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연의 요리조리] '앉아서 일할 권리' 보장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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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연의 요리조리] '앉아서 일할 권리' 보장해주세요
  • 이화연 기자 hylee@cstimes.com
  • 기사출고 2018년 06월 18일 0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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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 비치된 의자는 장식…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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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이화연 기자] 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전격 시행된다. 불과 2주 가량을 앞둔 셈이다.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하락 등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최근 들어 강력히 요구되고 있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에는 한 발짝 다가서게 됐다.

대기업 계열 대형마트들도 폐점시간을 1시간 앞당기며 워라밸을 장려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문제는 남아 있다.

국내에 수만~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 면세점 등 유통업종 근로자들의 '앉아서 일할 권리'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계산원들의 자리에 의자가 놓이기 시작한 건 2009년이다. 업계는 소비자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의자를 들여놓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 노동계에서 앉을 권리를 강력히 주장하자 눈치를 본 것이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앉아서 일하는 계산원들의 모습은 다소 생소하다. 의자 높이나 위치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앉아서 일하는 게 더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소비자들이 "앉아서 일하면 건방져 보인다" 또는 "서비스직답지 않다"라는 식의 불평을 늘어놓는 점이다. 서비스의 질이 직원의 기립 유무에서 결정된다는 구시대적 발상에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서 일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당했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돈을 낸 만큼 보상받고 싶어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은 규제가 더 엄격하다. 근무자들은 매니저와 소비자들의 눈을 피해 잠시 앉거나 몸을 기대곤 한다. 정장 차림에 구두까지 신고 있어 고통이 이만 저만 아니다.

그 결과 각종 직업병이 유발되고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이 지난해 유통서비스 노동자 2204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5.4%가 1개 이상의 질병을 갖고 있었다. 디스크 질환(24.1%)이 가장 많다. 이어 족저근막염(22.2%), 방광염(18.2%), 하지정맥류(17.2%) 등의 순이었다.

상황은 쉴 틈 없이 바쁜 패스트푸트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도 마찬가지다. 공간 제약으로 직원 휴게실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데다 주문부터 음식 제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의자가 비치되기도 어렵다.

일련의 상황을 보고 있자니 대학 새내기 때 백화점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식사 시간은 1시간, 쉬는 시간은 1회 30분에 불과했다. 발과 다리가 팅팅 붓고 허리도 끊어질 듯 아팠다. 잠시라도 앉고 싶어서 화장실을 간다며 자리를 비웠던 적도 있었다.

이후로 휴게실이 개선되고 쉬는 시간도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법상으로는 아직도 허술한 부분이 있다. 사업장에 의자를 비치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규칙에 기재된 '권고사항'일뿐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견을 수렴했는지 고용노동부가 급한 불 끄기에 나선다. 9월부터 백화점과 면세점을 중심으로 휴게시설이 설치됐는지, 의자가 비치됐는지 여부를 점검하기로 했다. 우선 이달에는 사업주와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의자 비치・앉을 권리 찾기・휴게시설 설치' 캠페인을 벌인다.

하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정부가 나서서 제재를 하거나 눈치를 주기 전까지 사업자들이 규정을 뜯어고치는 것을 본 기억은 없다. 정부가 캠페인과 실태조사에서 더 나아가 강력한 주의를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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