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금각사, 너무 소란스러운 고독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9년 03월 07일 오전 9시 53분

슬로건2.jpg
그곳에는 확실한 데카당스의 기억이 짙게 남아있었다. 20킬로그램의 금을 녹여 10센티미터 정사각형 10만장의 금박을 만들고 옻칠과 아교로 몇 년에 걸쳐 빚어낸 황금색 허무가 있었다. 3층 구조의 단순하고 조용한 절. 넓은 1층부터 조금씩 사각이 줄어드는 3층까지 시선으로 더듬어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몇 번, 평범한 건물 하나가 영원의 순간을 가졌다고 해석되어지는 경지에 오르기까지 동원된 무수한 상상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무로마치 막부시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개인 별장으로 사용하려 했지만 그가 죽은 뒤 가마쿠라시대에 지어진 사이온지가의 산장을 다시 별장으로 개조했다든지, 그의 유언대로 쇼쿠구사타의 선사가 지은 로쿠온지(鹿苑寺)가 되었고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긴가쿠지(金閣寺)로 남았다든지. 2천개가 넘는 교토의 사찰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고 그래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1994)으로 지정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은 나의 관심이 아니었다.

정신병을 앓던 수도승의 방화로 완전히 불타버린 사건(1950)을 모티브로 소설 ‘금각사’를 창작해낸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탐미적 본질을 알고 싶었다. 그 현장을 시선에 담아보고 싶은 기다림으로 교토에 올 때마다 들렀으니 사계절의 금각사를 다 본 셈인데 역시 쓸쓸한 겨울 금각사가 가장 깊은 맛이 있었다. 금각사는 매순간 호수(鏡湖池)면에 복사된 데칼코마니로 시간을 거스르고 있었다. 가라앉은 낙엽들의 죽음을 안고 가는 쓸쓸한 물그림자.

▲ 일본 교토의 겨울 긴카쿠지 (금각사)
▲ 일본 교토의 겨울 긴카쿠지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는 소설 ‘금각사’ 에 자신의 인생을 색칠해냈다. 할머니 손에 자라 연약하고 수줍은 소년이 그 콤플렉스를 털어내려고 청년기에는 검도로 육체를 단련한다. 심리의 이중적 구조는 이승에서 아름다운 것을 영원히 가지려면 그 대상을 파멸시켜야 한다는 세계관으로 전이되어 갔다. 미시마는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절정의 나이에(45세) 소설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추종자 4명과 함께 미치가와 육상자위대에 난입해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몇 년 전 나오시마 미술관에서 보았던 미시마의 절규와 머리띠를 맨 마지막 모습이 자꾸 오버랩 되었다. 군국과 제국의 향수를 잊지 못한 극우주의자라는 비판은 이제 역사로 남았다. 삶 그 자체를 최고의 미로 생각한 한 예술가의 심미주의 세계관이 온전히 실린 금각사는 소설과 현실의 묘한 경계에서 세계적 명소가 되었다. 군국주의자이기 이전에 탐미주의에 젖은 한 인간의 진실을 엿보고 싶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아련하다.

소설 ‘금각사’ 의 주인공 미조구치는 말더듬이 왕따 소년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방문한 학도병 선배의 단검이 탐미의 대상이었다. 그것을 가질 수 없는 미조구치는 단검에 거친 흠집을 냄으로서 선배의 물건이 아닌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는 경험을 한다. 외관으로 존재하던 단검은 이제 미조구치의 관념 속으로 들어왔고 영원불변의 아름다움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우이코는 미조구치에게 처음으로 이성의 충동을 느끼게 해준 대상이다. 하지만 그녀는 말더듬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느 날 탈주범과의 사건으로 우이코는 총에 맞아 허무하게 죽는다. 관능적인 그녀에게 가졌던 증오는 죽음으로 온전히 미조구치의 내면에 머물게 된다.

쓰루가와는 미조구치가 금각사 수도승으로 들어간 뒤 처음 사귄 친구다 말더듬이였기 때문에 고립된 주인공에게 정화의 통로이자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신체적 허물을 덮고 진실로 대해주던 그도 얼마 후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순수한 쓰루가와의 우연한 죽음은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아버지 때문에 알게 된 금각사지만 그사이 아버지가 죽고 미조구치는 사찰생활에 익숙해진다. 금각사를 마주하며 매일 황홀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수록 하나의 욕망이 자라기 시작한다. 지상최고의 사찰을 가지려면 주지를 살해하는 것보다 금각사 자체를 불태우는 상상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결코 본적이 없다고 경탄하면서 어느 날 결국 불을 지르고 만다. 금각사는 미의 절정이자 극복대상이었다. 아름답지만 소유할 수 없는 질시의 대상. 소유하는 길은 파멸뿐이다. 이것이 소유의 유일한 방법이다. 미조구치가 불타오르는 금각사를 뒷산에서 숨어보며 소설은 끝난다.

▲ 소설 금각사를 쓰던 시절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
▲ 소설 금각사를 쓰던 시절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

영원불멸의 대상인 금각사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은 존재의 부정이다.절을 없애버려야 오로지 자신만이 인지하고 있는 미를 완전히 가질 수 있다. 욕망의 대상을 소멸시켜 영원을 추구하던 상상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한창 나이에 자살로 육체를 버렸다. 미를 향한 소유의 방법이 파괴와 소멸이므로 최고의 미는 부셔버려야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논리다.아름다움은 소멸과 파괴 속에서만 영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에 부대끼며 사는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사랑과 욕망,질시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은 누구나 금각사처럼 방화의 숙명 앞에 놓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모든 일들은 소설과 현실의 난해한 언저리에 걸쳐있다. 탐미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고 믿고 살면 고통스런 일상에서 얼마간의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실제 방화범 하야시 쇼켄(1929-1957)의 재판 기록을 구해 읽어보았다. 절간에서 일하던 부부사이에서 태어났고 불교적 본성이 강한 심리구조였다. 그의 인생은 소설에서 묘사된 미조구치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화의 원인이 나에게 있었으니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겠다. 항소도 하지 않겠다”(법정최후진술). 징역 7년 만기출소 후 폐결핵 합병증으로 27세에 사망한 그는 소설 속 미조구치의 아바타였다.

금각사의 도제생활과 방화까지 사실적 취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낸 미시마의 독특함이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인간의 본능(선악)과 미의 상징성을 자기만의 철학으로 채색한 수작이다.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괴물인가. 맹자와 순자가 수없이 교차하는 현세의 시간들이 광대한 실험장이다. 선은 악의 독성을 제거하면서 밝은 쪽을 향하는 특성이 있다. 악은 금기의 대상이 아니라 고유한 그 자체의 특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불타 버린 금각사는 일본 전 국민의 모금으로 재건되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금각사 다시읽기 를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이노곡을 들으며 읽어야 ‘금각사’의 제 맛이 난다던 어느 시인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해볼 작정이다. 러시아 풍경과 일본신도(神道)의 토템적 혼동이 주는 묘한 조화는 어떤 기분일까.

아름다움은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다. 최초에는 탄생이 아름답고 나중에는 죽음이 아름다운 것처럼. 누구를 좋아하면서 상처가 두려워 그 중심의 미학을 피하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변방으로 도피하다가 어둠으로 사라져 잠적한다. 금각사는 찬란하지만 다가설수록 사라져가는 인생의 페르소나 같았다.

사방의 풍경을 시선에 담고 다시 금각사 호수 앞에 섰다. 눈을 감고 상상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나도 미조구치처럼 갑자기 이 절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짧은 상상 뒤 내 눈앞의 금각사는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3층 지붕 끝 봉황(청동금상)은 색다른 상승감으로 충천해 있었다. 단선으로 날렵한 건축의 화룡점정이다. 금각사는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간들의 소란스런 발걸음과 탐미적 상처를 그저 묵묵히 담아내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 컨슈머타임스(http://www.c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