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중동의 걸작, 아부다비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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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중동의 걸작, 아부다비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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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은 문명의 다양한 발상지에서 중세에는 영토전쟁의 중심으로 현대에는 석유 통로의 길목으로 세계사에서 지속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오른쪽으로 이란이 자리하고 안쪽으로는 이라크가 그 왼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마주보는 형상이니 지정학적 관점에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주머니 모양의 이 바닷가 중간쯤에 '루브르박물관' 이 있다면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답을 내기 위해 아부다비 정부는 10년의 세월을 바쳤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모든 유적과 예술을 망라한다는 프랑스의 자랑 '루브르'가 중동의 사막에 오픈될 것이라는 예상은 애초부터 무리한 플랜으로 여겨졌다. 그런 걱정 속에 진행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아부다비 루브르'는 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두바이가 UAE의 경제중심지라면 아부다비는 문화교육의 거점이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시내에서 좀 떨어진 사디아트 섬에 있었다. 사디아트는 이 나라의 문화특구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거대한 돔 지붕이 가파르지 않게 곡선을 그리면서 해안선에 맞춰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독특한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el. 1945-)이 오랜 시간 공들인 건축물이다. 그가 서울 이태원의 리움미술관을 설계했다든지 카타르 미술관이나 옥수수 모양의 명물 바르셀로나 아그바 타워 같은 기묘한 건축창작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떠나 사막과 바다를 테마로 탄생시킨 이 공간은 창의력이 확실히 돋보이는 걸작이었다.

▲ 아부다비 루브르 입구에서

미술관의 시작은 중동지역 유적지 출토물 부터였다. 이집트, 튀니지, 모로코를 아우르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과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등에서 발견된 사막의 작품들이 알차게 선보이고 있었다. 근대 프랑스인들의 심각한 약탈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유물들이다. 식민제국들이 가져간 물건들을 후세인들이 거액으로 빌려다가 본래의 지역에서 임대 전시하는 아이러니의 현장이었다.

다비드의 그림 '생 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 은 진품그대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가 늘 최상의 점수를 주는 위대한 화가들. 그 중에서도 드가, 마크 로스코, 마티스, 칸딘스키, 잭슨 폴락, 후안 미로, 르네 마그리트의 거작들이 무더기로 걸려있는 공간에서는 부러움과 함께 가벼운 경외감도 어쩔 수 없었다.

전 세계 도시를 하나의 선으로 표시해 이동하도록 한 아이디어도 참신했다. 화살표대로 가다가 기원전 3천년 경의 출토물들이 정돈돼 있는 공간과 만났다. 출처미상의 소장품들,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해온 문명의 구조적 이해를 돕는 안목과 기획이 돋보였다. 동물이나 사람의 중간형태를 창작해 만든 흙 인형(토우)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고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 철제 디자인된 돔 지붕 공간으로 스며드는 빛들의 낙하

한나라 시대의 중국 유물전시가 많았던 것은 독특했다. 중화문명이 시안을 떠나 서쪽으로 가면 키르기스스탄과 투르크를 거쳐 이란의 페르시아만에 도달한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동으로 이동해온 한나라 문화에 대한 이들의 높은 관심이 전시에 투영되고 있었다. 규모가 느껴지는 일본관에 비해 초라한 한국관은 아쉬웠다. 시간이 이 차이를 좁혀 주리라 생각하니 섭섭함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기분이지만.

전시실 마지막 방은 중국의 설치미술가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1957-)의 손길로 만들어진 'Fountain of light(빛의 우물)'이 연결되었다. 아부다비 루브르의 하이라이트다. 빛을 받아 고이게 하는 나선형의 불규칙 구조물이 신비롭다. 수많은 전시실을 지나면서 보았던 인간의 조각품과 그림들이 모두 거대한 자연의 빛으로 하나의 우주적 하모니가 형성되고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 이름값 5천7백 억 원, 소장품 순회 전시 값 8천 억 원, 그렇게 거액을 지불하고 10년만(2017)에 개장한 아부다비 루브르는 사람들의 새로운 버킷리스트로 부상했다. 모든 지원과 운영은 프랑스 루브르 팀이 주도한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문화 마케팅으로 대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 아이웨이웨이의 설치 작품 '빛의 우물'

'빛의 소나기(Rain of light)'. 이 주제에 걸맞게 장 누벨은 7500톤의 금속철제를 쏟아 부었다. 돔형 지붕 전체를 스테인레스 스틸과 철, 알루미늄 합금 소재를 무수하게 교차시켜 시공했다. 그 사이 사이에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은 태양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쫓아가면서 매일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낙하시키고 있었다. 지름 180미터 거대한 돔에서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빛의 축제가 아부다비 루브르의 백미다.

바닷가에 육중한 반구형 건축물을 세우고 내부와 외부에 한 겹 더 야자수를 응용한 철제. 그래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구조. 외부는 연중 반 이상이 40도의 열사지역이지만 이슬람 전통문양과 오아시스 수목들을 세공한 공간으로 투시되는 빛의 조화는 건축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건축은 빛의 향연이다" 고 말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정리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해협의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가벼운 파도가 다가오는 어스름 멀리 아부다비 중심지가 실루엣처럼 걸쳐져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심미적 이미지를 그려내 주고 있었다. 바다를 끌어들인 건축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나 그리스 해상에 수장된 옛 도시들에 비할만한 인류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싶다.

인간은 불완전한 개체다. 그 한계를 이겨내려고 종교를 만들었고 예술로 카타르시스를 하면서 문명사를 이끌어왔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품고 있었다. 위대한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중주 외에 종교와 인간의 솜씨가 녹아들어 예술의 변방 중동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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