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인하대학교 생활과학대학 학장
상태바
이은희 인하대학교 생활과학대학 학장
  • 한행우 기자 hnsh21@cstimes.com
  • 기사출고 2014년 01월 06일 07시 49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비자 중심 경영이 일류 기업 만들어…윤리적 소비 성찰 나타날 것"
   
 

[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대기업 '갑의 횡포', 동양그룹 사태 등 잇단 사건들로 몸살을 앓았던 2013년도 어느덧 마침표를 찍었다.

새로 시작된 청마해에는 그 이름처럼 역동적이고 건강한 소비사회를 만날 수 있을까. 기업과 소비자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의 한 해가 되기 위해 정부는, 기업은, 소비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인하대학교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관련업무는 기업의 상품이나 영업활동을 점검하는 청진기와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모든 업무에 있어 기초와 바탕이 된다는 얘기다.

소비자 전문가 이은희 교수를 만나 지난 한 해 소비자 이슈를 되짚어보고 새해 기업과 소비자 간 상생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얘기를 들어봤다.

◆ 과시 소비 등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 바로잡아야

Q. 2013년은 갑의 횡포, 동양그룹 사태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은 한해였다.

== 남양 유업 사건으로 촉발된 '갑의 횡포' 문제, 동양 사태 등이 안타까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갑의 횡포는 기업의 문제지 소비자와 무슨 관련이 있냐는 일부의 시각도 있는데 유통 체계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의 문제는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 동양그룹 사태로 인해 금융소비자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이 계속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준 한 해였습니다. 또 일본 발 방사능 공포 등 화장품과 식품에 대한 안전성 문제도 올 한해 특히 소비자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던 것 같네요.

Q.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정부와 기업, 소비자의 역할이 있다면.

== 저축은행 사태, 동양 사태 등에서 알 수 있듯 기업들이 성장 일변도의 기조를 취하다 한번만 문제가 터지면 그간의 성장이 도로 뒷걸음질 치게 됩니다. 소비자 보호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는 성장의 위험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산업의 발전과 감독은 같은 비중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이제는 소비자 보호에 좀더 방점을 찍을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금융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합니다. 설명을 들어도 전문적인 영역이라 소비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확하지 못한 정보가 바탕이 된 금융거래는 사상누각과도 같습니다. 이는 기업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실적 경쟁에 매몰돼 이룬 발전이 진정한 발전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금융산업에서는 왜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지 말입니다.

소비자 역시 금융거래를 통해 엄청난 이득을 보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작지만 착실하게 혜택을 보겠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현재로서는 금융상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곳이 금융기관과 기업밖에 없습니다.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설명해줄 수 있는 기관이 생길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지자체에서 그런 상담 역할을 담당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금융상품을 소비할 때 다른 재화를 소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조급함을 버리고 결정을 짓기 전까지 충분한 생각과 분석, 정보 수집 등의 준비를 하는 게 좋습니다.

Q. 기업이 당장의 이익추구보다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는 게 기업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이득으로 돌아간다고 볼 수 있나.

== 기업은 본래 이윤추구집단입니다. 그러나 이는 소비자의 선택이 있어야만 가능하게 됩니다. 즉,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소비자의 사랑과 선택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윤추구에 초점을 둘 때, 당장의 이윤을 위해 소비자보호 또는 소비자의 욕구를 무시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궁극적으로는 이윤추구를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를 속여 오히려 큰 낭패를 당하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봐왔습니다. 따라서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에 기업의 이익이나 성장은 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모든 열정을 쏟으면 돈과 명예는 절로 따라온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아닐까요?

Q. 미국에서는 '컨슈머리포트'의 영향력이 몹시 크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의 소비자 위상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지.

== 케네디 대통령이 소비자의 4대 권리를 역설한 게 1962년입니다. 국내에서 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된 건 1980년입니다. 시간적으로 20년 정도 차이가 있죠. 국내에서 소비자 권리의 기반이 되는 정신은 사실상 선진국에서 수입된 셈입니다. 우리가 뭐든 빠르게 배워서 발전시키기는 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역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소비자 의식도 마찬가지죠. 필요성을 토대로 자생적으로 발전해온 선진국에 비해 약간 더딜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소비자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뿌리 깊은 공익정신과 결부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시민단체라고 해도 정부 주도형이 대부분이고 소비자의 후원 등 자발적 참여는 아직 미진한 편입니다. 앞으로 소비자단체의 전문성을 보다 강화하고 단체별로 특화된 영역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Q. 겨울철 마다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나오는 등 청소년 과소비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 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입니다. 학생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인정 받기도 어려운 위치죠. 사실 성적이 높은 학생들의 경우 자아존중감이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낙오된 존재처럼 대우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으스댈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부'입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천민 자본주의적 속성을 학생들이 답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연예인의 공항 패션 등 고가 명품 의류에 대한 동경과 관심을 확대 재생산하는 언론의 문제도 있습니다. 소비를 통한 즐거움도 분명 필요하지만 과시가 목적이어선 안됩니다. 청소년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학교 및 가정에서 선생님과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교육청에서 청소년들의 바람직한 소비를 통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Q. 최근 대부업 광고 금지와 관련된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 최근의 대부업 광고들은 지나치게 감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친숙한 캐릭터를 내세워 친근함, 편안함, 따뜻함의 이미지를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요? 높은 이자에 대한 경고문구 등은 너무 흐릿하고 빠르게 지나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공중파 방송에서 대부업 광고를 전면 금지했을 때는 그만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케이블에서는 무분별하게 광고가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 모순이죠. 특히 인쇄 광고와 달리 영상 광고는 소비자들이 주어진 정보를 인지적으로 거르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광고를 청소년이 자주 접했을 때 자칫 대부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Q. 온라인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정보가 넘쳐난다. 올바른 소비를 위해 소비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 일단 미끼성 가격정보에 혹하면 안됩니다. 마치 당장 사지 않으면 그 물건이 없어질 것처럼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구매 결정을 조금 늦추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신뢰할만한 출처에서 나온 정보를 찾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현혹돼 물건을 구매한 경우 불필요한 충동구매인 경우가 많습니다. 판매자의 부추김에 넘어가기 전에 오늘 사지 못해도 내일은 좀 더 좋은 상품이 나올 것이라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세요. 필요한 물건을 제값에 사는 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과잉 구매하는 것보다 궁극적으로 더 옳은 소비가 아닐까요.

◆ 정치·경제 불안정에 과거로 회귀하려는 속성 강해질 것

Q. 소비자 문제에 대한 언론의 지적이나 소비자 항의에 대처하는 기업들의 태도가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 잘못된 일에 대해 비판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에만 급급하다면 일류기업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소비자 중심 경영이 일류냐 삼류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소비자를 문제나 제기하는 '골치 아픈 존재' 정도로만 인식한다면 혁신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은 결국 소비자에게 필요한 걸 함께 고민하고 소비자 욕구를 먼저 파악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과 소비자 단체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어떻게 개선되는지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해당 이슈를 끌어 가는 힘이 필요합니다.

Q. 지난해 소비자 이슈나 트렌드에 대해 설명하자면.

== '응답하라1994' 프로그램의 인기에서도 알 수 있듯 향수를 자극하는 제품이나 문화를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유행했습니다. 자취를 감췄던 옛날 과자 등 추억의 제품들도 이에 힘입어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SNS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것도 특징입니다.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구매를 하는 소비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SNS를 통해 행복한 소비, 즐거운 소비를 자랑하고 이를 따라 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방문했고 뭘 먹는지 사진을 찍어 공개하는 게 일상처럼 됐는데 결국 그게 전부 소비에 관한 얘기들이죠.

Q. 올해 소비자들은 어떤 관심사를 가질까. 새해 소비 트렌드를 짚어본다면.

== 정치·경제의 불안정으로 인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철없던,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마케팅이 여전히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양극화나 소비 위축 등의 문제가 크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소비를 통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일상에 소소한 기쁨을 줄 수 있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 직구족도 크게 늘 것입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맞물려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는 똑똑한 소비자들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문제는 심리적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소비를 통해 과시하려는 습성입니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소비에서 삶의 행복을 찾는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만 잘 벌고 잘 쓰면 된다는 인식을 넘어서서 소비의 윤리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어떤 소비가 바람직한가에 대한 성찰도 나타날 것 같습니다.

◆ 이은희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가정관리학 학사와 석사,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과 2005년, 2008년에 인하대학교 우수연구상을 수상했으며 2007년부터 일년간 한국소비자정책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08년에는 한국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생활과학대학 학장 직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