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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아오모리 예술, 변방에서 중심으로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10월 02일 오전 10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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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거의 중심이 있다. 중심의 밖은 주변이거나 변방이다. 변방은 항상 중심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중심이 되기도 한다. 중심이 흔들리는 세월을 거치면 변방으로 한 방에 가기도 한다. 중심과 변방을 가르는 것은 인위적이다. 그냥 놔두면 자연적으로 변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사람들이 바꾸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방이 중심으로 인지되려면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본 동북쪽 아오모리(靑森)는 열도에서도 변방중의 변방이다. 근대 역사에서 우선 중심부인 교토나 도쿄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산악지역 한 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중심은커녕 주변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동아시아에서 지명에 모리(森)가 들어가면 정글에 가까운 심산을 의미한다. 메이지 유신이 지나고 일본이 제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들먹일 때까지도 이렇다 할 발전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다. 그 아오모리에 그림과 조각을 보려고 연간 백 만 명의 방문객이 몰려든다면 이건 놀라운 일이다.

수산업과 임업이 소득의 전부였던 산골읍내의 천지개벽은 주변을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출발했다. 예술적 접근으로 승부를 건 미무라 신고(三村申吾) 현지사의 결단이 빛을 본 것이다. 현립 미술관을 완공시키고 거액을 배팅해 구입한 샤갈의 대작들이 걸리는 순간 아오모리는 재탄생되었다. 안 그래도 호들갑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유럽에 가지 못하면 아오모리라도 가야한다는 트랜드를 만들어냈다. 개관 첫해(2007) 방문객 50만을 거뜬히 넘기더니 10년 만에 연간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 심플한 백색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 아오모리 현립 미술관, 심플한 백색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미술관 근처는 일본 선사시대의 조몬유적지(신나이 마루야마)다. 건축가 아오키 준(도쿄 루이뷔통, 오모테산도 디자인)은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새하얀 은백색의 직사각형 두 개를 비껴놓은 듯한 미술관을 설계했고 외벽에 네온상징물로 대형 ‘A(아오모리 첫자)’를 걸었다. 기하학적으로 파놓은 큰 흙 도랑에 요철모양 흰 구조체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아오모리 미술관의 백미는 역시 샤갈의 ‘알레코’ 연작 회화다. 그는 러시아 유태인이었다.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활동하던 중 독일이 일으킨 전쟁으로 유태인 학살을 피해 뉴욕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생업의 일환으로 차이코프스키 발레 ‘알레코’ 공연 무대의 뒷배경 그림을 그렸다.젊은 날의 강한 터치와 상상력이 살아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걸작이다.그 가운데 3점이 아오모리 미술관에 걸려있다.

1막 알레코와 잼필라와, 2막 카니발, 4막 상트 페테스부르크의 환상을 차례로 둘러 보았다. 나머지 1점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들은 가로 15미터 세로 9미터로 우선 그 규모에 기가 질린다. 100억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샤갈 걸개그림들은 일본과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주문으로 통하고 있다.

▲ 샤갈의 '알레코' 연작 대형 걸개그림
▲ 샤갈의 '알레코' 연작 대형 걸개그림

샤갈은 러시아의 가난한 집시 출신 발레리나 알레코를 백마로 은유시켰다. 고단한 인생이지만 사랑을 간직한 그녀가 말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처연하다. 원숭이와 바이올린, 서로를 껴안고 은하로 날아가는 신혼부부, 별이 보이는 러시아 고향마을은 언제 보아도 깊은 우수와 휴머니즘을 자극한다. 러시아 유대교 종파인 하시디즘 영향으로 샤갈의 그림에는 늘 염소와 수탉, 물고기, 소나 말 같은 동물들이 인간과 공존한다.

얼마 뒤 거대한 조각 한 점이 이 미술관 중정에 전시되었다. 아오모리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나라 요시모토(奈良美智. 1959- 뒤셀도르프대 수학, 현재 UCLA대 교수)의 ‘개(犬)’ 가 하늘로 오픈된 공간에 자리 잡았다. 높이 8미터의 대형 조각은 보는 나를 압도했다. 위선과 사기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해낸 블랙위트가 요시모토의 독창성이다. ‘아오모리 켄(縣)’ 의 ‘아오모리 켄(犬)’이라,기막힌 언어와 이미지의 오버랩이다. 사악하고 심술궂은 얼굴로 실룩거리는 세상의 풍자가 인자한 개 한 마리로 평정된 느낌이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명상중인 하얀 강아지의 잔상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 나라 요시모토의 '아오모리 견(犬)' 조각품앞에서
▲ 나라 요시모토의 '아오모리 견(犬)' 조각품앞에서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작업을 시작한 나라 요시모토의 또 다른 야외조각 ‘숲의 아이’가 미술관 뒷마당에 영구 전시중이다. 세계적 팝아티스트답게 모든 언어와 기호, 메시지를 하나의 조각에 담아내는 솜씨가 생각의 경계를 허물어냈다. 드로잉과 판화 등 120점의 다른 작품들도 함께 전시중이다. 아오모리 출신의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와 함께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국민예술가의 대접을 받고 있었다. 무나타카 사토,세키노 준이치로, 사이토 요시케시, 테라야마 슈지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도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글로벌 언어인 샤갈과 로컬에 뿌리를 둔 요시모토의 결합은 진정한 ‘글로컬리제이션’의 전형이었다. 이제 예술은 대도시에서만 꽃 피우는 특권이 아니다. 문화의 저력은 변방을 언제든지 중심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아름다운 주제다. 흰 눈으로 가득한 겨울 아오모리와 짓 푸른 여름 끝자락의 아오모리. 내가 만난 두 번의 아오모리는 이 고장이 더 이상 오지가 아니라 격조 있는 예술의 중심지로 깊게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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