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야누스의 두 얼굴 보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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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야누스의 두 얼굴 보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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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유신사에 꽂힌 이후 나는 사케를 즐겨 마신다. 사케는 비싸고 부담스러운 술이 아니라 그저 일본 서민들의 반주거리다. 지역과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쌀을 발효시켜 담가 낸 일종의 '문화' 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잔의 사케가 세상을 즐겁게 만들기까지는 무수한 ''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룩이 균주의 역할을 하면서 맛을 내는 것이다. 막걸리, 포도주도 마찬가지, 세균의 조력과정을 거쳐 사람들의 입을 달궈준다. 

이 세상에 '' 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인체는 모두 균으로 이뤄져 있다. 자연 상태의 모든 생물도 그렇다. ''은 지구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롭거나 해롭다. 이롭기도 하고 해롭기도 한 균은 많지 않다. 이 범주에서 예외를 찾는다면 보톡스가 될 것이다. 보톡스는 보톨리눔 톡신의 준말이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독소에서 근육계 치료제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1895년 벨기에의 시골마을 엘젤에서 갑자기 3명의 남자가 목숨을 잃었다. 원인은 동네에서 7일전 있었던 장례식 때 먹었던 훈제햄 때문. 사망원인을 조사하던 의사 에밀 피에르가 이 훈제햄에서 '보톨리눔' 이라는 독소를 분리해냈다. 이것이 오늘날 널리 쓰이는 의료용 물질 보톡스의 원조다 

우리나라는 보톡스 강국이다. 주름개선 치료제로 시술을 받아보지 않은 연예인이 없을 정도다. 비용만 있으면 누구나 시술을 원한다. 사정이 이러니 '보톡스공화국'이라는 비난도 낯설지 않다. 먹고 살만해진 중국 상류층들이 서울로 은밀히 호화 보톡스 의료여행을 오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보톡스는 매우 다양한 질병치료제다. 한국에서는 90퍼센트가 주름개선제로 쓰이는데 반해 외국에서는 60%가 치료목적으로 사용된다. 미국 엘러건사가 상업용으로 유통(1989)시키면서 오늘날 '보톡스'는 친숙한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보톡스는 무서운 독성제다.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근육을 이완시키는 치명적 독소다. 신경근 말단에서 아세틸콜린의 방출을 억제해 근육의 미완성 마비를 진행시키는 물질이다. 일제시대 악명 높은 마루타 부대 생체실험용으로 이용되었고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보톨리눔 대량 살포 위험에 맞서 미군이 연구 끝에 백신을 개발했다. 걸프전의 이라크와 시리아, 북한이 보톨리눔 화학무기 위협국가로 지목되고 있다 

보톨리눔 톡스는 공기가 없는 곳에서만 배양되는 혐기성 세균이다. 전 세계에 조금씩 퍼져있다고 보면 된다. 일본의 옴진리교 테러 때 범인들은 사린가스 외에 보톨리눔 톡스도 사용했다고 자백했다. 강력한 독성 때문에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생물테러가 가능한 탄저균과 함께 고위험 카테고리 A 물질로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부터 보톨리눔 독소증을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해 의심환자 발생 시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시스템으로 정해놓고 있다. 환자발생 여부를 정부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물테러에 악용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법률로 감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료나 미용에 쓰이는 보톡스는 고도로 희석된 상태의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전하다. 보톡스 사용에 따른 과민증이나 부작용으로 사망한 경우는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국내의 보톨리눔 톡스 보유와 관리는 매우 허술하다. 질병관리본부는 업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보톨리눔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이를 검증할 방법이나 확인해야할 법적근거도 없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놓고 있다. 업체가 신고하는 대로 허가를 내주는 것이다  

보톡스 균주를 어떤 경로로 확보하는지 알 수 없다는 설명에 불안감은 증폭된다. 탄저균 못지 않은 맹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톡스가 국민생활용품처럼 인식되어 널리 쓰이고 있는 현실에 비해 관리는 매우 허술하다는 반증이다. 국가별로 한 개 회사를 지정해 엄격히 DNA 염기서열을 관리하고 있는 선진국의 보톡스 균주관리에 대해 우리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젊어지고 팽팽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보톡스는 알고 보면 야누스의 두 얼굴인 셈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제대로 관리되고 잘 쓰여져야 국익을 보호하고 국민의 피해를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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