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당신은 '조르바'인가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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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당신은 '조르바'인가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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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자국도 남기지 않고 내리는 봄비는 새벽을 재촉했다. 드디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설 따위를 읽고 눈물을 보인다는 건 내 자존심에 전무한 일이지만 적어도 조르바의 죽음을 편지로 접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랬다. 이 세상을 모두 나눈 두 남자의 언어와 영혼이 포개져 토해내는 우정 그리고 인생이란 어차피 이렇게 두 개의 평행선이 달리다가 마지막에는 모두 기약 없이 헤어지고 만다는 것임을 알았을 때 흘리는 눈물이었으리라.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긴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5)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의 손을 가진 것 같다. 아니면 신을 닮고 싶었던 인간이었거나.

저 알 수 없는 우주와 자연에 나를 맡기고 영원한 자유를 꿈꾸며 남은 생을 방랑해보고 싶은 회한은 중년의 간이역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허무다. 육체와 정신으로 분리된 인간의 실체가 결국 방법만 다를 뿐, 갈구하는 카테고리는 가보지 못한 자유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석양이 지는 그리스 필로폰네소스 반도에서 한동안 머물며 21세기 위대한 여정속의 그를 만나고 싶었다. 스파르타의 함성도 아테네의 지혜도 모두 밤바다에 잠겨버린 시간. 이렇게 세상은 다시 고요 속으로 침몰해간다. 에게해 남쪽 어딘가에 길게 누워있을 크레타 섬을 그리려니 갑자기 영혼의 허기가 밀려온다. 달콤한 포도주와 한 조각 빵으로 지친 육신을 달래는 관습적 행위를 접고 좀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 구름이 되어야 했었던가. 솔로몬왕의 탄식처럼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고 또 헛된 것을.

'조르바'는 평범한 삶을 뛰어넘는 크레타 자유인의 상징이다. '나'는 기존의 틀을 버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새장속의 새. 말하자면 일상의 굴레에서 쳇바퀴 도는 우리 모두다. 서로에게는 상대가 늘 피난처다. 둘 사이 본능과 이성의 경계선에서 색칠해지는 인간애가 가슴에 고동친다. 노동하고, 마시고, 먹고, 즐기고, 질펀하게 잠든 '조르바'는 본능에 충실하다. 자유인이기 때문에. 하지만 글을 쓰고, 사색하고, 고민하고 구도자를 찾아 잠 못 이루는 '나' 는 늘 불안하고 정처가 없다.

이야기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된다. 친절한 소제목도 설명도 아무것도 없다. 26번 까지 매겨진 단락이 전부다. 서술자인 '나' 와 '조르바', 조르바의 여자친구인 늙은 과부 '오르탕스', 미친 수도사 '자하리아' 정도가 등장인물의 전부다. 조르바의 말을 빌리면 '펜대 운전수' 인 '나'는 관념적이고 사상적인 지식인으로 꼴통에 가깝다 차라리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조르바의 시점이었다면 읽기가 훨씬 수월했을 듯싶다.

'나'는 그리스의 한 항구도시 선착장 카페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난다. 한눈에 보기에도 자유롭고 우악스럽고 거친 조르바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그의 매력에 끌려 함께 크레타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나'는 지금까지 학문이나 사상, 책속의 공상으로부터 벗어나 실존을 꿈꾸며 느끼기 위해 크레타를 가려했다. 그때 마침 완벽한 동행 조르바를 만난 것이다. 둘은 의기투합해 배에 오르고 크레타에서 숱한 일들을 겪은 뒤 다시 그곳에서 헤어진다. 그리고 '나'는 조르바의 죽음을 전보로 접한다.

카잔차키스는 행동주의자를 꿈꾸는 사상가였다. 가장 야만스럽게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명분에 휘둘려 문명과 권위와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자행하는 인간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했던 지식인이었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섬기고 순순함으로 인간을 대하는 인간 조르바를 이상형으로 설정해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1900년대 초 세상 사람들에게 안내해주고자 했다.

카잔차키스에게 크레타는 한번 부르면 가슴이 뛰고 두 번 부르면 코끝이 뜨거워지는 이름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크레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겼다. 터키의 압제에 맞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 '미할리스 대장'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웃들의 숭고한 희생이 그리스의 자유를 위한 죽음이었음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도덕의 틀 속에서 진행되는 온전한 생을 거부하고 떠돌이 앞소리꾼이 되어 영혼의 자유를 외치던 거인의 삶을 고집했던 동기다. 신을 통하여 구원받기 보다는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던 이유를 알만하다.

그에게 방랑과 여행은 사색의 샘이자 사고의 실천이었다. 그리스 본토 순례를 마치고 마케도니아와 이웃 알바니아, 터키, 지중해 남쪽 아프리카 모로코, 리비아, 아시아의 인도, 중국까지 영혼의 샘물을 길어 올리려는 여정에서 인생 후반부를 서성였다. 정신을 구축하고 있는 피라미드의 바닥에는 유년의 크레타가 자리하고 있다고 늘 고백했다.

새벽정원은 씨앗이 불어 터지는 소리며 꽃봉오리가 팽팽해지는 기척들로 가득했다. 에게해 바닷가에서 잠깨어 울던 그 봄밤이 떠올랐다. 시공을 넘어 피안이라는 세계를 향하는 범선에는 '조르바'도 타고 '나'도 타고 우리 모두가 타야 하는 운명임을 안다. 이 세상에는 '조르바'와 '나' 같은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세속인과 자유인. 아프리카의 뱀처럼 온몸을 대지에 바짝 붙여야 제대로 흙을 느낄 수 있는데 인간은 항상 직립하는 세속인이어서 땅의 기운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을 하기도 했던 그는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고 민족주의대신 불교적인 사상에 기울었다. 생의 마지막까지 석가의 해탈을 알고 싶어 했다. 두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에 견줄만한 대문호로 대접받았지만 그 또한 죽음을 비켜가진 못했다.

▲ ▲크레타 니코스 카잔차키스 돌무덤. 바다가 보이고 생전에 준비한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다시 봄이다. 마른가지에 물이 오르고 꽃이 피는 이 끓임 없이 되풀이되는 기적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프리카의 노토스(마그레브에서 지중해를 건너 불어오는 봄바람)는 천지의 생명을 일깨운다. 허무하여라 우리인생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 모두 이별하고 말 것을. 죽음은 나를 찾아와 일을 끝낼 때까지 구석에서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친구. 그는 나의 삶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하느님이 이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사 무상의 허깨비임을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이 책을 봄에 또 읽은 게 잘못이었던가.

붓다와 목자의 대화는 죽기 전 몇 년 동안 카잔차키스의 가슴을 데워준 평화의 주문이었다.

목자-내 식사는 준비되었고 암양의 젖도 짜 두었습니다.

내 집 대문은 잠기어 있고 불은 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내게는 더 이상 음식이나 젖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처소이며 불 또한 꺼졌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내게는 황소가 있습니다. 암소도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목초지도 있고

내 암소를 모두 거느릴 씨받이 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내게는 황소도 암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내게는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여자는 내 아내였습니다. 

밤마다 행복을 주는 에너지입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내게는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영혼을 길들여 왔고 

나와 행복하게 지내는 방법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에게해 바닷가를 떠날 때까지 두 개의 목소리는 내 귀를 울렸다. 그리스 반도의 수많은 섬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신화처럼 아득하게 말을 걸어온다. 경제 불황의 늪에 빠져버린 지금의 그리스는 고단하지만 고대부터 인류문명의 지평선을 관통해온 두께는 범접할 수 없다. 주머니에 넣어온 오주(그리스 소주) 한 모금을 털어 넣었다. 바다는 잠잠했으며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 상태였다. 다만 알 수 없는 의식만이 삶에 지친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스 전통악기 산투르를 뜯으며 미친 듯이 막춤을 추던 안소니 퀸의 연기가 뛰어났던 탓일까. 조르바를 생각하면 퀸이 오버랩 되어 영화와 소설의 경계가 무너지곤 한다. 나는 고백한다. 20대에는 조르바를 눈으로 읽었다. 40대에는 조르바를 몸으로 읽었다. 50대에는 조르바를 영혼으로 읽었다.

"어느 날 아침 나무 등걸이에 붙어있는 나비 번데기를 발견했던 적이 있었다. 나비는 빠져나오려고 번데기에 구멍을 내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집을 뚫고 나오는 것이 너무 더뎌서 참기 힘들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나비 번데기를 입김으로 덥히기 시작했다. 온힘을 다해 급히 나비집을 따듯하게 만들어주었더니 바로 내 눈앞에서 생명의 속도보다 빠른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구멍이 열리고 나비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나는 그때 뒤로 붙은 채 구겨진 그의 날개를 본 공포를 잊을 수 없다. 불쌍한 나비는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날개를 펴려고 기를 썼다. 나는 입김으로 날개 펴는 것을 도와주려 했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비가 부화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리고 날개를 펴는 일은 태양아래서 천천히 진행되는 작업이어야 했다. 내 입김은 나비의 날개가 구겨져 때가 되기도 전에 앞당겨 세상에 나오도록 강요한 셈이 되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몇 초 만에 내 손바닥에서 죽고 말았다. 이 작은 몸뚱이가 지금껏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나는 자연의 법칙을 어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깨달았다. 함부로 덤비지 말고, 성급하게 굴지 말며, 영원의 리듬을 굳게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나는 바위위에 앉아 상념에 빠져 들었다. 아, 그 작은 나비가 내 앞에서 파닥이면서 나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고향 크레타에 남겨진 돌무덤은 오늘날 세계 지성인들의 순례코스다. 카잔차키스의 짧은 묘비명을 보기 위해서다. 붓다를 따라나선 운명의 터널이 보인다. 평생 실천하지 못했던 자신의 길을 대리인 '조르바' 에게 남기고 그는 지하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완전한 자유다"

세상살이에 지친 당신의 영혼이 자유를 원할 때, 그런데도 이놈의 현실 때문에 아무 곳으로도 떠나지 못할 때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나의 처방은 '조르바'를 한번 꺼내보라는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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