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루쉰공원의 구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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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루쉰공원의 구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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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완연한 공원 숲길에는 이미 영산홍과 철쭉이 활짝 피어있었다. 햇살은 제법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겨울동안 이곳을 맴돌던 음산한 냉기는 걷혔고 대신 늦봄의 나른한 열기가 눈가에 어른거렸다. 봄볕이 사람들을 불러냈지만 정작 그들은 꽃에는 관심이 없었다.

북적이는 인파들의 모든 시선은 무형식의 구혼장을 향하고 있었다. 주로 펼쳐진 우산이 광고판이었다. 나무 가지에 걸기도 하고 바닥에도 붙어 있었다. 중국식 중매시장의 맨얼굴이다. 자녀나 손주들의 혼사를 위해 표지판을 들고 공원을 서성이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은 흐르는 땀이 문제가 아니었다. 중년이상 여성이 많았지만 30% 정도는 남성 노인들이다.

셩뉘(剩女)와 셩난(剩男)들을 위한 부모세대의 눈물겨운 구혼작전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나이 들어 시집을 가지 않은 미혼 여성이 셩뉘다. 문자대로라면 결혼시장에서 낙오한 잉여인력이다. 셩뉘는 고학력에 늘씬한 키와 고소득을 자랑하지만 정작 결혼하지 못한 30전후 처녀들이다. 덩달아 셩난도 생겼다. 나이 들도록 장가못간 노총각들이다. 빠링허우(80년대생)가 가장 인기고 치링허우(70년대생)나 쥬링허우(90년대생)들은 다소 밀린다.

중매공원은 이제 중국의 새로운 풍속도가 되었다. 베이징 중산(中山)공원의 규모가 가장 크고 다음으로 상하이 루쉰(魯迅)공원이 꼽힌다. 최근에는 텐진의 중신(中心)공원과 충칭의 홍야통(洪涯洞), 광저우의 텐허(天河)공원, 시안의 커밍(革命)공원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방 소도시와 해외 차이나타운에서도 노처녀, 노총각 중매 열기가 뜨겁다. 

▲ ▲상하이 루쉰공원 구혼상담이 벌어지는 인파속에서

 중국식 중매의 기본원칙은 전통적으로 문당호대(門当戶對). 처녀 총각의 두 집안 형편과 수준이 비슷해야 말이 섞이기 시작한다. 사랑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경제적 조건부터 결혼경력, 부동산은 있는지, 호적 소재지는 어디인지, 유학파인지가 큰 그림의 얼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 호적이 올라있으면 상한가다. 외지인들이 쉽게 대도시로 오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중국의 주민등록관리 때문이다.

가장 인기 없는 대상자는 양띠다. 중국의 양은 순하고 힘이 없어 10마리 가운데 한 마리 정도만 산다(十羊九不全)는 미신 때문이다. 양띠는 그래서 아예 구혼상담대상에서 제외된다. 뤼쉰공원의 부모들은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양띠는 단호하게 거절하고 고개를 돌려 버린다. 모든 띠가 양띠에 우선한다고 적은 표지도 있었다. 이 무슨 날벼락인지. 양띠 해에 출산이 되지 않도록 조절하거나 연기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이유다.

노인들은 손수적은 자녀들의 신상명세를 앞에 걸고 비슷한 조건의 상대가 있으면 말을 걸기 시작한다. 구혼가격 목록표에는 최고, 높음, 표준, 낮음, 수준무시 등의 5단계로 나누어 상단에 특별표기 되기도 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호적에 빠링허우, 고소득과 경쟁력있는 외모, 양띠가 아니면 일단 '최고' 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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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표지도 있었다. 쉼터 한쪽 자갈밭 바인더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구혼장이다. "동반자를 구함, ()선생. 1953년생. 170. 퇴직연금 4000위안(). 상하이에 집 소유, 상처했음. 2-5살 아래 상대 원함". 재혼이나 황혼구혼이지 싶다. 꼭 처녀 총각들만이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남자는 고학력일수록 값이 올라가고 여자는 고학력일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 중국전반의 미신과 차별, 지역특성의 부당함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10여 년 전 몇 명이 중매해보자고 루쉰공원에 모여 소일하던 것이 이제는 목요일, 일요일마다 3천 명씩 운집한다. 중국 최고의 간접 맞선 성지(相親角)로 떠오른 셈이다.

"결혼은 제도 안에서 자주 불행한 것" 이라든가, "결혼은 철학자의 길에 놓인 장애물이다. 그래서 플라톤이나 칸트, 데카르트, 스피노자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은 독신으로 살았다"는 니체의 주장처럼 결혼이 무덤인지 천국인지 아니면 그저 무덤덤한 일상인지 알고도 남을 만한 나이들인데 내 자식, 내 손주의 문제로 다가오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중매공원은 봄날 꽃 대신 구혼대자보 숲을 헤치며 며느리감, 사위감을 내손으로 직접 골라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로 가득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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