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된 언어로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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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된 언어로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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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숙성된 언어로 말하라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소통이 부러운 시간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로 세계인의 감정을 울린 그였지만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비참한 천대와 고통을 참으며 화를 이겨냈을까. 1956년 1월3일 밤 9시30분. 그의 집 베란다에서 폭탄이 터졌다. 혼비백산한 아내와 딸은 다른 공간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곧이어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집채가 흔들리고 유리창들이 모두 박살 났다.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서 연설을 하던 킹 목사는 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다. 이미 엄청난 인파가 아수라장 된 집을 둘러싸고 경찰과 대치 중이었다. 대부분 흑인들이었고 백인 경관들은 공포 분위기가 역력했다. 무기를 들고 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차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때 킹 목사는 부서진 베란다 위로 올라서서 성난 군중들을 향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 제 아내와 아이는 모두 무사합니다. 제발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복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백인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확신을 갖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킹 목사의 진심 어린 눈빛에 사람들은 하나 둘씩 자리를 떴고 우려했던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는 핏발선 군중 앞에서 흥분된 언어를 접고 정제된 말로 무기대신 사랑의 힘을 설파했다. 그것이 진정한 승리자의 길임을 가르쳤고 평생을 실천했다. 세계사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 받으며 노벨평화상을 받은 내공은 숙성된 언어의 힘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마디바(넬슨 만델라)가 고향 쿠누에 묻혔다. 10년 전 그의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들고 남아공까지의 인터뷰 여행길에 나섰던 기억이 새롭다. 마디바의 힘은 역시 27년을 감옥에서 고독과 싸우며 용서로 얻어진 숙성된 언어였다. 출옥한 뒤 첫 번째 연설 장소는 요하네스버그의 흑인 밀집지역 소웨토. 드 클레르크 백인정권은 물론 전 세계가 긴장 속에 그의 연설을 주시했다. 단상에 올랐을 때 광장의 추종자들은 이미 폭도로 변해 있었다.

마디바는 한동안 침묵의 시선을 보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들의 지도자가 돼주길 바란다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흉기를 내려 놓으십시오. 나는 감옥에서 오랫동안 흑백이 하나 되는 통합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결코 분열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분리주의자가 아닙니다." 한 평 남짓한 감방에서 기나긴 침묵으로 빚어진 그의 언어는 남아공의 팽팽한 공포를 해제시켰다. 천지가 뒤바뀔 것 같던 국가를 흑백이 공존하는 무지개나라로 만든 씨앗이 되었다.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목계(木鷄)를 벽에 걸어놓고 자신을 단련시켰다.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기성자라는 사람이 왕을 위해 싸움닭을 키웠다. 그런지 열흘 만에 왕이 물었다. "닭이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답하길 "아직 안됩니다. 지금은 허세만 부리고 교만하며 제 힘만 믿습니다" 열흘이 지나 다시 묻자 "아직 안 됩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모습을 보면 당장 덤벼들 태세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열흘이 지나 재차 다그치자 "안됩니다. 다른 닭을 보면 눈빛이 달라지고 성을 참지 못합니다" 라고 답했다. 또 열흘이 지나 재삼 묻자 기성자의 답은 이랬다. "거의 되었습니다. 싸울 닭이 소리를 질러대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로 만든 닭(木鷄)' 같습니다. 이제야 싸움닭으로서의 덕을 갖추었습니다. 상대편 닭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립니다"

대통령을 찌르는 말과 이를 받아 치는 청와대의 말들이 날카롭다. 노사간의 갈등을 헤집는 말들이, 계층 간의 상처를 부추기는 말들이, 시민사회의 대결을 깊게 하는 말들이, 심지어는 "개가 짖어도 내 갈 길을 간다"는 어느 도지사의 말에 이르기까지 온갖 말들이 요란하게 부딪치는 계절이다. 상대가 말싸움을 걸어와도 말이 안되면 목계처럼 초연하게 지켜 볼 일이다. 그러면 이미 반쯤 승리한 것이다.

말은 행동을 잉태한다. 말은 또 다른 말을 낳고 엉뚱한 보복을 부르기도 한다. 혀 세치가 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역사는 무수히 많다. 숙성된 말은 하늘의 달을 베고 바람을 가른다고 했다. 그만큼 울림이 크다. 날것의 말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유치하고 수준이 낮다. 그런 말들이 통하는 한국사회는 물질적 성장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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