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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친 남자, 돈키호테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9년 08월 12일 오전 9시 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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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스페인의 라만차를 눈에 담고 싶었다. 사막과 마른 초원이 끝없는 평원의 중심부를 지중해에서 올라온 태양이 지배하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열사의 땅, 생명이 발붙이기 힘든 쓸쓸한 곳, 이 버려진 땅을 지나간 돈키호테의 모험이 오늘날까지 세상 사람들에게 영감과 사유를 안겨주는 비결이 무엇인지. 400년 동안 인류의 보편적 문학사를 관통하는 장대한 서사의 배경이 궁금했다.

스페인의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하는 라만차는 이베리아 반도 중앙의 광활한 땅이다. 이슬람의 마지막 왕조 알함브라 궁전의 그라나다에서 마드리드로 종단하려면 라만차 평원을 지나야 지름길이다. 5시간의 질주에도 지평선은 사방으로 더 멀어지면서 넓어졌다. 황토색 지면에 올리브 숲으로 채색된 부분녹색을 뺀다면 끝없는 황무지다.

마드리드가 수도로 정해지면서 카스티요 지방과 레온의 라만차는 오늘날까지 5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중심지다. 물론 바르셀로나를 기반으로 하는 동쪽의 아라곤과 카탈루니아 왕국이 합쳐진 결과이기는 하지만. 15세기말 컬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당시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왕자가 결혼해 17개 지역으로 흩어졌던 이베리아 반도에 가장 큰 통일국가가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무어인(북아프리카 이슬람세력)의 800년 통치를 몰아내고 이뤄낸 성취였다.

세르반테스(Miguei de Cervantes. 1547-1616)는 이때 라만차로 떠나는 '돈기호테' 를 세계문학사에 선물했다. 약간은 모자란듯 하지만 지칠 줄 모르고 전진하는 인간 돈키호테를 통해 속세를 풍자하거나 또는 칭찬하며 잔잔한 삶의 길을 제시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인간의 도리를 본편과 속편에 담아내 오랜 세월 빛나는 문학의 보고가 되었다.

▲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마드리드 시내의 옛집.  문화재로 잘 보존되어 있다.
▲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마드리드 시내의 옛집.문화재로 잘 보존되어 있다.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 근교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수도사의 길을 걷고자 했다. 이런 그의 꿈은 레판토 해전이 벌어지면서 운명이 뒤 바뀌어 버렸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중해 건너 알제리 해적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고 4년 동안 5번이나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다.

돈키호테는 1605년 출간된 전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와 1615년 출간된 후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 등 2권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당시 소설형식으로 2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작품은 드문 일이었다. 필리핀을 식민지로 개척한 펠리페 3세와 에스파냐 국민들이 애독한 책이기도 하다.

"모든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이 끓어진 실을 이으면서 내가 여기에 쓰지 않은 것들, 잘 언급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다룬 시간이 글입니다. 안녕 아름다움이여, 안녕 재미있는 글들, 안녕 기분 좋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을 다음세상에서 곧 만나길 바라면서."

세르반테스의 유작 '사랑의 모험' 에 기록된 이 문장은 그의 앞서간 유언이었다. 세르반테스는 영국의 자존심 세익스피어와 같은 날(1616.4.23) 죽음을 맞이했다. 두 거장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유네스코는 1995년 총회를 통해 매년 4월23일을 '세계 책의 날' 로 선포했다.펜은 영혼의 혀이므로 영혼에서 싹튼 생각이 정결하면 좋은 글이라고 자평한 세르반테스의 고백은 지금도 유효하다.

▲ 「돈키호테」 한국어판 1,2권. 고려대 안영옥 교수 번역본이 정통하다.
▲ 「돈키호테」 한국어판 1,2권. 고려대 안영옥 교수 번역본이 정통하다.

시골마을의 평범한 농부 산초는 가난한 귀족 돈키호테의 제안으로 모험을 떠난다. 자기를 영주로 만들어준다는 제안에 홀딱. 그런데 돈키호테가 이상하다. 적들을 제압하겠다며 용감하게 풍차에 달려드는가 하면 장례행렬을 보고 억울하게 죽은 자의 시신을 훔쳐가는 도둑들이라며 시체를 내놓으라고 생떼를 쓰기도 한다. 공작부부가 이 모험담에 끌려 섬을 내주고 산초는 정말 영주가 되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일주일 만에 다시 모험을 떠난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작가의 상상속에서 다른 대상으로 변한다. "제대로 살피고 일을 하시라고요. 저건 풍차예요. 머릿속에 그런 해괴한 생각을 담고 있지 않다면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산초의 핀잔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돈키호테는 "자네 눈엔 이발사 대야로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맘브리노 투구로 보이는 걸세. 다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겠지(전편 25장)". 이상한 기사 행각을 통해 던지는 이들의 엉뚱함과 유머는 오랜 시간 후세들의 교훈과 사유의 창고가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현세를 사는 인간세계는 고통과 위기의 연속이었다. 돈키호테는 말한다. "세월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은 없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전편 15장)". 그 무대를 딛고 일어서는 인생의 본질은 갖가지 형태를 취하는 운동이다. 끝없이 흔들리고 움직이는 다양한 사고행위를 통해 얻는 지식이나 이해를 감성에 버무리면 기발한 것이 탄생한다. 만약 막힌다 해도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산초의 말처럼 "아이들은 손으로 가지고 놀고 젊은이들은 읽으며 어른들은 이해하고 노인들은 기린다". 인생을 살아보면 이것이 진리임을 안다. 결국 삶은 경험 있는 자아와 끓임 없이 싸우며 성장하는 과정임을 반증해주는 명구들이다. 생각과 노동이 죽음인 시대의 나라에서 희망의 서사시를 읊다 떠난 세르반테스. 그가 불멸하는 이유는 지혜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 돈키호테의 흔적이 남아있는 스페인 라만차의 콘수에그라
▲ 돈키호테의 흔적이 남아있는 스페인 라만차의 콘수에그라

"나리, 죽지 마세요. 그렇게 게으름뱅이로 있지도 마시고요. 그 침대에서 얼른 일어나 우리가 약속한대로 들판으로 나아갑시다요. 오늘 진 자가 내일은 이긴 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니.(속편 74장)". 돈키호테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침상에서 죽어가지만 그 옆에는 또 다른 돈키호테가 된 산초가 있었다.

돈키호테는 현재까지 연극, 음악, 발레 등의 예술장르를 넘어 이제는 쇼핑몰 간판으로까지 전 세계에서 매년 재탄생 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치광이"의 아이러니가 현실의 벅찬 이야기로 살아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운명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한 가지 사실뿐이다(소크라테스)". 이 말을 체화시키기 까지 살아온 과거의 기억들이 아득하다. 사는 동안 내가 이겨낸 고통이 경험이 되는 것이고 고통으로 단련된 강인한 정신력이 나의 운명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운명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사람이 되어야 싹수가 있겠지. 개인만 그럴까. 국가공동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황금시대 행복한 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내 것), (네 것)이라는 두 개의 말을 몰랐기 때문이라오. 모든 것이 다 공동소유였소. 맑은 샘과 강물은 맛있고 깨끗한 물을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소. 모든 것이 화평했고 모두의 의리가 두터웠고 모든 것이 조화로웠소(전편 11장)

오늘날 세상의 모든 갈등을 그 시대에 예견한 세르반테스는 문학의 경계를 넘어 후손들의 경제에도 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스페인 정부는 몇 년 전부터 '돈키호테 순례길' 을 만들었다. 마드리드에서 옛 수도 톨레도를 거쳐 라만차로 이어지는 장대한 코스다. 길을 잃은 방문자들을 위해 타일에 엑스자 문양을 넣고 구운 표지석을 길바닥이나 갈래 길 곳곳에 걸었다. 지금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오는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는 주목을 받고 있다.

▲ 톨레도 시내에서 라만차 평원으로 나가는 돈키호테 순례길 표지
▲ 톨레도 시내에서 라만차 평원으로 나가는 돈키호테 순례길 표지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열정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이자 그림자이며 허상이다.

모든 인생이 꿈이며 꿈은 단지 꿈일 따름이다".

스페인 바로크 문학의 거장 칼데론이 돈키호테를 평론하면서 남긴 이 문장을 나는 가끔 애송할 정도로 좋아한다. 이 명제대로 세르반테스가 그려내고 창조한 구성과 언어는 시대를 멀리 내다보는 선지자의 예언이었다. 심각하다가 더해지면 미쳐버리고 싶은 보통사람들의 심리적 변론이자 피난처다.

결연하고 비장하기까지 한 돈키호테의 묘비명은 끝내 해학으로 마음을 녹여내고 있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욕을 퍼붓는 자가 있으니

용서가 가까이 있음이라(속편 70장)"

돈키호테처럼 꿈에 미쳐보는 것, 그것이 열정이고 그래서 삶이다. 은화한 광인이 세상을 바꾼다. 훌륭한 희망이 보잘 것 없는 소유보다 나을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인이 들려주는 인생의 경전.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꿔야 한다. 꿈꾸는 자와 꿈꾸지 않는 자 과연 누가 미친 거요?"

그라나다에서 한나절을 종단한 버스는 이베리아 반도의 종착역 마드리드 아토차 역 근처에서 나를 버렸다. 솔 광장과 에스파냐 광장을 차례로 거쳐 마드리드 중심가 네거리에 마련된 세르반테스 광장에 들어섰을 때 내 온 몸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위대한 작가는 거기 거대한 청동상으로 우뚝 서 여정에 지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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