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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계림산수, 또 다른 행성의 조각품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12월 07일 오후 2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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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주항공국 나사(NASA)의 우주탐사선 ‘인사이트호’가 화성에 안착했다. 지구를 떠난 지 6개월 만이다. 4억5800만 킬로미터를 날아간 인사이트는 화성의 적도 인근 엘리시움 평원에 내려 지각과 핵 연구를 시작했다. 화성에 우주인을 보낼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중국의 계림산수(桂林山水)는 지구가 아니었다. 화성 같은 외계에나 있을법한 다른 행성의 모습이었다. 솟아오른 산펑(山逢.산봉우리)들이 대지를 가득 메운 비현실세계였다. 풍우에 씻겨 나가면서 자연 조각품으로 변해버린 석회암 바위산은 갖가지 형상의 우주 전시장을 상상하게 했다. 인간세계 어느 예술가의 솜씨가 이처럼 웅장하고 정연할 수 있단 말인가.

협곡사이로는 강이 흐르고 패인 지각에는 사람의 길들이 혼재했다. 산펑 사이 좁은 계곡의 골목 같은 지표면에 주민들이 모여 살거나 농사를 짓는 들판이 있었다. 이 봉우리들은 계림과 양삭(陽朔.양숴) 근처에만 3만5천개. 광시자치구 전체로는 13만8천개나 모여 있다. 대륙 남방의 기암은 베트남 반도로 이어지면서 바다의 ‘하롱베이’ 를 만들어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설명만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장관이다.

계림산수는 3억 년 전 지각변동으로 만들어진 카르스트 지형이다. 산호나 조개껍데기가가 퇴적된 바다 밑바닥이 솟아올랐다. 석영이나 철분이 풍부한 이유다. 석회암들은 수 억 년을 빗물에 녹으면서 만물상이 되었다. 광활한 해저가 지표로 융기해 만들어진 신비다. 인간의 역사가 아닌 신의 영토다.

▲ 리강 뗏목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카르스트 풍경
▲ 리강 뗏목에서 바라보는 계림의 카르스트 풍경

두보(杜甫)는 “죽어서 신선이 되느니 살아서 계림에 살고 싶다” 며 사람살기는 오직 계림뿐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옛사람들의 표현대로 이곳은 산이 푸르고(山靑), 물이 수려하고(水秀), 동굴이 기묘한 곳(洞奇)이다. “계림산수가 천하제일(桂林山水 甲天下)” 이고 그중에서도 “양삭은 계림산수의 으뜸(陽朔?稱 甲桂林)” 이라는 말은 카르스트 풍치에 대한 자부심이 깊게 베어 난다.

요산(樂山)정상에서 광시(廣西)의 대평원과 마주했다. 계림시내는 한 귀퉁이도 차지하지 못했다. 시야에 담기지 않는 땅의 끝자락을 추적했지만 역시 가늠할 수가 없다. 눈으로 풍경을 따라가다가 봉우리들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다섯 겹, 여섯 겹까지 갈라지고 포개지는 카르스트 산펑의 이음새는 무한으로 달아나는 중이었다. 맑은 날 이 풍경을 바라보던 진시황은 군사를 풀어 양삭과 계림사이(87km)를 운하로 관통시키라고 명령했다. 이 무모한 황제의 발상은 기원전 214년 상강(上江)과 리강(離江)을 연결하는 수로가 되었고 현세의 역사로 남았다.

진나라 50만 대군은 당시 남월(南越)이었던 계림일대를 정복하지 못했다. 이민족의 저항에 3년 동안 갑옷을 벗지 못했고 무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들은 고향에서 먹던 음식대신 미펀(米粉. 쌀가루)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황제도 병사들도 간곳이 없지만 2천년이 지난 지금 진나라 군대의 쌀국수만 남았다. 리강(離江)은 물줄기와 봉우리를 굽이굽이 이어주며 인간세상과 함께 신화를 만들어 냈다.

양삭의 리강 포구에는 장이머우 감독의 수상공연 “인상 류산지에(印象劉三姐)”가 밤마다 두 차례씩 세계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양삭의 못된 부자가 가난한 유씨집 셋째 딸을 노리지만 그녀는 갖은 고생 끝에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이 사랑하는 목동과 짝을 이룬다는 러브스토리다.

낮에 강가에서 대나무 뗏목을 젓던 600명의 마을주민들이 밤에는 수상쇼의 공연단으로 변신한다. 4킬로미터 밖에서 조준하는 레이더 불빛이 근처의 산봉우리들을 무지개 색으로 비추내면 관객들의 함성은 밤하늘을 달군다. 중국스러운 와일드무대 디자인이다. 강이 공연장이고 봉우리가 배경이다. 십팔도사들이 축지법으로 산을 밟고 뛰어다녔다는 무협지가 이곳에서 올려다보니 죄다 허풍은 아닌 듯도 하다.

▲ 양삭 싱핑의 절경은 인민폐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다.
▲ 양삭 싱핑의 절경은 인민폐의 배경으로 쓰이고 있다.

이강 남쪽의 죽림은 무성했다. 대나무 뗏목(竹筏. 주파)은 나를 협곡으로 안내했다. 산 뒤에 산이, 강 너머 강이 만나고 헤어지는 신선의 세계를 이어줬다. 산봉우리들은 땅의 기세가 분출하듯이 서있었다. 지상의 모든 미술과 음악, 예술이 이 땅, 이 물, 이 하늘의 리듬에서 조화롭게 탄생되었을 것이다. 벅찬 엑스타시가 차오른다. 중국의 국민화가 리커란의 대작 ‘산수지음(山水之音)’처럼 천지는 소리로 오감을 자극했다. 중경(中景) 앞에 근경(近景)이 겹쳐지고 다시 원경(遠景)으로 가물거리는 이강의 봉우리들 앞에 그저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체감한 시간들이었다.

이 봉우리들 사이로 12개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광시자치구가 펼쳐진다. 좡족, 묘족, 동족, 오족 등이 산 사람들답게 순박하게 지내는 곳이다. 베트남 국경이 멀지 않다. 삼국지의 칠종칠금(七從七擒. 제갈량이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아 일곱 번 놓아주면서 진정한 항복을 받아냄)이 엮어진 고장이다. 중화대륙은 이곳을 끼고 내려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주도권을 넘겨준다. 같은 사람들이 국경선을 긋고 한쪽은 중국, 한쪽은 베트남이라는 이름으로 거주한다. 숙명적인 디아스포라다.

계림산수는 21세기 해양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이다. 현대 중국은 찬란한 중화문명 발상지중 하나인 계림 가꾸기에 정성을 쏟고 있었다. 지저분했던 양강(兩江)은 재정으로 정비되어 아름다운 리조트가 되었고 시가지는 현대식으로 단장되었다. 같은 생활권인 양삭은 토속스토리의 보고이면서 독특한 지형으로 찬란한 고적문물 집합지다. 인민폐 20위안짜리 뒷면의 배경그림이 바로 양삭의 싱핑(興平)절경이다. 대륙의 미를 전 인민이 체감하고 있는 셈이다.

▲ 양삭에서 계림으로 넘어오는길, 봉우리들의 축제
▲ 양삭에서 계림으로 넘어오는길, 봉우리들의 축제

양삭에서 계림을 넘는 산맥은 고봉들의 향연이었다. 세상은 봉우리로 시작되어 봉우리로 끝나고 있었다. 평야에는 낮은 산펑이, 고산에는 높은 산펑이 가지런히 신의 제단처럼 하늘을 향해 질서정연했다. 신선의 군대가 안남(安南)지방에 집합해 옥황상제의 출병지시를 기다리는듯 하다.

전망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앉아 나는 이 수많은 봉우리들이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를 고민했다. 죽었다면 저 수목들은 무엇이며 살아있다면 검은 회색으로 침묵을 지키는 바위들은 무엇인지. 세상이 탄생과 죽음의 연속일 텐데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혼란스런 기억 속에서 급기야 소동파를 불러냈다.

성(城)을 두른 계림의 산봉우리 기이하다

평지에서 불쑥 솟아올라 푸른 비녀 같구나

시인 이성(李成)도 화가 곽희(郭熙)도 모두 죽었으니

이 수백 수천의 기이한 봉우리 어찌하리.

그래 소동파도 그 시대에 이미 계림의 봉우리들을 보고 죽음을 생각했다니 기막힌 접점이다. 인간의 이성은 자연에 압도당했을 때 죽음을 떠올린다는 성인들의 말을 믿기로 했다. 계림산수를 떠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한해가 가고 있다. 수 만개의 봉우리가 연무속에 넘실거리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철학자의 선문답이 나의 등을 산 아래로 떠밀고 있었다.

“또 한해가 가고 오네요”.

“당신 나이가 되면 모든 게 선명해질까요?”

“아니요”

“그럼 더 혼돈스러워 지나요”

“그냥 빨리 흘러가요. 비 많이 왔을 때 흙탕물처럼”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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