자기주장만 펼치고 각자 잇속을 챙기는 한 우리는 허상만 이 땅의 주인일 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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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공망 2014-01-13 10:02:14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120년 동학혁명에 대해 역사적의미를 생각케했습니다. 지금 우리날의 현실도 어쩌면 과거 120년전과 다르지 않은것 같아 걱정입니다.
발행인님의 좋은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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