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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가(傷時歌)의 냉소를 피하려면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8년 01월 08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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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조반정(1623)을 일으켰던 지휘부가 창덕궁으로 들이닥쳤을 때 왕조의 종말을 예감했던 광해군의 왕비 유 씨는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질렀다. “지금의 거사가 종사의 미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대들의 영달을 위한 것인가”

광해군은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했고 페모살제(어머니를 폐위시키고 동생을 죽임)에 과도한 토목공사로 이미 원성이 높아 쿠데타 발생이 그리 놀랄 일만은 아니었다. 왕비 유 씨의 독기어린 일갈이 훗날 어떤 미래를 암시하는지 아마도 그들은 몰랐던 것 같다.

그때의 동아시아 정세는 지금과 판박이였다. 조선이 그토록 섬겼던 천자의 나라 명은 오랑캐 후금에게 밀려 요동을 내주고 수세에 몰렸다. 명은 조선을 이용해 후금을 막아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광해군의 교묘한 중립으로 묘수를 찾기 어려웠다.

이때 마침 인조반정이 일어나준 것이다. 명은 정통성을 인정받으려는 인조를 이용해 후금을 견제하는 전략에 매진했다. 인조반정 세력에게 즉시 사신을 파견해 체면을 세워주고 왕조를 인정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대신 은과 인삼을 싹쓸이해 명에 바치게 함으로서 나라의 곶간을 바닥까지 긁어냈다. 사람들의 고통과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 이후 우왕좌왕하던 인조정권은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을 자초해 후손들에게 찢어버리고 싶은 역사를 물려줬다.


▲ 남한산성 내성에서 이어지는 외성 성곽 앞에서.

▲ 남한산성 내성에서 이어지는 외성 성곽 앞에서.

피난지 남한산성에서 주화론과 척화론 사이를 파고 든 겨울추위는 혹독했다. 무능한 정권의 수장 인조는 버티다 못해 삼전도로 내려왔다. 맨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여진족 대장 홍타이지에게 당한 능욕은 우리 모두 기억하는 그대로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이마를 바닥에 박는(삼배구고두례) 의식으로 패전국의 예를 갖추었다. 아들 소현세자, 삼학사, 유생, 양민, 부녀자 등 50만 명이 심양으로 끌려갔다. 죄 없는 여인들에게 씌워진 ‘화냥년(환향녀)’의 치욕은 아직도 남아있는 부끄러운 유산이다.

아. 너희 훈신들이여

잘난 척 하지 마라

그들의 집에 살고

그들의 토지를 차지하고

그들의 말을 타며

또 다시 그들의 일을 행하니

너희들과 그들이

돌아 보건데 무엇이 다른가.

인조가 가까스로 이괄의 난을 진압한 뒤 도성에서 민초들이 불렀던 상시가(傷時歌)다. 상시가는 고단한 시절을 한탄하는 노래다. 정권은 바뀌었으되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 엉망인 국방과 외교, 피폐한 민생은 매한가지였으니 백성들의 한이 옹알거리는 노래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상시가는 매국노들이 들끓던 한일합방 때까지 조선 고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인조반정세력도 과거 정권이 저지른 잘못과 혼란을 수습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지만은 분명했다. 이를 실천하기위해 초기 많은 노력이 시도되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반정으로 정권을 잡은 인조와 서인들은 집권 3년 만에 이전 광해군과 북인들이 행하던 정치 난맥상속으로 똑같이 빠져들었다. 기막힌 역사의 악순환이었다.

오랑캐들을 물리치려고 내걸었던 대동법, 호패법, 군적법은 수포로 돌아갔다. 반정 공신 이괄이 함경도 변방으로 쫓겨난데 대한 원한으로 한양을 공격하는 바람에 궁궐이 불타고 임금이 도망가야 하는 기막힌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마터면 왕조가 사라질 뻔 했다. 그런데도 정신 차리지 못했다. 반정당시 약속했던 탕평책은 안중에도 없었다. 권력남용과 적산탈취, 인사비리가 끓이지 않았다.

400년 시간차이만 걷어낸다면 인간사 끝없는 반복의 윤회가 놀랍다. 알고 있으면서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최상의 바보들이나 선택하는 영역이다. 상시가의 냉소가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인조의 어두웠던 역사를 부지런히 뒤져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은 상시가 대신 그저 박수치며 즐거워 할 일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뿐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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