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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아름다운 몰락, 다자이 오사무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8월 13일 오전 10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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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津輕)벌판은 눈이 부셨다. 끝없는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광활함을 넘어 허무에 가까운 환상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열도에서 이 정도 대평원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쓰가루 바다는 러일전쟁의 무대였다. 아오모리(靑森) 왼쪽의 도형같은 땅이다. 오른쪽의 도와다(十和田) 호수와 오이라세 계류의 험지와는 완전히 다른 지형이다. 이 해협을 지나 일본군함들이 동해로 나왔고 러시아제국 함대와 맞붙었다. 세계가 무모한 싸움이라고 했지만 군국주의는 승리했다. 일본이 단숨에 제국으로 올라선 일대 사건(1904년.러일전쟁)이었다. 이제 아오모리는 홋카이도와 해저로 이어져 하코다테가 지척이다.

일본의 국보급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大宰 治. 1909-1948)는 쓰가루 평원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군웅이 할거했던 간사이나 도쿄출신이 아닌 머나먼 변방에서 자랐다. 문제는 집안의 내력이었다.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모으고 귀족까지 오른 부친과 가족의 위상은 어린 그에게 자랑이 아니라 피하고 싶은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 쓰가루 평야 소작농들의 피와 땀을 지주들이 착취하는 풍경은 데카당스 문학세계를 형성해준 요인으로 작용했다. 부정적 인생관, 염세주의, 패배주의가 깊이 싹트기 시작했다.

부의 정당성 자체를 고민하면서 현재의 유복한 나 자신의 정체성, 집단과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실체적 의문이 지배했던 젊은 날들이었다. 전쟁에 미쳐 모든 청년들을 잡아가고 이어지는 일본의 패전은 그를 니힐니즘의 끝으로 유혹했다. 당연히 부모가 바라던 제도권 인생은 용납할 수 없었다. 파격과 일탈로 인생행로를 고집했던 이유다. 그곳에서 다자이만의 독특한 시각과 문학세계가 만들어졌다.

대학생이던 어느 날 다자이는 첫 애인으로 게이샤(기생)를 데리고 집에 들이 닥쳤다. 당시 명문가 자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모친에게 지옥의 고통을 맛보게 한 불효였다. 그칠 줄 모르는 파문과 자살소동, 마약에 손대는가 하면 잡히지 않는 허무를 좇아 방황하는 시간들은 계속 이어졌다. 그 사이 전후 농지개혁으로 망해버린 집안은 대표작 ‘사양(斜陽)’을 통해 자전적 고백서로 남겨졌다.

▲ ▲젊은시절의 다자이 오사무.▲'사양' 한국어 번역판
                 ▲젊은시절의 다자이 오사무.                      ▲'사양' 한국어 번역판

‘사양’ 은 일본의 패전 후 귀족가문 구성원들이 아프게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연민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와 나(가즈꼬), 남동생 3인의 최후가 아름다운 문체로 흐른다. 가즈코의 3인칭 화법으로 전개되는 중편소설은 이전에 거의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이었다. 화려했지만 쇠락해야만 하는 한 집안의 가족들. 생의 종말로 향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마치 수채화처럼 그렸다. 붓으로 칠하고 또 칠해놓은 애잔한 한 폭의 그림 같다.

나(가즈코)는 가냘프고 곱기만 한 귀족 부인 어머니의 우아한 최후를 돕기 위해 도쿄의 저택을 포기한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동네(아다미)로 조용히 내려가 그곳에서 성대했던 젊은 날을 추억하며 눈을 감게 해준다. 징집으로 끌려간 남동생(나오지)이 남양군도에서 돌아오지만 폐인이 되어 술과 마약중독으로 인생을 비관하다가 끝내 자살하고 만다. 마지막 남은 귀족혈통, 나(가즈코)는 나오지의 문학선생(우애하라)을 찾아가 마음으로만 앓아왔던 사랑을 고백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 남자 역시 남동생처럼 술과 도박의 일상에서 허우적거린다. 가즈코는 남자를 떠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나는 확신하고 싶다.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가즈코의 독백형식으로 남겨진 이 말은 아직도 일본 문학사의 경구처럼 회자된다. 방황하던 청년들은 ‘다자이족’ 과 ‘사양족’ 이 되고자 했다. 아오모리를 떠나 가나기의 ‘사양관’ 으로 가는 길에 다시 읽어보아도 열도의 정서가 잘 표현된 걸작이다. 전후 70년 동안 ‘사양’은 일본의 국민소설 반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달려라 메로스’, 고향의 정취를 그린 ‘쓰가루’, ‘인간실격’ 등도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강자와 약자의 구도가 작품마다 숨은 얼개로 깔려 있다.

불후의 독자성과 보편성, 유연하고 우아한 문체, 소설의 바닥에 흐르는 세기의 정서, 주인공 마다 안고 있는 애잔한 스토리는 다자이 문학의 생명력을 현대에까지 이끌어 온 메타포들이다. 저마다 다른 주인공들이 끝내는 다자이 자신의 인생을 고백하는 분신들로 합쳐진다.

▲ 아오모리 가나기의 다자이 생가 '사양관'
▲ 아오모리 가나기의 다자이 생가 '사양관'

그는 도쿄(다마가와강)에서 자살로 생을 마쳤다. 애인과(야마자키 도미애) 가벼운 차림으로 투신해 괴롭던 이승을 마감(1949)했다. 세 번의 자살시도 끝에 맞은 결과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소설도 쓰기 싫어 졌습니다” 문학스승(이부세 마쓰지)이 주선해 차려 준 신혼살림을 져버리고 그가 추구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만들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날카로운 칼로 다가서는 유서는 아직도 청춘들의 잠언이다.

다자이 오사무를 시작으로 미시마 유키오와 노벨상을 받은 가와바다 야쓰나리까지 잇따른 자살은 패전으로 정처 없던 일본사회를 들썩이게 했다. 그의 주옥같은 소설들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독자들을 갖고 있다. 다자이의 딸 사토코 역시 유명한 소설가였다. 아버지에 버금가는 유명세를 누리다가 몇 년 전(2016) 사망했다. 부녀지간에 문학이라는 유산을 남기고 시대 속으로 사라졌다.

‘사양관(斜陽館)’ 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쓰가루의 정서를 담은 당시 건축물 그대로, 그의 가족들이 쓰던 물건이며 다자이의 학사모와 유품들이 남아있었다. 아오모리시에서도 고쇼가와라를 지나 두 시간을 달려야 하는 거리다. 다자이 문학은 간이역(가나기)과 작은 동네 곳곳에 상점이름(카페 다자이), 문학열차(달려라 메로스)의 명칭으로 함께 살아 있었다.

가는 길보다 돌아 나오는 지평선은 더욱 황홀했다. 햇살이 엷어진 여름 석양은 짧았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기차는 오른쪽으로 우뚝 서있는 이와키산을 중심으로 우리네 인생처럼 그 언저리를 끝없이 맴도는 것 같았다.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세상의 모든 ‘업(業)’ 들이 하나 둘씩 기억으로 일어서 마주 오는 순간이다. 그는 진정으로 자기 운명의 지배자요 영혼의 선장이었을까. 파격과 일탈로 생각의 규격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한 소설가의 상념은 어두워지는 쓰가루 벌판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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