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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아부다비 사막에 뜨는 별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9년 05월 20일 오전 8시 19분

불처럼 타오르는 사막을 맨발로 걷고 싶었다. 거친 땅에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파충류들처럼 자유롭게 모래 언덕을 걸어 올라가고 싶었다. 거기에서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먹먹한 가슴을 주저앉히고 싶었다. 기어서도 오를 수 없는 모래사구 가파른 언덕을 수없이 미끌어지면서도 이 땅의 본질을 끝까지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1시간 여 만에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드러났다. 섭씨 43도 찌는 듯한 폭염과 숨 막히는 지열, 죽음의 대지는 그렇다 치고 생명의 소리 한 자락 남아있지 않는 절대 고독속의 침묵은 견디기 힘든 시험이었다.목이 마르다거나 발바닥에 불이 붙는 듯 타들어 올라오는 물리적 감각의 문제가 아니었다. 점차 진공상태로 변하기 시작하는 영혼의 줄기들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문제였다.

사막을 건너보고자 했던 나의 무모한 낭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수 천 년을 응전하며 인내로 대항해온 역사의 두께도 모르고 마주한 잠깐의 용기였다. 붉은 모래밭은 이글거렸다. 잔혹한 신의 제단 앞에 서는 느낌이 맞았다. 죽음의 벌판에 목숨을 걸고 이동하는 베두윈족은 오직 알라의 계시만을 따를 뿐이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공사에서 공모한 8천편의 시 가운데 수작을 차지한 짧은 한수가 내 기억에 매달려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서편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의 사선을 따라 모래 열기는 30도 중반까지 내려갔다. 라마단 기간인줄도 모르고 찾아 나선 아라비아 반도 동쪽의 초여름은 견디기 힘든 선물이었다. 이 벌판을 지나면 페르시아만 호르무즈 해협 쪽이다. 석유를 두고 벌어지는 인간들의 갈등이 예리하게 교차하는 곳이다. 사르자와 두바이를 거쳐 지나온 여정이 다시 하늘과 맞닿아 이어지는 아스라한 사막이다.

▲ 아부다비 밥 알샴 인근 사막
▲ 아부다비 밥 알샴 인근 사막

먼 지평선은 이제 점점 꿈이 없어져가는 가난한 나에게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매개였다. 오직 육체 한 걸음 한걸음으로만 전진을 허락하는 모래밭의 느린 시간은 무엇이든 참지 못하고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 경전의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내 눈은 다시 출발점을 찾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만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았어야 하는데도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 하소서”

발이 푹푹 빠지는 황야에서 물 한 병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않고 조용한 참회로 마친 하루가 만족스런 나의 친구였다. 유목민 텐트 난간에 쌓인 무수한 이야기와 지상의 줄기보다 몇 배를 더 깊이 지하로 내려 물을 찾는 풀뿌리에서 이 땅의 전설들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풍장으로 마무리된 목숨들이 수없이 떠도는 모래벌판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섰다.

▲ 석양이 매혹적인 아라비아반도 사막의 시간
▲ 석양이 매혹적인 아라비아반도 사막의 시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의 모습으로 무소의 뿔처럼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제 얼마를 더 가야 내 인생 지혜의 샘터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행로다. 고대 인도인들이 아라비아반도를 횡단하면서 음송했던 ‘숫타니파타’ 의 경전은 이 땅에서 아직도 유효한 작은 위안이다. 누구나 그런 사람이 되기를 수없이 다짐하며 살지만 그 생애 안에 그 업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숙제다.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

모든 속박을 끓고

괴로움과 욕망이 없는 사람

미움과 잡념과 번뇌를 벗어던지고

맑게 살아가는 사람

거짓도 없고 자만심도 없고

어떤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도 않는 사람

이미 강을 건너 물살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아부다비에서 두바이 쪽으로 뻗어나가는 밥 알샴의 사막은 순간 천지를 뒤 덮는 모래폭풍에 휩싸였다. 지상의 모든 물체가 자욱하게 묻혀 버렸다. 낙타도 작은 길도 건조에 지친 풀포기도 바람보다 빠르다는 사막가젤과 가끔 보이던 들쥐들까지 일체를 집어삼켰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진 지면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조금 전보다 더 짙어진 석양만이 그림자를 길게 그려내고 있었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다가 발아래 사멸한 도마뱀의 유체를 만났다. 완전히 삭탈되어 종잇장처럼 지표에 붙어 있었다. 모래폭풍이 쌓이고 세월이 가면 도마뱀은 화석이 될 것이다. 생명은 어떤 이유에서든 모두 숙명처럼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린다. 어떻게 끝을 맺을지 각자의 결이 다를 뿐이다. 문명의 세계와 너무나 멀리 떨어진 모래언덕에 도마뱀은 사구의 바람을 거꾸로 안으며 누워있었다.

“내 무덤 앞에서 눈물짓지 말라

난 그곳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

난 수 천개의 바람이다

난 눈 위에서 반짝이는 보석이다

난 잘 익은 이삭들 위에 빛나는 햇빛이다

난 가을에 내리는 비다

당신이 아침의 고요 속에 눈을 떴을 때

난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새들의 가벼운 비상이다

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난 거기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

(‘내 무덤에서 울지 말라’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

▲ 사막에서 생명을 잃은 도마뱀의 유체
▲ 사막에서 생명을 잃은 도마뱀의 유체

사막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저 운명처럼 모든 것을 느리게 기다려야만 한다는 것이다. 태양이 뜨고 지는 평범한 일상이 모든 것을 지배하므로 이 간단한 방정식에 순응하는 것이 최고의 과제다. 아랍사람들은 낮에 그늘에서 쉬고 밤이면 모여 음식을 나눠먹으며 축제를 벌인다. 라마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그들만의 생존비결이다. 기다릴 줄 알아야 살아남는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아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고 있다” (황지우)

태어나서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는 동안 기다리는 대상은 바뀐다. 젊은 날에는 행운이나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중년이 지나면서 인간은 운명이나 신을 기다린다. 무엇이 되었든 기다림은 아름다운 미학이다. 사막에서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며 잠들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벌판 끝단으로 떨어지는 노을을 보며 신기루 같은 잠언들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석양의 사막은 셍텍쥐베리가 만들어낸 어린왕자와 여우가 만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막은 아름다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우물이 숨어있기 때문이야.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우주별 몇 개를 거쳐 온 어린왕자가 말이 통하는 여우에게 건네는 언어들이다. 나는 빛이 사위어가는 지평선의 끝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윽고 개와 늑대의 시간을 거쳐 라마단의 뜨거운 하루가 저물었다.

“그림자 길어져 사막너머로 떨어지다가

일순 어둠이 된다

초승달 아래 나 혼자 남아

내안을 들여다보는데

마음 밖으로 나간 마음들

돌아오지 않는다

아침은 멀리 있고 나는 네가 그립다” (이문재)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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