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응의 펜촉] "지킬 건 좀 지키자" 재벌총수에 바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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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응의 펜촉] "지킬 건 좀 지키자" 재벌총수에 바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 박준응 기자 pje@cstimes.com
  • 기사출고 2018년 08월 17일 0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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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박준응 기자] 얼마 전 조현준 효성 회장이 면세 한도를 넘긴 226만원(2000달러) 상당의 명품 옷을 신고 없이 국내로 들여오다 세관에 적발됐다. 

이번에 적발된 물품으로 조 회장이 내야했던 관세는 많아야 100만원 내외다. 재벌 총수인 조 회장에게는 푼돈 수준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금액이다. 이처럼 구설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냥 냈을 게 분명하다. 직원에게 맡겼는데 그 직원의 부주의한 일처리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는 누군가의 옹호가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이 정도 수준의 탈세는 재벌들에게는 일상적인 수준이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세관검사는 강화됐는데 평소처럼 하다가 재수 없게 1번 타자로 걸렸다는 해석이다. 

이번 건은 한진 총수일가 밀수 의혹 사건으로 세관검사가 강화된 이후 처음으로 적발된 건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넘어가거나 총수 의전 혜택을 통해 손쉽게 통과될 수도 있었을 거라는 의미다. 

그간 공항과 항만에서 이뤄진 재벌 총수들에 대한 과잉 의전과 그 과정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탈세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물벼락 갑질' 사건이 한진그룹 총수일가에 대한 전방위 조사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래서 여론에 등떠밀린 세관당국이 세관검사를 크게 강화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대기업 총수일가 중 누군가는 그들에게는 '푼돈'임이 분명한 몇십, 몇백만원의 관세를 당연한 듯 내지 않으며 해외에서 쇼핑한 명품을 국내로 들여오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다수 서민들이 씁쓸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이유다. 

사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인색한 편이 아니다. 

재계 담당기자들은 하루에도 몇 건씩 대기업들의 사회공헌사업 관련 보도자료를 접한다. 이들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금을 조성해 쾌척하고 환경보호, 빈민구제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한다. 각종 재단 등을 설립해 문화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하는 곳도 있고 계속되는 좌절에 지친 청년들을 향해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기업 로고가 박힌 구호물자가 쌓인다. 

이 같은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으로 어려운 환경을 딛고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대기업 총수일가의 '실수'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고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사실 서민들이 대기업 총수일가에게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하지 않다. 누구도 고결한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 실수를 했으면 응당한 사죄와 보상에 나서는 것,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빠져나가기에만 골몰하지 않고 서민들이 그러하듯 그들도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을 바랄 뿐이다. 

아니 그 전에 돈이 많고 그 돈에서 나오는 힘이 막강하다는 이유로 약자를 핍박하거나 같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 양식 있는 시민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법과 규정을 무시하지 않는 게 먼저다. 그들에겐 푼돈에 불과한 세금을 실수로라도 탈세하지 않는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삶의 태도를 그들에게서도 보고 싶은 거다. 

얼마 전 작고한 고 구본무 LG회장의 '소탈함'이 우리 사회에서 어째서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칭송받았는지, 왜 재벌 3세가 생각 없이 던진 물컵이 지금까지도 한진그룹을 뒤흔드는 희대의 '스캔들'로 이어졌는지 한 번 깊이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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