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률 콘서트 '답장', 장인정신 깃든 우동집 사장의 눈물나게 아름다운 고뇌(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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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콘서트 '답장', 장인정신 깃든 우동집 사장의 눈물나게 아름다운 고뇌(공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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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김동률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이 2008년이었다. 이전에도 김동률이 공연 잘 한다는 얘기를 들어왔지만 라이브 실황 편집앨범 '초대'를 접한 뒤 직접 한 번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대형 공연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Monologue' 콘서트를 접했다.

뜬금없이 고백을 하자면 기자는 당시 공연을 보면서 '어깨에 뽕이 장난 아니게 들어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적인 디스가 아니라, 본인이 무대에서 관객에게 가장 빛나 보이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쁘게 얘기하자면 김동률의 공연은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웅장했고, 조명과 음향·연주와 보컬 모두 어우러져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본 느낌이었으나 기자는 이를 단지 '보여주기'로만 치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선입견이란 무서운지라 이후에도 김동률의 공연을 서너번 갔음에도 늘 기자의 관심사는 '어깨의 뽕'이었다. 하지만 김동률 팬들에게 혼쭐나기 전에 결론을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은 김동률의 음악적 배경이나 그가 추구하는 음악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론내린, 무지와 치기의 소치였다. 확신할 수 있다. 김동률은 이번 공연에서 기자의 모든 -무지와 치기의 소치였던-선입견을 '박살내'버렸다. 발라드 가수니까 '녹여'버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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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은 지난 12월 7일 부터 9일까지 3일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8 김동률 콘서트 '답장''을 개최, 3만여 관객을 열광시켰다. 3년 2개월만에 가진 공연이었다.

김동률은 실내가 암전된 상황에서 첫곡 '문 라이트(Moonlight)'를 부르며 등장했다. 지난 1월 발표한 '답장' 앨범 수록곡으로, 이 곡에서 김동률은 천과 조명을 이용해 마치 레이저 사이 오로라 같은 신비로운 빛 아래 노래를 이어갔다. 잘 알려져있듯 김동률 공연의 조명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멀리 있는 관객에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대형 공연장 필수 장비로 꼽히는 대형 스크린이 두 번째 곡인 '사랑한다는 말'에서 처음 쓰인 것은, 그만큼 공연장의 조명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대형 스크린의 화면 빛이 무대 조명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공연 중 김동률은 조명의 빛이 절정에 달하는 몇몇 곡에서 대형 스크린을 공연장 위로 올려버리면서 자신의 얼굴이 아닌, 무대 조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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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중후한 목소리는 무대를 가득 채운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선명히 전달됐다. 여담으로 기자가 공연을 관람한 좌석은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거의 정중앙이었는데, 자신있게 말하지만 사운드 밸런스는 '특급' 수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을 감으면 아까울 정도로 빛의 향연이 펼쳐지지만 김동률의 목소리와 완벽히 구현된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인해 절로 눈을 감게 되곤 한다.

체조경기장에서 여러 번 공연을 한 경험에서 나온 사운드 밸런스 조절이라고 볼 수만도 없다. 체조경기장 리모델링으로 인해 사운드 디자인 역시 리모델링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완벽하게 구현한 것은 경험도 경험이지만 본인 공연에서 쓰이는 사운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김동률 공연에선 단지 밴드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잡아야 하기에 훨씬 많은 공이 든다. 실제로 데뷔 20년이 넘은 가수들 중에서도 사운드 밸런스 하나 조절하지 못해 좌석마다 음향이 다른 황당한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김동률이 공연 중 여러 차례 고마움을 표했듯 빛의 마술사 김지운 조명감독, 완벽한 소리를 구현한 김영일 음향감독, 빈틈없는 연출을 선보인 이윤신 감독은 김동률 공연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국내 정상의 밴드와 브라스, 코러스, 오케스트라 비롯한 50명 연주자의 무대는 김동률과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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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서 밖에서 고생하셨을 것 같다. 안 졸리게 해드려야 되는데 내 곡은 다 발라드"라며 농을 건넨 김동률은 "오랜만의 공연이라 목이 탄다. 10년 전인 2008년 체조경기장에서 처음 공연을 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큰 공연장은 무리가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 몇 번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더 하고 오늘, 10년 만에 와도 항상 이 넓은 곳을 꽉 채워주셔서 감사하다. 3년만의 공연이다. 여러분만큼 나도 기다렸다. 오래 준비한 만큼, 그리고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시게 한 만큼 후회없는 공연 보여드리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김동률이 집착스러울 정도로 스트링 편곡을 좋아한다는 것-그래서 기자가 처음 '어깨 뽕'이라고 오해하기도 했다-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동률이 말했듯 몇몇 곡은 오리지널이 더 좋은 것도 있다. '오래된 노래'가 그 중 하나인데, 미니멀한 기타 온리 반주로 시작해 중간에 잠시 최소한의 스트링을 가미한 후 다시 미니멀하게 마무리한 것은 과한 스트링이 아니기에 오히려 더 감동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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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금관 6중주 편곡으로 새롭게 해석한 곡 '오늘'은 브라스와 스트링의 중후한 조화가 돋보였다. 고상지의 반도네온 연주가 깊이를 더한 '배려', '연극'은 김동률 음악의 다양성을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김동률은 "신보가 많아서 셋리스트 경쟁이 나름 치열했다. '오늘'처럼 과거 곡을 편곡한 것도 있지만 공연장에서 듣기에 더 편곡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 그대로 간 노래도 있다. '배려'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김동률은 "김동률의 곡을 들어보면 과거집착형에 후회남이라는 소리도 있더라. 물론 내 위로 윤종신, 유희열 등이 있다. 이들은 못 건드린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뒤 "과거집착형이라는 표현보다는 현재의 행복함을 늦게 느끼는 편이 맞다. 예를 들어 '청춘' 같은 곡이 그런 것을 잘 표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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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이어 '그게 나야'로 1부 공연을 마감한 뒤 인터미션 동안 스크린을 통해 공개된 김동률의 인터뷰는 그야말로 이 공연에 온 팬들에겐 선물같은 것이었다. 감히 말하자면 팬들에게 있어서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이 공연에 온 가치는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김동률은 "2015년 '동행' 공연때 앵콜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이 순간이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서 미치도록 슬펐다. 팬들, 밴드, 공연 스태프들을 생각하니 '내가 많은 걸 누려왔구나, 정말 행복하구나… 그런데 영원하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러면 난 어디까지 갈 수 있지? 정점은 예전에 찍은 것 같은데…(이제 뭐가 남았지?)' 등 여러 생각을 했다"며 당시 슬럼프에 빠졌다고 털어놨다. 기자의 기억이 맞다면 김동률은 2015년 당시 공연을 마친 뒤 눈물을 흘렸다.

김동률은 "많은 분들의 요구가 있었다. 다른 음악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예능을 비롯한 방송에도 나와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앨범 작업이나 공연, 내가 잘 하는걸 하기에도 벅찼다"고 고백했다.

슬럼프에 빠진 김동률의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김동률은 나보다 한 살 많은데도 마치 대선배의 느낌이 났다"는 작곡가 황성제, "김동률은 츤데레"라고 정의하는 '답장' 앨범 프로듀서 정수민, 국내 최고의 스트링 편곡가 영화음악감독 박인영. 김동률은 "좋은 사람들과 작업하면서 슬럼프를 극복했다"며 "내 주변에 내 노래를 이해하고 같이하는 좋은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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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은 "난 잘 하는 걸 더 잘 하고 싶다. 그런데 가끔은 혼자 유별난 길을 가는게 아닌가 할 때도 있었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유별난 길이라도 나 하나쯤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그래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자신의 음악관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김동률 음악은 늘 똑같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발전이 없다는 얘긴지 변화가 없다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그 두 개는 나에게는 다르다. 만일 변화가 없어서 '늘 같다'는 얘기를 듣는 거라면 왜 변해야 하나? 요즘은 너무 많은 것들이 빨리 변한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 도시의 풍경, 좋아하는 음식점의 맛…"이라며 "사람들은 누구나 훌륭한 것을 선택할 수 있고, 나도 내가 잘 하는 걸 더 잘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도 힘든데… 한 사람에게 왜 모든걸 요구할까. 잘하진 못해도 하나쯤은 열심히 하는 그런 아티스트로 남고 싶다. 마치 요즘엔 김동률 노래를 잘 안 들어도 길거리에서 내 노래가 들린다면 '여전히 그렇게 계속하고 있구나'라면서 안심되고, '그래, 이래서 김동률을 좋아했었지'라면서 좋아했었다는 것이 후회되지 않는…"이라고 말해 깊은 울림을 전했다.

"내 음악관은 변화를 위한 변화가 아니라, 내가 해온 스타일 안에서 변화를 시도하며 열심히 하는 것이다. 요즘 나의 화두는 한 사람으로, 음악하는 사람으로 '잘 늙어가고 싶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김동률은 공연장이 떠나갈 정도로 큰 박수를 받았다. 우리가 원하는 김동률은 그런 모습이다. 세상이 가는 속도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음악을 하겠다는 음악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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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람회 2집과 3집 앨범에 수록된 'J's bar'에서', '꿈속에서'로 2부의 문을 연 김동률은 모든 물량을 쏟아부은 듯한 압권의 조명을 연출했다.

게스트로 JTBC '팬텀싱어2' 우승팀 포레스텔라가 무대에 올랐다. 김동률이 직접 섭외했다. 김동률은 자신을 포레스텔라의 제 5의 멤버로 소개하며 이들과 함께 'Requiem'을 열창했다. 포레스텔라는 김동률과 함께 무대를 하기 위해 약 1년을 준비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줬다. 이어 김동률의 그랜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한 곡 '새로운 시작'은 색다른 즐거움을 안겼다. 

'답장'에 이어 '그 노래'에선 놀라운 장면이 연출됐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가 순간 멈추고 김동률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른바 '마이크리스'인데, 김동률의 육성은 대형 공연장인 체조경기장 객석 끝까지 울려퍼졌다. 육성만으로 체조경기장을 채우는 순간, 관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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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습작'에 이어 마지막 앵콜 선곡은 '노래'였다. '울어 본 적이 언젠가. 분노한 적이 언젠가. 살아 있다는 느낌 가득히 벅차올랐던 게 언젠가.' 3만 관객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무대로 보냈다. 김동률은 180분간의 뜨거운 무대로 마지막까지 화답했다.

'빛과 소리의 향연'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동률 공연은 이번 '2018 김동률 콘서트 '답장'' 역시 티켓 오픈 직후 3만 석이 전석 매진되면서 매진행렬을 이어갔다. 김동률은 2018년 시작과 마무리를 1위로 장식했다. 지난 1월 앨범 '답장'을 발표하고 음악차트 1위에 올라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김동률은 지난 7일 발표한 신곡 '동화'(Feat.아이유) 역시 1위에 올라 저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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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에 대한 기자의 무지와 치기의 소치였던 선입견, 김동률의 공연은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어깨에 뽕 들어간 것'이라던 건방진 생각에 대해 사과한다. 김동률의 공연은 모든 것이 완벽히 조화돼 더 웅장하고 화려한 것이었다. 김동률의 목소리만큼이나 중후한 스트링 편곡은 김동률의 집착이 아니라,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이었다. '베토벤을 아는 싱어송라이터'라 불리지 않는가. 무대 위에 50명에 달하는 연주자를 배치한 것은 단지 '어깨에 뽕'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만큼 사운드 디자인을 할 수 있기에 선택한 '자신감'이었다. 

안경 뒤로 보이는 약간은 냉철한 이미지, 거기에 공부해야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심오한 가사와 세련된 음악 때문에 팬들 신경 안쓰고 하고 싶은 음악만 할 것이라던 오해 역시 김동률은 인터미션 영상을 통해 자신에 대한 고뇌와 음악에 대한 진지한 성찰 끝에 내려진 결론이라는 것이라 알렸다. '발라드'라는 국한된 장르 안에서 수많은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도, 그것이 자신에겐 '발전'이라는 생각도 말이다.

그래서 김동률에게 감히 요청하고 싶다. 작곡가 황성제의 표현처럼 '장인정신이 깃든 일본 우동집 사장'처럼 그 자리에 남아주길. 우리 시대에 그렇게 유별난 길 걸어가는 아티스트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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