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응의 펜촉] 상속세 인하,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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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응의 펜촉] 상속세 인하,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 박준응 기자 pje@cstimes.com
  • 기사출고 2018년 12월 17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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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박준응 기자] 최근 기업 승계 상속세 인하가 재계 화두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말들이 무성하더니 어느새 조만간 상속세가 인하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구광모 LG회장이 지분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발생한 상속세를 그대로 납부한 것이 기점이 됐다. 구 회장이 내야 할 거액의 상속세 규모가 알려지면서 높은 상속세율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후 기다렸다는 듯 주요 경제지 사설을 중심으로 상속세 인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지난 4일에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가업상속세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요 정당 또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찬성의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한국경영자총회는 국회에 기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율을 현행 50%에서 25%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며 보조를 맞췄다. 

상속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측의 논리도 시간이 흐르면서 탄탄해졌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상속세율(50%)이 일본(55%)에 이은 세계 2위라는 수치가 제시됐다.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후 상속세 부담이 커 기업 승계를 포기하는 중소기업의 사례가 소개됐다.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해줘야 한다는 호소였다. 이와 함께 투자, 고용창출 등 기업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일종의 경기부양책 개념으로 상속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대승적인 차원의 명분도 마련됐다. 

하지만 이대로 흐름에 휩쓸려 상속세를 인하하는 게 맞는 지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축적한 부에 비해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승계비용조차 아까워 어떻게든 편법을 찾으려 노력해온 재벌들의 부의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상속세는 재계에서 그간 언급 자체를 피해온 화두다. 편법승계를 일삼아온 오너가의 구태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2세, 3세 명의로 비상장 자회사를 세우고 일감을 몰아줘 열심히 키운 뒤 상장하거나 합병하는 '테크트리'는 이미 공식처럼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궁색하지만 언제나 효과가 좋은 '경영권 위협' 운운도 편법승계를 정당화하는데 늘 사용되는 단골 멘트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같은 '뻔뻔함'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다. 거액의 상속세를 합법적으로 깔끔하게 납부한 구 회장의 선의 뒤에 숨어 이때다 싶어 상속세 인하를 요구하는 '뻔뻔함'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상속세를 제대로 내본 적이 있기는 하냐'는 비아냥 뒤에 숨은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를 우중(愚衆)의 떼쓰기나 못 가진 자의 열등감 정도로 치부하는 건 비겁하다. 법망을 교묘하게 회피하며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라도 부를 물려주는데 급급했던 그간의 행적부터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다른 나라의 상속세율과 우리의 상속세율을 비교해 과도하다고 지적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수치에만 매몰돼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다른 나라의 현실과 다르다. 상속세는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사회에서 소득세를 보완하고 부의 재분배를 강제하는 순기능을 해왔다. 

물론 기업의 연속성과 안정성은 중요한 가치다.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사정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각종 경제지표도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계 부담을 덜어주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상속세 인하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면 정책적으로 논의해볼 만한 문제다. 

하지만 지금처럼 얼렁뚱땅 여론을 만들고 이에 편승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풀어가선 안 된다. 지금도 국민들이 서슬 퍼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그리고 그 국민들이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정치권, 재계의 합의만으로 끝나선 안 된다.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 학계를 포함한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상속세 인하가 정말 필요하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인하하더라도 단순히 세율만 내리는 걸로 끝나선 안 된다.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는지, 그 해결방법은 무엇인지, 일괄적으로 내려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 기준에 따라 적용대상을 선별하는 게 좋은지 등 세부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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