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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안도 다다오의 건축 미학, 스미요시 나가이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8년 03월 12일 오후 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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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파트에서 눈을 뜬다. 콘크리트 구조물속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다. 익숙한 일상이다. “인간의 집은 살기위한 기계다. 시대의 속도에 뒤져지지 않는 현관, 기계와 맞서 싸울 에너지를 채워줄 거실, 그리고 내일을 위한 침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르 코르뷔지에(1887-1965)가 내린 집의 정의다. 아파트가 전 세계 주거문화의 중심에 서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현대건축의 스승자리에 우뚝 설 만 하다.

그런 상상 속에서 만난 스미요시 나가이(일본의 연립형 협소주택)는 너무나 왜소했다. 정면 두 칸과 측면 여덟 칸으로 구성된 매우 좁은 집. 이곳에서 일본의 주택건축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기에는 다소 허무하기까지 했다. 찬바람이 가시지 않는 겨울 끝자락에 딸랑 번지수 메모만 들고 오사카 남쪽 마을을 몇 바퀴 돌아 찾아낸 곳이다. 안도 다다오(1941- .오사카 시다마치 출생. 일본 최고의 건축가)가 25살 청년 때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흠뻑 받아 설계한 작품이다.

그가 위대한 사부님을 만나러 파리에 도착했을 때 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뒤였다. 모든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최소본질에 집중한 그의 건축은 젊은 안도를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르 코르뷔지에는 영적 스승이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바탕으로 빛과 그림자의 만남, 고요와 명상의 접점에서 건축의 본질을 발견하고자 했다. 독서와 순례로 깊은 세계를 접하고자 했다. 그러한 철학적 출발점이 스미요시였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대문 앞부터 아담한 노출 콘크리트 벽은 시작되었다. 나오시마 지중미술관이나 아스카 역사박물관에서 몇 차례 목격했던 안도 다다오 설계의 전형이다. 누에고치 집을 연상시키는 여주 페럼 골프장 하우스, 원주 오크밸리 한솔미술관, 제주도 지니어스로사이, 본태 박물관 등에서 솜씨를 발휘해 우리 눈에도 익숙한 ‘누드건축’ 이 오사카 변두리골목에 숨어있었다.

▲ ▲오사카 '스미요시 나가이' 콘크리트 사각문에서
▲오사카 '스미요시 나가이' 콘크리트 사각문에서

설계 당시(1976년) 이 부근 집들은 낡고 오래된 가옥들이었다. 도쿠가와 막부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시타마치 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후 전쟁을 겪은 서민들과 장사치들이 모여 살던 빈촌이었다. 옛 목조건물들이 조금씩 남아있는 무질서한 거리에 마치 양갱이라도 자르듯 낡은 자취를 들어내고 그 안에 ‘콘크리트 상자’를 집어넣어 만든 최초의 ‘현대주택’ 이었다. 이 작품은 안도에게 일본현대건축학회상을 안겨주었다. 인생의 방향을 바꿔준 전환점이었다.

과묵하고 금욕적인 노출 콘크리트 건물정면은 거리를 향하고 있었다. 도로에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출입을 위해 한가운데 뚫린 구멍 하나가 전부였다. 건조하고 무뚝뚝한 배치다. 매끈한 벽 사이 사각 구멍으로 잠입하듯 들어가야 현관문이 숨어있다. 그러나 밝은 통로로 이어지는 실내는 완전히 아늑한 동굴의 모습이었다.

상상했던 차가운 공기는 아니었다. 포근하고 친밀한 구조였다. 동물의 둥지 혹은 생명체가 들어있는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선사시대의 혈거처럼 바깥이미지를 완벽하게 바꾸는 반전이 숨어있었다. 앞마당은 기분 좋은 외부의 거실 같았다. 식당이나 티 하우스 역할에 충실할 것 같다. 콘크리트 벽을 따라 들어오는 빛은 매시간 다양한 표정을 연출해주는 자연 캔버스였다. 비좁지만 ‘빛의 정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 스미요시 나가이의 중정. 햇빛이 드는 다용도 공간
▲ 스미요시 나가이의 중정. 햇빛이 드는 다용도 공간

“위대한 건축물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건물 안에서 잠을 깨보는 것이다”(찰스 무어. 1925-1993. 미국 현대건축가)라고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어서 그랬고 물리적으로도 허락되지 않는 구조였다. 가금 찾아오는 방문객들이 연립으로 상상하는 크기의 규모는 더더욱 아니었다. 물론 지금의 눈으로 보기에는 접어주고 봐야 할 곳이 많지만.

비가 오면 방에서 방으로 이동할 때 우산을 써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집. 그래서 에어컨이 필요 없이 바람과 빛으로만 살 수 있게 지어져 지금까지도 순례코스가 되었으니. 괴짜 건축가가 만들어낸 기묘한 공간이다. 집은 생활의 실마리가 되는 부분들이 모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자연스러움 또는 온갖 사소한 부분들이 다 스며들어야 정이 드는 공간이다. 그렇게 본다면 스미요시 주민들은 오히려 건축가의 의도대로 살아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안도는 좁은 콘크리트 공간에 소우주를 원했다. 쓸모없는 구석을 모두 없애서 오히려 풍요로운 집이나 고요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장품이 별로 없는 무덤 같은 분위기가 나는 이유다. 그러나 설계와 바탕의 집요한 일관성은 결국 무릎을 꿇게 한다.

스미요시에는 수학적인 분할에 의한 기하학적 정합성과 소우주처럼 응축된 거주 공간,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작은 틈들이 모여 있다. 20세기 주택사를 장식하는 명작은 소박함으로 그 깊이를 더 담아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독학과 방랑에서 얻은 영감이 심플하고 단순한 건축미학으로 승화된 것일까.

“명상적 초월의 이면에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치열성과 긴장감이 필요하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직시하고 그걸 뛰어넘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동양관조사상을 최초로 건물에 투사한 안도 다다오. 공고 기계과를 마치고 권투선수와 목수로 떠돌던 그가 겪어 온 혼돈의 세계에서 건져 올린 해답일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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