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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후쿠다의 이데올로기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9년 07월 11일 오전 8시 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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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인근 지바의 여름은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노출되어 있었다. 후쿠다와 나는 찌는 듯한 더위와 내려 꽂이는 직사광선 사이를 누비며 골프코스에서 샷을 날렸다. 비거리가 장기인 그는 주눅이 들어있는 나를 내내 정겨운 미소로 풀어냈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혼자만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듯, 그래서 이야기가 길어졌고 몇 개 홀을 더 지났을 때는 고백이 되었다. 마침내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 밀려 올 때쯤 그의 얼굴에는 평화의 기운이 감돌았다.

후쿠다의 아버지는 남한 출신 재일교포였다. 일본사회에서 차별의 경계선을 서성거려야 하는 이른바 자이니찌(재일동포)’ . 부친은 빠친코 사업으로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기반을 닦았다.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그를 모르는 한국인들이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조총련 쪽이었다. 북한체제에서 요구하는 정치헌금을 아낌없이 보냈고 한때는 재일한국인들을 모아 북송선에 태워 보내는 책임자 역할도 했다.

일본교포사회는 북한을 지지하는 총련과 남한을 지지하는 민단으로 나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후쿠다는 이런 아버지의 이력과 권유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평양으로 들어갔다. 국가대표 축구부 2진으로 2년 동안 지냈던 평양은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지상낙원이라고 선전했던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이데올로기의 광장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알게 된 조총련 출신 스포츠 스타 정대세는 그가 아끼는 축구후배다.

북한을 포기하고 일본에 건너온 후쿠다는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는 인간의 자유와 창의성을 최고로 보장하는 분위기였지만 역시 견디지 못하고 얼마 만에 일본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정체성으로 방황하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 뒤 떳떳하지 못한 사업들을 모두 정리하고 민단 쪽으로 전향했다.

▲ 일본 지바현의 호린컨트리클럽에서 후쿠다와 함께
▲ 일본 지바현의 호린컨트리클럽에서 후쿠다와 함께

 후쿠다는 소설가 최인훈(1936-2018)광장(1961년 작)’에서 그려낸 주인공 이명준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청년시절 이명준의 기막힌 운명을 읽으면서 몸을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떤 선택도 마다하고 바다로 몸을 던져버리는 기구한 한 인간의 절규가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었다

이명준은 한국전쟁을 앞두고 갑자기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는 월북해 버려 홀로 서울에 남아 대학 철학과 학생으로 아버지 친구 집에 얹어 살고 있다. 그는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편협하게만 인식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북한에 살면서 대남방송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명준은 경찰서에 불려가 구타를 당하고 어떤 연락이 있는지 조사를 당했다. 형사들은 그를 빨갱이로 몰아 부친다.

이명준은 환멸을 느끼고 월북한다. 그러나 이명준의 눈에 비친 북한은 사회주의로 굳어진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할 뿐 활기차고 개성이 보장되는 진정한 삶의 광장은 없었다. 남과 북을 오가며 양측의 이념을 선택했으나 그는 어떤 진실도 발견하지 못하고 허무에 빠진다. 그러던 중 자원입대한 낙동강 전선에서 간호원 은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이념의 무의미함을 어느 정도 보상받지만 그것은 개인적 삶의 한정된 행복일 뿐이고 진정한 의미의 광장은 아니었다.

전선의 연인은 미군 폭격으로 죽고 그도 포로가 된다. 남북이 집요하게 전향을 요구하지만 양쪽 다 진정한 삶의 광장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그는 제3국행을 선택하고 인도의 타고르호에 올라탄다. 이명준은 갑판에서 깊은 고독에 쌓여 수평선을 날아다니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돌연 바다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그에게 바다는 살아있는 동안 무던히 찾아 해메였던 푸른 광장이었던 것이다.

분단의 아픔을 이보다 더 섬세하게 묘사해낸 소설가는 없었다. 숱한 논쟁의 주인공이었던 최인훈은 팔순을 넘겨 암투병으로 고생하다가 지난해 (2018) 세상을 떠났다.

▲ 분단문학의 명작으로 꼽히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
▲ 분단문학의 명작으로 꼽히는 최인훈의 소설 ‘광장’

 후쿠다는 요즘 민단을 지향하는 이들과 자주 교류하면서 잔잔한 생활을 하고 있다. 50대 중반의 지긋한 나이, 얼굴에는 주름살이 적지 않다. 뭔가 사회에 유익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서 환경재처리 회사를 차렸고 본사가 있는 규슈의 오이타현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후쿠다는 자신이 본 남과 북의 경험에 대해 말을 아꼈다. 미국 유학시절 이야기는 많이 했지만 각기 다른 이데올로기의 변방에서 고통스러웠던 젊은 날을 회상하기가 썩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싶었다.

후쿠다는 결국 총련도 민단도 마다하고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그에게 한국어 본명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조선 이름은 일본에서도 북한에서도 미국에서도 차별과 낯선 동화의 한 자락 같은 회한만을 남긴 굴레였다. ‘후쿠다 히로유키는 이제 간사이(관서지방)의 듬직한 기업가로 다른 인생을 가고 있다. 차별과 방황의 긴 터널을 지나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땀방울을 닦으며 운동을 즐기는 후쿠다는 그냥 보기에 평범한 일본인 아저씨였다. 그의 내면에 이처럼 기나긴 사연이 담겨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가끔 샷이 빗나가면 아이고 망했네를 구수하게 연발했다. 이따금 제주도를 방문하고 서울에도 들리지만 가장 편안한 곳은 오사카라고 털어놓았다. 지루한 사죄요구와 보복으로 얼룩지고 있는 한일관계를 애써 외면하는 그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골프를 마치고 같이 샤워를 하면서 나는 후쿠다에게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더는 묻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온탕에 몸을 담그고 바라보며 서로 넉넉한 웃음만을 주고받았다. 좋은 인연이 되고자 하는 이심전심으로 둘은 마음이 훈훈해져 생맥주 한잔씩을 걸쳤다. 재일교포사회는 아직 가슴 아픈 한국인의 디아스포라로 남아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서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정의합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그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니다” (최인훈의 광장중에서)

나는 후쿠다를 좋은 동생으로 생각하고 오래 만나자는 약속을 남긴 뒤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허무와 차별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 선택한 그의 남은 인생에 신의 따뜻한 미소만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면서.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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