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 이렇게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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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소비자보호 이렇게 어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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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1

 

금융소비자보호 이렇게 어렵나

 

 

멀쩡하던 기업이 도산했다. 평소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금융상품에 가입하라는 거래은행의 설명만 믿고 당한 낭패였다. 기업운용자금을 늘려보려고 몽땅 집어넣었다가 회사를 날린 것이다. 소설이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실제 상황이었다. 이른바 중소기업 대란으로 일컬어 지는 키코(환헤지 통화옵션상품)사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환율급등으로 수 백여 개 중소기업이 3조원대의 손실을 안고 파산과 법정관리로 망가진 키코 대란은 우리 금융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지난 대선의 핵심이슈로까지 비화된 이 문제의 본질은 은행이나 기업이나 정확한 금융상품의 정보교환 없이 엄청난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다. 5년이 지난 지금 1심에서 167건, 2심 68건, 대법원 41건 등 모두 276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키코 소송의 쟁점은 불완전판매와 불공정 거래 여부다. 금융권은 환 헤지 상품이라고 팔았는데 환율변동 위험을 헤지할 수 없는 황당한 상품이었다는 후문이다. 비좁은 환율구간에서 적은 이익을 보려다가 환율이 상승하면 손실은 무한대로 불어나 매입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의 금융상품이라는 것이다. 원래 금융상품은 정보비대칭이 큰 분야여서 공적 기능이 중요시되는 만큼 감독당국도 공동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금융소비자 보호가 과연 제대로 이뤄졌느냐의 시비다. 대규모 금융피해로 중소업계가 거덜이 났는데도 금감원은 사적 계약이고 제재범위가 아니라고 발뺌하면서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의 거래위험 고지미흡이나 연간수출액 초과 계약 등의 문제를 적발하고도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해 온 태도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해당금융상품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되었을 때 돌아오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 할 수 있도록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피해업체 가운데 절반 정도는 발을 뺐을 것이다. 그런데 투자하면 돈이 불어나는 숫자만 부풀려서 설명하고 대충 팔았다. 말하자면 최선만 선전하고 최악은 입도 뻥긋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가 되자 조직과 고문변호사가 포진한 은행들은 철저하게 방어 작전에 나선 반면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평생을 올인해 만든 기술과 제품경쟁력에도 불구하고 폐업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뿐인가. 지난해에는 서민들이 맡긴 푼돈 예금을 부동산 개발에 배팅한 저축은행들이 몽땅 내려앉는 바람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양산되었다. 아직도 재판과 피해보상이 어지럽게 진행 중이다. 저축은행 위에 군림하면서 뇌물을 받고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배 불리기에 골몰했던 금감원 간부들의 행적은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금융소비자 보호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막판까지 당국은 요령을 피우다가 마지못해 금소원 독립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대통령의 된소리를 듣고 나서야 부랴부랴 마련한 내용이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금소원이 독립할 경우 현재의 금융감독원체제에서 또 다른 감독기구가 더해지는 셈이니까 금융회사들은 죽을 맛일 것이다. 검사권과 조사권이 보장되면 한 번 더 주리를 틀려야 할 판이니 환영할 이유가 전혀 없다. 행정의 중복기능도 걱정이다. 감독원과 금소원의 업무영역구별과 검사권 활동이 어떻게 분리되고 조정되어야 하는지도 과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처럼 금융소비자 보호원을 독립시키지 않고 금감원 내부의 부서로 뭉개려 했던 금융 감독당국의 태도는 온당하지 못하다. 행정과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이나 감독기관 편의대로 지내온 구태를 이제는 과감히 벗어 던질 때가 되었다. 경제구조는 지금 공급자와 정부중심에서 수요자와 소비자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데 행정서비스는 미흡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금융소비자 보호는 세계적 추세다. 영국은 고객에 맞는 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적합성 원칙이 필수사항이고 홍콩은 금융상품을 사는 소비자에게 반드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알려주도록 의무화 되어 있다. 키코를 사기사건으로 보는 것이 일반 선진국의 시각이다. 명확한 설명 없이 거래기업에 하나씩 들도록 재래식 영업을 하는 것은 고등사기라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 금소원을 분리시키는 것은 우리나라가 너무 앞서간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렇게 앞서가면 왜 안 되는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

현재는 여론에 밀려 금소원을 분리하고 단독검사권과 제재권을 부여하겠다고 하지만 언제 실현 될지는 미지수다. 밥그릇을 나누지 않겠다는 복지부동이 강하게 깔려 있음을 엿볼 수 있는 태도다. 대법원의 판단이 곧 나오겠지만 지금까지 너무 편하게 돈벌이를 해온 금융회사와 그들의 실적 채워주기에 치우쳤던 금감원은 새로운 모습으로 소비자들 앞에 재탄생 되어야 한다. 제도와 생각이 모두 소비자 시대에 맞도록 혁신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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