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전을 기하겠다'는 정부 발표, 책임감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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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전을 기하겠다'는 정부 발표, 책임감 안 보여
  • 김재학 법무법인 율성 변호사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11월 14일 0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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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 고용시장의 최대 이슈는 채용비리다. 이미 주요 은행장이 사임했고 관련 공기업은 더 늘어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처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만전을 기하겠다"는 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메르스 사태 등 소비자 관련 수많은 사건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 답변의 단골메뉴다. "만전을 기한다"는 일본식 표현이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자리에서 피해구제 확대 방안을 추진하고 재발방지 대책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만전을 기한다는 말의 의미는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사실상 대다수 국민들에게 정확히 그 의미가 와 닿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만전을 기한다는 말은 우리 고유의 표현이 아니다. 혹여 만전(萬戰)으로 오해하여 전투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겠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다. 국립 국어원에 따르면 '만전(萬全)'은 万全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미 1977년부터 순화 대상어로 분류되었다. 만전을 기하다'는 표현은 1977년부터 '빈틈없이 하다, 틀림없이 하다' 등으로 순화하여 쓰도록 권해지고 있다. 

순화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정부 부처의 공식 발표에서 사용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임에도 사고가 터질때마다 면피성 용어로 자주 쓰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가 만전을 다하겠다는 사건 사고의 경우 대개는 국민 다수와 관련된 문제인 경우가 많다. 국민들의 일상생활과 소비자들의 권익에 관련된 문제가 대부분이다. 정부부처에서는 국민과 소비자의 권리를 위해 빈틈없이 그리고 철저히 처리하겠다는 의미로 만전을 기하겠다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 말에는 정부의 대책을 사후약방문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각오와 달리 국민과 소비자를 보호해야하는 법 규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위에서 말한 가습기 살균제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제는 우리의 실생활과 분리될 수 없게 된 수많은 화학물질들은 환경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의 규제를 엄격히 받고 있다. 법망의 허술함으로 생각보다 국민과 소비자를 직접 보호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당장 유독물을 관리하고 심사하는 내용을 담은 화학물질관리법은 제품의 최종 사용자인 소비자를 위하여 적용되는 법률이라고 보기 어렵다. 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을 제조, 수입, 판매하는 것을 취급의 의미로 두고 있기 때문에 주로 화학물질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한다. 게다가 기존에는 수입업체가 제시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그 유해성을 평가했다. CMIT와 MIT 등 가습기 살균제용 유해 물질들이 국립환경과학원을 손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산품들을 관리하는 공산품안전관리법은 가습기 살균제가 세정제로 판매될 경우와는 달리 살균제제로 판매될 경우 제조업자에게 자율안전 확인 및 신고의무에 대한 근거를 규정해 두지 않았다. 관계 부처로서는 공산품안전법에 따라 신고 되지 않은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 및 그 유해성을 확인할 의무나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조차 없었다. 현재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은 규제 및 검사 절차를 간소화하여 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에 흡수되었다.

화학물질은 신고 시 명칭을 조금 바꿈으로써 「의약외품 범위지정 고시」에서 정하고 있는 의약외품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유해 화학 물질일지라도 보건복지부나 식약처 등의 관리 망을 벗어나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도 청소용으로 신고하였기 때문에 여러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요컨대 '만전을 기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유해 화학물질은 여전히 우리의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조속한 제도 보완으로 막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빠른 기술발전은 그만큼 빠른 법제도의 보완을 필요로 한다. 국가가 기술발전으로 인해 새로 생겨날 문제를 모두 예측하고 제도를 미리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의 신체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도상의 빈틈이 확인되는 즉시 그 빈틈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의 '만전을 기한다'는 말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미리 준비한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같은 문제가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의 준비를 기울이겠다는 말로 들린다.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말 '만전을 다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김재학 법무법인 율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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