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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공공미술의 천국, 시카고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6월 05일 오전 10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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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카고가 밀주와 폭력, 인종차별이 난무하던 도시였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알 카포네도 총 맞는 목사님도 다 지난 이야기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금광을 찾아 대이동할 때 중간 기지로 발전해 이민의 역사를 다져온 도시는 거친 과거를 넘어 예술의 중심지로 재탄생해 있었다. 시가지 대로변 중앙화단에 만개한 튤립 군락은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오후를 수놓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인디언 전사들의 땅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인도로 착각해 굳어져버린 명칭 인디언에 흔쾌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시민공원 그랜트 파크 진입로에 두 명의 인디언 전사가 옛 영광을 머금고 있었다. 한명은 던지고() 한 명은 쏘는() 모습이다. 무기는 없었다. 동작이 행동을 은유할 뿐이다. 존재일수도 있고 비존재일수도 있다. 깊이 따지지 않고 그냥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는 모습이다. 오바마 대통령(시카고 출신 변호사)이 대권 확정 순간 이곳 그랜트 파크에서 당선연설을 하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조각품 클라우드 게이트주변은 인산인해였다. 시카고시가 마음먹고 만든 밀레니엄 공원의 대표 명물이다. 말 그대로 구름을 열고 들어가는 문이니 천국의 계단쯤 되는 걸까. 인도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에니시 카푸어의 스테인레스 대작(2004)이다. 그 앞에 서니 물방울처럼 생긴 지름 20미터의 초대형 구조물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매끈한 표면은 거울처럼 모든 것을 비춰내고 있었다. 맑은 시카고의 하늘과 구름, 바람까지.

비싼 조각품은 만지지 말라는 40년 금기도 깨졌다. 시민들은 클라우드 게이트를 즐겁게 터치하며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거대한 콩 모양이어서 '(The Bean)’으로 더 잘 알려진 걸작이다. 이름이 어찌되었건 조각품은 카푸어의 손을 떠났고 보는 이들의 시선 속에서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이 날마다 재창조되고 있었다.

 

▲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서
▲ 시카고 클라우드 게이트 앞에서

 

연방법원과 우체국 등이 몰려있는 지하철 잭슨역 앞 붉은색의 유쾌한 철 구조물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잿빛 건물들 사이로 춤추는 플라밍고(홍학.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대표작)’ 의 형상이 복잡한 도시의 부담을 털어내 주고 있었다. 육중하거나 작업의 밀도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건조한 도시의 나른함을 홍학의 긴 다리 율동으로 바꾸는 추상이 그저 기분 좋을 뿐이다.

체이스타워 광장에서 만난 길이 20미터의 대형 타일벽화 또한 이색적이었다. 마르크 샤갈의 포시즌을 확대해 재창조 시킨 거리회화다. 그 길을 따라 다시 미시간 호수변의 광활한 녹색단지로 들어섰다.

밀레니엄 파크 광장 양끝에는 거대한 사각탑이 마주보고 있었다. 높이 15미터 돌탑에 분수가 스며들었다가 다시 흘러나오는 색다른 미술품이다. LED를 이용해 100명의 미소가 번갈아가며 스크린 쇼를 벌인다.

뭔가 특별해보이지만 그냥 평범한 시카고 시민들이다. 지나가는 이들의 맑은 미소를 영상으로 담은 디지털 화면이 돌아가고 웃는 입에서는 시원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스웨덴 조각가 호메 플랜사의 크라운 파운틴(The Crown Fountain)’ 이다. 어두워지면서 화면 속 미소는 더욱 선명하게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 밀레니엄 파크 쌍둥이 디지털 조형물 앞 광장
▲ 밀레니엄 파크 쌍둥이 디지털 조형물 앞 광장

 

시카고에 오면 누구나 미시간 호반을 걷는다. 공원을 끼고 펼쳐지는 바다 같은 거대한 수면은 도시를 자연의 바람과 혼합시켜 놓는 재료다. 세계3대 규모를 자랑하는 박물관 아트센터와 오페라 하우스, 110층 윌리스 타워가 나란히 들어서 있다. 19세기 초 대화재로 완벽하게 잿더미가 되어버린 폐허에서 숱한 영욕을 거치며 오늘의 예술거리를 만들어냈다. 시내에는 약 700점의 조각품들이 배치되어 어딜 가나 격조 있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트 시카고의 비결은 공공미술이다. 미술계의 거장 마크 켈리(1949-)를 문화담당관으로 영입해 1984년 조직을 만들고 도시전체의 미술품을 총괄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대형 조각품을 기증받거나 사들여 디자인에 맞게 치밀한 배치작업을 거쳤다. 음습하고 너저분했던 시가지는 녹색의 질서 속에 어우러진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해있었다.

예술은 더 이상 특정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대중이 함께 해야 진정한 예술의 가치가 매겨진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전국의 지자체들이 트랜드처럼 공공예술에 관심을 가지지만 일부 예술가나 관료들의 취향을 표현해내는데 그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볼 때다.

리처드 덜레이 시빅센터 광장은 과거 50년 동안 과격시위의 메카였다. 이곳에 어느 날 피카소의 거작 언타이틀(무제)’ 이 들어서고 나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시끄러운 데모 대신 시민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고 완전히 새로운 시카고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한 도시를 바꾸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거대한 이데올로기도 날선 시위도 아니다. 서울시청 광장에 세계가 인정하는 대형 조각품이 하나 설치되면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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