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건주의 돋보기] 오피스텔보다 비싼 청년주택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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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주의 돋보기] 오피스텔보다 비싼 청년주택이라니
  • 장건주 기자 gun@cstimes.com
  • 기사출고 2019년 09월 23일 0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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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장건주 기자] 서울시가 청년 주거비 부담과 주거빈곤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이 제대로 헛다리를 짚는 모양새다. 웬만한 오피스텔보다 임대료가 비싸게 책정돼 대다수 청년들이 입주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이를 감안했는지 청년주택 일반 공급분의 입주 자격에 소득이나 자산 기준은 따로 적용하지 않아 고소득, 자산가 청년들도 입주 가능하게 했다. 주거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시행한 정책이 되레 청년들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안겨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구체적인 예로 지난 17일 청약을 받기 시작한 충정로 청년주택의 주택형별 월세를 보증금으로 환산한 결과 환산전세금은 전용 20㎡ 1억2479만원, 20∼30㎡ 1억8495만원, 30∼40㎡ 2억5574만원 수준으로 확인됐다.

이에 비해 충정로 근처 서대문·마포·종로·중구에 있는 오피스텔의 평균 환산전세금은 전용 20㎡가 1억3790만원, 20∼30㎡가 1억6913만원, 30∼40㎡가 1억8929만원이었다. 역세권 청년주택의 환산전세금이 오피스텔에 비해 전용 20㎡ 이하만 낮고, 20㎡ 초과 규모에서는 더 높은 것이다.

같은 지역 신축 오피스텔의 평균 환산전세금도 전용 20㎡만 1억4813만원으로 역세권 청년주택이 낮았을 뿐, 전용 20∼30㎡(1억7568만원)과 전용 30∼40㎡(2억5076만원)에서는 청년주택의 임대료가 신축 오피스텔보다 비쌌다.

서울시는 청년주택이 시세의 85~95% 수준이기 때문에 "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전용면적 20㎡를 제외하고는 주변 시세와 큰 차이가 없다. 또한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시세 기준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청년 주거빈곤 해소를 위한 청년주택 입주 요건에는 소득이나 자산 제한이 없다.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요건만 충족한다면 고소득, 자산가 청년들도 얼마든지 입주할 수 있다. 입주 자격을 '가난한 청년'들로 제한하면 미달은 불 보듯 뻔하다는 걸 예측이라도 한듯하다.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서울시가 청년 주거의 문제를 단순 공급 부족의 문제로만 치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것이다. 사실 역세권에 공급되는 원룸형 전·월세 주택은 지금 당장에라도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이렇게 임대 매물이 많음에도 대다수 청년들이 역세권 주택에 살지 못하는 이유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보증금 1억원이 넘는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가난한 청년들에겐 그저 '그림의 떡' 하나 더 주는 격이다.

입주자 모집이 끝나고 신청자의 자산 규모를 조사해보면 더 명쾌한 답이 나올 것이다. 보증금을 1억원 이상 내면서 입주하는 청년들을 '정책적 배려 대상'으로 봐야 할지는 서울시가 고민할 일이다. 금수저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은 민간에 맡겨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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