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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더블린을 세계에 알린 제임스 조이스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9월 04일 오후 4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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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되지 않는 도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바람과 빗줄기는 일상이고 우울한 거리의 분위기는 용납할 수 없는 장막이었다.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는 이 골목에서 젊은 날을 몽땅 다 날려버리기는 너무나 억울했을 법하다. 하지만 한 번의 결별은 그를 다시 이 도시로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수평적으로 보는 세계지도의 맨 왼쪽 끝 섬나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은 그렇게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1882-1942)가 더블린을 떠난 것은 22살 청년 때였다. 이 도시가 죽도록 싫었다. 그의 유년은 예수회 기숙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최연소 입학에 모두가 알아주는 우등생이었지만 학교가 지겨웠다. 거친 동급생들과 선생님의 회초리는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집안의 몰락으로 시작된 사춘기는 무능한 아버지를 미워한 기억들로 가득했다. 새로 옮긴 학교 역시 욕망과 이단의 기억뿐이었다. 이 무렵 사창가에서 버린 동정으로 지옥 같은 죄의식에 빠져들고 더러워진 영혼을 구원받고자 종교에도 매달려봤지만 그가 채우고자 했던 진실은 종교가 아닌 삶이었다.

작가를 꿈꾼 청년 조이스에게 종교와 가족은 자유와 예술을 갈구하는 인생항로의 숨 막히는 허들이었다. 척박한 조국 아일랜드는 영혼을 가두는 그물이었다. 결국 모든 것을 접고 떠나는 이유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면서 살고, 실수하고, 타락하고, 이겨내고, 삶에서 삶을 재창조 하는 길. 후회하면서 돌아보지 않을 선택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 극적인 방황을 그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자전적 내용으로 모두 쏟아냈다.

더블린 이별 후 37년간 망명객으로 살았고 인생의 황혼과 죽음을 결국 유랑길에서 맞았다. 방랑은 빈곤과 고독의 연속이었다. 작은 안경 너머 가느다란 눈은 평생을 눈병에 시달렸고 허름한 중절모, 초췌한 얼굴과 시선은 늘 허공을 맴돌았다. 호텔에서 일하던 하녀 노라와 만나 평생을 함께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남긴 더블린 3부작 ‘더블린 사람들’ (Dubliners, 1914),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8), ‘율리시스’ (Ulysses.1922)는 잊고 싶은 고향과 그 사람들의 심리가 배경으로 진하게 녹아있다. 떠났으되 떠나지 못하고 끝냈으되 끝내지 못한 인연의 끈이 세계적 문학으로 승화되었다.

▲ 더블린시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조이스 동상
▲ 더블린시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머무는 조이스 동상

제임스 조이스는 전 세계인들이 가장 잘 기억하는 더블린 뒷골목의 성지 ‘템플바’ 근처 얼 스트리트 입구에 동상으로 서있었다. 말을 걸면 즉시 인생의 어떤 고통스런 질문이라도 해답을 줄 것처럼 지적인 준비자세로 말이다.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답게 고통 받는 더블린 하층민들의 삶을 추적했고 그들의 관습과 행동, 사상들을 심미적으로 꿰뚫어내고자 했다. 마비된 영혼들의 도시 더블린에 대한 묘사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독특함으로 아직도 빛나고 있다. 헤밍웨이와 존 스타인벡, 움베르토 에코, 살만 루시디까지 수많은 문호들의 모더니즘 등불이 되었다.

강인한 자아의식과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실 자기 자신이었다. 등장인물들이 경험하는 시간의 과정을 ‘의식의 흐름’ 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담금질해 냈다. 내면을 집요하게 추적해가는 심리묘사나 무의식 세계의 서술은 독자들에게 책읽기를 포기시키는 양면의 동전이지만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은 그 시대를 달궜다.

"나는 항상 더블린에 대해 쓴다. 내가 더블린의 심장에 다가간다는 것은 세계 모든 도시의 심장에 다가간다는 말이다. 그 세부 속에 전체가 담겨 있다."는 고백은 의미심장하다. 문장들 사이에는 1900년대 초반의 더블린이 현장에 있는 듯 들여다보인다. 세인트 스테판스 그린, 그래프턴 스트리트, 템플 바, 오코넬 스트리트, 트리니티 대학 등. 내가 이 도시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발자국을 따라가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임스 조이스 센터(James Joyce Centre)'에서 이 위대한 작가를 기리는 강의와 워크숍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작품 ‘더블린 사람들’ 은 18개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조이스 루트를 돌면서 중간마다 들여다보기에 알맞은 글들이다. 이 가운데 으뜸은 ‘은총’이 아닌가 싶다. 다섯 술꾼이 크게 다친 친구의 병상주변에 둘러앉아 술을 마셔가며 “아무말대잔치” 를 벌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영국의 지배에 신음하는 더블린의 치부를 이야기로 세상에 알리고 폭로함으로서 조국의 발전을 염원했던 것 같다.

시내 북쪽의 ‘더블린 문학관’ 2층은 아일랜드를 빛낸 작가 사무엘 베케트와 나란히 제임스 조이스 룸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청동흉상 옆 짧은 문장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안의 우리들이 사는 우리안의 마을이 바로 더블린이다. 더블린은 우리안의 수많은 우리가 좌절하고 소리 지르고, 술 마시고, 번민하고, 주저하고, 질투하고, 자책하는 우리마음 깊은 곳을 부르는 지명이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때 우리는 더블린이 무겁다고 말하는 것이다. 더블린은 우리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지만 미스터리인 우리의 마음이고 내면이다”.

▲ 율리시즈와 여주인공을 기념하는 '블룸스데이' 행사모습
▲ 율리시즈와 여주인공을 기념하는 '블룸스데이' 행사모습

작품마다 등장하는 공통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로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손재주가 뛰어난 예술의 신(神) 다이달로스의 현대판 분신이다. 미노스 왕의 왕비가 근육질의 황소를 사모하자 나무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암소를 만들어 왕비를 그 속에 들어앉히고 황소의 씨를 받게 하였다는 장인이다. 이를 안 왕의 노여움으로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다시는 인간세상으로 나올 수 없도록 크레타의 미궁 ‘라비린토스’ 에 버려졌다. 미로를 헤매던 부자는 새의 깃털을 주워 모아 그 유명한 ‘이카로스의 날개’를 만들어 달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태양 가까이 오르면 밀랍이 녹아 위험하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고공비행을 고집하던 아들 이카로스는 에게해에 떨어져 죽고 만다.

‘율리시즈’는 스티븐 디덜로스가 음탕한 여인 마리언 블롬을 만나 하루 동안(1904.6.16.) 벌어지는 이야기다. 내용이 음란하다는 이유로 당시 출판은 파리에서 극적으로 이뤄졌다. 율리시즈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를 패러디한 걸작이다.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고전을 1922년 그 시대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로 부활시켰다. 구성 역시 똑같다.

두 남녀는 아침 8시부터 더블린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친구 만나고, 식사하고, 고양이 밥 주고, 장례식 가고, 일하고, 식당과 술집에 들리는 단조로운 일상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음하고, 성적 쾌락을 찾고, 사창가를 어슬렁거리고, 지쳐서 잠자리에 돌아오는 부질없고 부도덕한 가련한 일상을 반복한다. 두 사람이 겪는 하루 18시간의 방황은 삶의 소외와 고독에 빠진 우리 모두의 육체와 정신, 욕망의 결핍을 은유하는 현대인의 ‘오딧세이아’ 다.

율리시즈는 읽을 때마다 어렵고 애매한 문장에 두통이 온다는 불가침적 난문이다. 나 역시 동의한다. 난해한 문장이 미안했던지 “이 소설 속에는 너무나 많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가 감춰져있기 때문에 아마 학자들은 앞으로 몇 세기에 걸쳐 내 의도를 알아내는데 바쁠 것이다” 는 경고를 남겼다. 현재까지 학위논문을 가장 많이 배출한 소설이 되었으니 예언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인간의 심리와 허세, 가능한 모든 영역의 미추를 들춰내고자 했다.

▲ 아일랜드 지폐에 새겨진 제임스조이스
▲ 아일랜드 지폐에 새겨진 제임스조이스

아일랜드는 600년 영국의 압제를 딛고 일어서 비상했다. 영국보다 소득을 앞질렀다는 기개는 더블린 시내 하늘을 찌르는 스파이어의 위용(오코넬 스트리트의 바늘 같은 첨탑)에 담겨있었다. 영어와 게일어(아일랜드 고유어)가 공항부터 복수로 사용되고 있었다. 말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다.

영국 최고의 작가로 기억되는 조이스는 실상 더블린과 아일랜드의 자랑이다. 죽어서야 고향의 평가와 귀향이 허락되었다. 시대의 자화상과 아일랜드의 고독을 그려낸 조이스의 문체는 당시 유럽문단의 혁명이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프랑스를 정처 없이 떠돌면서 “나는 세상의 함정들 사이를 해매고 다니며 다른 사람의 지혜를 배우도록 운명 지어졌다”고 토로했다.

“조이스의 작품에서 형식은 곧 내용이며 내용이 곧 형식이다. 그의 작품은 어떤 것에 대하여 쓴 글이 아니라 그 어떤 것 바로 그 자체다” (사무엘 베케트). 맞는 말이다. 문학의 새로운 창조와 탄생의 희열을 맛보게 했으니 어떤 수사인들 수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일랜드 일주는 마치 침묵과 유배의 틈바구니를 오가는 고독한 방랑자의 행로 같았다. 거친 자연과 슬픈 역사, 기근과 고통에 일그러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짙게 베인 땅이었기 때문일까. 그때마다 나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에서 디덜로스가 던진 수많은 질문들을 꺼내보곤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기 때문에.

“멋지게 만든 의자는 비극적인가 희극적인가.

내가 모나리자의 초상을 보고 싶어 한다면 그 초상은 선한 것일까.

영웅들의 흉상은 서정적인가 서사적인가 아니면 극적인가.

똥이라든지 아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될 수 없다면 왜 그럴까.

어떤 사람이 홧김에 나무토막을 난도질하다가 암소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면

그것도 예술작품인가”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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