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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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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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7

 

바보들의 행진

 

 

 

명동거리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약간은 맛이 간 청년 두 명이 뛰면서 연신 오른쪽을 올려다본다. 손가락질 하면서 깔깔거리고 재미있어 하는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오른쪽을 올려다 본다.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은 개발을 딛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행인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손가락 방향에 속아 우측으로 시선을 돌린 모두는 다 바보가 된다. 그들은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거리에서도 지나가던 이들을 바보대열에 동참 시킨다. 오래된 국산영화 '바보들의 행진' 에서 봤던 장면이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고 복음을 전했더니 모두가 혹했다. 세상에 공짜 싫어할 사람이 있나. 더구나 아무 이유 없이 국가가 돈도 주고 병도 고쳐 주겠다는데 마다하면 살짝 맛이 간 사람이겠지. 그것도 내 주머니에서 한 푼 나가지 않고 들어올 일만 있다면 그거야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지. 철썩 같이 믿고 정권 만들어 주고 대가를 기다렸는데 6개월 만에 돌아온 답이 세금고지서라면 열 받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5년 동안 복지 공약에 들어갈 돈이 무려 80조원. 다른 공약까지 합하면 줄잡아 140조원이 필요하다. 공약은 지켜야 하겠고 급하게 마련했다는 대책이 세금 더 걷자는 제안이라니 그걸 누가 몰라서 안 했나 하는 반응들이다. 정부가 내민 고지서에 펄쩍 뛰는 국민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던지 둘러대는 말들이 가관이다. "비과세 감면을 줄이고 세율을 올리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다" 소도 웃을 이야기다. 쇼도 적당히 해야 웃음이 나오지 이건 수준이 너무 낮은 코미디다.

세수개편안을 다시 검토해보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없었던 일이 되고 경제팀은 꿀 먹은 벙어리다. 알고도 장난을 친 건지 모르고 밀어 부친 건지 헷갈린다. 전자라면 아주 고약한 정치적 사기 행위요 후자라면 즉각 무능을 인정하고 내각 경제팀을 확 갈아 치워야 할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대통령 자신이 무지를 솔직히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정중히 사과 한 뒤 세금공부 좀 제대로 더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애초부터 공짜점심이 없다는 것을 숨긴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본래 민주당 메뉴였다. 지난 선거 때 부랴부랴 과외공부에 나선 새누리당이 민주당안보다 훨씬 통 큰 복지공약을 들고 나와 유권자들을 현혹시키고 새 정부를 탄생시켰다. 세금 안 걷고도 지하경제 양성화나 구멍 난 세원을 확보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목청을 뽑았던 이론가들은 지금 다 어디 가셨나. 그 백가쟁명 속에 표심을 몰았던 복지정책이 정권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면 기적이다. 행세깨나 한다는 나라치고 복지 혼란 경험 안 한 국가가 없다. 만일 그것이 이뤄진다면 그건 마법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잘못 꼬인 공약의 실타래를 푸는데 세수증대 꼭지만 돌리면 세금이 나오나. 모자라는 세금 채우려고 국세청, 검찰, 공정위 총동원해서 기업들을 들쑤시면 누가 일하고 세금은 어떻게 낸다는 것인지 답답하다. 경기와 고용이 성장으로 맞물리면 그게 세원이라는 기본을 망각한 처사다.

300조원을 움켜쥐고도 투자 안 한다고 기업들에게 매질만 할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투자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부가 할 일 아닌가. 복지프레임에 빠져 기본적으로 경제 살리기를 소홀히 하면 한국은 공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치자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수첩에 메모나 하는 국무회의 풍경은 시대착오적이다. 예로부터 성군은 강직한 신하들 속에서 만들어졌다.

창조적이면서도 비전이 물씬 담긴 정책들이 줄줄이 나오고 지역탕평 인사로 정말 염원하던 새 시대가 열리기를 고대했건만. 너무나 빨리 찾아온 실망감으로 민초들은 무거운 분위기다. 대한민국은 관료와 율사와 장군의 나라인가. 권위주의가 판치던 30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이 상황을 돌파할 혁신 깜짝 인사가 75세의 김기춘 비서실장이라니 할 말이 없다. 박근혜 정권의 인재풀은 '7인회 경로당'밖에 없는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는 이들이 늘어나면 이건 문제다.

그래도 지지율 60% 에 잘한다고 박수치는 국민들이 더 많다며 자위하고 싶겠지만 경제 쪽에서 깨지는 쪽박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 정권의 좋은 성적표는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와 세대는 전진해야 한다. 아집과 인사실패를 우려하는 것은 결과가 잘못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운의 물꼬를 선진 쪽으로 돌리는 데 지금처럼 중요한 타이밍도 없다. 바보들의 행진은 현실이 아닌 영화로 족하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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