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행위가 아쉬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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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행위가 아쉬운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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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5

 

통치행위가 아쉬운 계절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진 않았다. 세월이 가면 대체적으로 수준이 높아지고 그 동안 해온 이력도 있고 하니 세상이 자연스럽게 좋은 쪽으로 가기를 기대한 것뿐이었다. 잿더미에서 건져낸 한강의 기적이니 청년들의 피로 이뤄낸 민주화니 하는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으므로 묻어두기로 하자. 이런 명제를 앞세워 감상에 젖고 싶진 않으니까. 그렇게 험한 시대를 관통해 왔는데도 이 정도 이뤄냈으면 이젠 성숙된 어떤 기운들이 넘쳐나 정말 살만한 나라가 다 된 줄 알았다.

남들이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다고 조롱 할 때 우리는 어금니를 물고 견뎌냈다. 한국경제 수준이 선진일본과 달려오는 중국 사이에 낀 '넛 크래커' 신세라고 손가락질 당할 때도 버텨냈다. 좀 안다는 외국 전문가들이 코리아가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라고 비아냥거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맷집은 약해지고 인내가 점점 한계치를 향하고 있다. 멀쩡하던 사람들까지 조금씩 술렁거리고 있다. 되는 게 없는 나라에서 되는 게 없는 것은 당연하다는 자조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접어뒀던 회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성냥불이 들 불처럼 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가 엉망이어도 경제만 잘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결국 정치와 경제는 자전거의 두 바퀴였다.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아니라 공통분모였음을 알아내는 데는 값비싼 대가가 뒤따랐다. 정권이 바뀌면 늘 그렇듯이 적당한 청소작업이 이뤄진다. 기업인 잡아들이기, 세무조사, 강도 높은 사정. 이런 공식이 반복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후진국임을 드러내는 것이어서 창피스런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소란스런 시간을 견디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방향이 조금씩 빗나가는 느낌이다.

지금처럼 해묵은 이념의 줄을 그어놓고 패싸움에 골몰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사치다. 권력을 잡은 쪽이나 놓친 쪽 모두 서로에게 완벽한 패배를 강요하고 있다. 지나간 정치적 에피소드에 생명을 걸고 돌진 중이다. 애초부터 완벽한 승리가 없는 싸움을 지속하면 남는 것은 결국 완벽한 패배일 텐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는 필요악이다. 없앨 수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 마당에 점잖게 민주주의의 한계를 논의할 만큼 세월이 한가하지도 않다.

처방은 통치행위라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보는 방법이다. 그 주인공은 대통령이다. 당선되는 순간 정파와 경제적 이해, 지역, 종교를 떠나 명실상부한 공화정의 대표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적대세력을 향한 끌어 오르는 감정도 개인의 파란만장한 인생 한풀이도 가슴속에 접어두고 모두를 위한 상식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 그 과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조금씩 다가서도록 만들어가는 기술이 통치행위의 개념이라면 해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수사를 다 걷어내고 압축한다면 통치행위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감동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완벽하게 나를 태워서 나오는 최후의 진심. 그것이 통치행위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5년 단임으로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갈등을 최소로 봉합시키고 국민통합을 이뤄 낼 수는 있다. 국회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가슴으로 야당을 설득해내고 탕평이 문제면 사심 없이 인재를 고루 등용하면 그만이다. 입으로 말하지 말고 가슴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보하면 정국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대권만 잡으면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때가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이다.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국회선진화법이든 권력기관간의 꼴사나운 싸움이든 내각의 무능이든 야당의 태클이든 문제가 무엇이든 간에 야박하게 말하면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방법은 무엇으로 감동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잘못을 겸손하게 사과하고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민초들은 감동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순수함과 정의를 바탕으로 진정한 마음이 보이면 그들은 움직인다. 그러면 풀지 못할 일도 없다. 반대한 사람도 욕하던 사람도 따뜻하게 챙기면 다 녹아 들기 마련이다.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는 소신 있는 검사들을 자르고 여론을 돌리기 위해 남북정상 대화록을 유출시키고 정부 주장을 그대로 베껴 옮기는 언론을 통해 물 타기를 하는 상황"이라고 현 시국을 진단하며 대통령 사퇴까지 거론하고 나서는 종교단체의 움직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비판의 일부 발언만을 부각시켜 새로운 종북 논쟁으로 우리사회를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말초적인 어법으로 모든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결기만으로 통치권은 지켜지지 않는다. 이 같은 혼란과 분열이 왜 초래됐는지를 되돌아 보는 지혜가 아쉽다.

혹시 우리의 대통령은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500년 전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권력의 속성을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사랑의 대상이 되는 길을 택해야 맞는 선택이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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