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의 절름발이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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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의 절름발이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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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1

 

자크 아탈리의 절름발이 '등대'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의 '등대' 가 인기다. 제법 두툼한 책인데도(700쪽) 지루하지가 않다. 인류역사에서 위대한 족적을 남긴 현인 23명의 인생을 다시 오늘의 시각으로 조명해낸 열정에 찬사가 쏟아지는 저작이다. "모두 비극적 불운을 겪었고 이를 설욕하려 애썼다. 우연이 지나치려 할 때 그 우연을 붙잡는 특별한 능력들을 보였다"고 재해석한 아탈리의 시각이 독특하다. 시대와 인물의 서로 다른 스토리들이 하나의 고리로 묶여있다.

공부 잘하기로 치면 유럽에서 1등 이라는 칭찬이 어울리는 사람. 유럽부흥은행 총재를 지낸 자크 아탈리는 불가사의한 지식인이다. 50여권의 저서가 세계 2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권당 10만부 이상씩 읽히고 있으니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그를 세계 100대 지식인으로 선정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공자에서 시작해 다윈, 에디슨 같은 전통 인물들이 살아나오고 모한다스 간디에게 정신적 지주였던 슈리마드 라즈찬드라(1867-1901), 알제리 민족의 아버지 압델 카드르(1808-1883) 같은 생소한 이들도 등장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인물들을 그에게 재구성 당하는 즐거움이 매우 크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기쁨은 이내 실망으로 변하고 말았다. 자크 아탈리의 원제 '24 Destins'가 말하듯이 등대 같은 현자 24명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한국어 번역과정에서 일본의 인물 '메이지(明治)'가 사라진 것이다. 아탈리의 의도와 달리 1명이 삭제된 23명의 인물스토리만 다룬 절름발이 '등대'가 우리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셈이다.

메이지(明治, 1852-1912)는 일본을 강국으로 올려놓은 메이지 유신 당시의 일왕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서양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열강의 기초를 다진 장본인. 메이지를 잘라내고 번역본을 낸 출판사(청림출판)도 옹졸하거니와 이런 분위기에 젖어 있는 우리의 포용력도 답답하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막부정권을 세운 인물 역사소설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1960년대 말 한국에 상륙했을 때 거친 반일감정 때문에 '대망(大望)' 이라는 제목으로 바꿔 출판된 적은 있지만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역사인물들을 터부시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 전 서쪽의 유럽대륙과 동쪽의 아시아 대륙을 바다 밑으로 이어주는 해저철도가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이 현장에 아베 일본총리가 참석했다. 외신들은 아베의 출현을 이례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섬나라 일본이 일찍부터 눈떠온 해저철도 공사의 노하우를 보스포러스 공사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수많은 기술진이 터키 현지에서 활약했다. 아베의 참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 이면에 감춰진 일본과 아베의 무서운 꿈을 읽어내야 한다.

1944년 규슈와 혼슈의 아득한 바다를 간몬터널로 연결 한 솜씨답게 50년 후에는 혼슈와 홋카이도를 세이칸(靑函) 터널로 이어냈다. 철도 길이가 무려 54킬로미터(해저 23킬로미터)다. 여세를 몰아 일본은 과거 인연이 있던 사할린과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 파리, 런던까지 유라시아 레일로드를 구상중이다. 부산에서 서울, 원산, 블라디보스토크, 이르쿠츠크, 이스탄블, 파리, 런던을 잇겠다는 코리아 버전이 국내용으로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판 유라시아 라인이 본격화되면 우리 플랜은 흔들린다. 그들의 앞선 철도기술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아베는 한국의 고립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 방위를 위한 일본의 역할을 카드로 평화헌법을 고쳐야 한다며 국제여론을 재단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은 미국과 유럽사회가 이미 용인한 듯하다. 그 뿐인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이 결정되는 IOC 표결 하루 전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을 거론하며 수산물 금지 조치를 요란하게 발표한 한국의 태도를 그들은 못내 섭섭해 한다. 나쁜 이웃이라는 불평과 함께.

한국은 일본을 지우려 하고 일본은 한국을 버리려 한다. 지난해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영토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하나. 그 종착지는 어디일까. 현재의 자존심 몰이가 서로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주판알만 분주하게 튕길 뿐 아무런 기약이 없다. 대립이 가장 매력적인 카드인 이상 양국의 지도자 누구도 이 유혹을 쉽게 버리기는 어렵다.

지식인과 언론인 그룹 역시 갈등을 앞장서 즐기고 있다. 상대방 때리기의 부산물로 주어지는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애국이라는 화려한 포장으로 은근히 반목을 부추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극단을 지향하는 이들의 충동으로 두 나라는 항상 시끄럽다. 윗물이 이러한데 대중들은 흥분해주는 것 외에 별 대안이 있겠는가. 삿대질이 거칠수록 자신들의 입지가 더 두터워진다고 생각하니 한일간의 특이한 아이러니다.

레지스탕스를 이끈 프랑스의 드골처럼 양측의 화해와 유대를 주도할만한 결정적 리더가 없었다는 현대사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갈 길은 정해져 있다. 정치와는 분리된 민간차원의 자발적 유대를 강하게 갖도록 서로 노력하는 길뿐이다. 할 말은 많지만 미래를 위한 공존의 이유를 인식하면서 다시 실타래를 풀어내는 방법. 그 대안을 찾아 나선다면 이 비생산적인 갈등이 조금씩이라도 녹아 내릴 것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세상이 하나로 통합되는 글로벌 시대에 두 나라가 이토록 집요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참으로 비생산적인 일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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