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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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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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세상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우(外儲設友)에는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사자성어가 실려 있다. 말 그대로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쉬어 빠진다는 뜻이다. 군웅이 할거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 만드는 솜씨가 뛰어난 명인 장씨(莊氏)가 살았다. 술 맛이 워낙 좋기로 소문난 그는 재능을 버리기 아까워 직접 주막을 차리고 술을 팔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항상 친절하기 그지없었고 값은 적당히 받아 양심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인심도 넉넉해 술값이 좀 모자라거나 어려운 이들에게는 한 주전자씩 그냥 들려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장사는 남들만 못했다.

주인 장씨는 그 영문을 몰라 점점 답답해져 갔다. 아무리 고민 해봐도 장사가 안 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수 없이 마을의 현자인 양천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원인을 물었다. 양천은 장씨의 말을 듣고 나서 난데없이 마당의 개가 사나우냐고 물었다. 술장사와 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장씨에게 양천은 그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네의 어려움은 개 때문인 것 같네. 요즈음은 사람들이 개를 무서워하네. 대개 어른들은 아이들 손에 호리병을 쥐어주고 술을 사오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개가 사나우면 당연히 다른 집으로 가겠지. 술 맛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나. 애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네. 사러 오는 애들이 그걸 마시나? 개가 무서워 술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시큼해져서 좋은 맛을 잃어버리겠지" 한비자는 나라를 위해 어진 신하를 기용하지 못함을 구맹주산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입에 담기도 유치한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미국에까지 나가서 망신살이 뻗쳤으니 혀를 찰 일이다. 그렇다고 중대 조치를 취하고 말고 할 사안도 아닌 것 같고. 별 대안 없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거들면서 주먹질만 해대는 판이니 나라 꼴이 점입가경이다. 다만 이 참담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뿐. 이 기회에 흐트러진 기강을 다잡겠다고 수선을 피울 수 밖에 없는 청와대의 모습에 자괴감만 깊어지고 있다. 민심을 살피는 어진 임금도 충성스럽고 현명한 신하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장사는 어떤가. 아버지뻘 대리점주에게 육두문자로 갑 행세를 하다가 회사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남양유업 말이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디다 못해 사장과 핵심임원들이 나란히 고개를 숙이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회견장에 섰지만 당분간 불매운동과 공정위의 매서운 후반전이 만만치 않을 조짐이다. 관행대로 했을 뿐이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온 갑의 행태에 소비자 모두가 하나로 뭉쳐 을 쪽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과거와 다른 점이다.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한 담당자를 영업 관리 전선이나 고객의 최접점에 배치하고 적당히 주무르던 영업 관행이 그야말로 철퇴를 맞고 있다. 아무리 선전하고 브랜드 이미지 키우면 뭐하나. 꼬리가 한번 잘못 흔들리면 몸통이 한방에 날아가는 판인데.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개인 미디어 소유자이다. 수준 이하의 행태를 보이는 순간 무자비한 심판을 각오해야 한다. 제품 선전의 모델로 나선 톱 탤런트까지 계약을 거둬들여야 할지 고민 중이라니 파장은 좀 더 이어질 것 같다.

압축성장의 교과서였던 성과지상주의, 이를 바탕으로 한 지름길 출세가 부른 비극이다. 횡포를 부리는 소수의 갑에게 다수의 을이 침묵하며 끌려가던 시절은 지난 것 같다. 당하고 물러서지 않는 추세다. 컨슈머타임스에도 매일 수많은 소비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효율성만 신봉하던 사회가 밀어내기 병폐를 만들었다. 갑에 대항하면 죽는다는 식으로 을에게 침묵을 강요해 지금의 성장이 쌓였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팬티 대변인' '라면상무' '싸가지 영업과장' 같은 진상 시리즈는 속편이 이어질 수도 있다. 온통 말초를 자극하는 말 따먹기 프로그램으로 넘치는 화면과 지적 깊이가 실종된 사회에서 배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이 시대의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오락이 판치는 세상에서의 행동요령은 그저 빨리 한탕 하거나 최대한 내 지위를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 이것만이 손해보지 않고 인생을 사는 방법으로 통해 왔다. 공존하고 배려하는 가치를 통해 수준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념과 정치의 초점이 시장과 행복으로 전이된 인터넷 시대의 비애가 아니라 다같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모두의 자성이 분출하는 현상 아닐까.

읽고 사색하고 덕의 두께를 채워나가는 쪽으로 바뀌어야 품격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광범위하게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 폭격을 맞은 남양유업 사장님이 조아리며 하는 말, 직원들의 인성교육을 좀 더 시켜 영업현장에 배치하겠다는 다짐이다. 인문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타인의 생각과 입장을 경험 해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 사람은 그만큼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해가 넓어지면 수준 이하의 행동과 거짓말, 폭력, 막무가내, 왕따 같은 반칙이 사라지지 않겠는가.

미디어 정치 풍자극 웩더독이 떠오른다. 개꼬리가 흔들리면 몸통이 숨어버리는 역작용 말이다. 레인맨을 감독한 베리 레빈슨이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드니로를 캐스팅해 만든 영화다. 장사나 정치나 세상사 모두가 개 꼬리부터 시작된다. 개 꼬리가 흔들리면 모든 몸통들은 숨기 바쁘다. 지금까지는 흔들리는 개꼬리만 간단하게 잘라 내고 뭉갰지만 앞으로는 몸통을 찾아 나서는 시민과 소비자들의 눈매를 피해가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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