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를 보험설계사라고 부르지 못하는 보험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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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설계사를 보험설계사라고 부르지 못하는 보험업계
  •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대표 admin@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10월 13일 14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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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은 서출로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요즘 시대에도 그런 예가 있다.

보험을 모집하는 보험설계사를 법정용어인 '보험설계사'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보험' 이라는 용어는 빼거나 감추고 '생활', '금융', '재무' 등으로 포장하여 약간씩 다르게 각 회사 마다 생활설계사(life planner), 재무설계사, 파이낸셜 플래너(Financial Planner), 라이프컨설턴트(Life Consultant) 등으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보험설계사는 2003.8월 보험업법이 바뀌기 전까지는 보험모집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보험업계에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며 시대 변화에 맞추어 바꾼 것이 '보험설계사'이다. 그럼에도 보험설계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이다. 아니! 보험을 판매하면서 보험을 판다고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보험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을 보완하는 제도이다. 보험은 비슷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의 위험을 제3자(보험회사)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장치이다. 보험을 통해 각자가 겪을 수 있는 손실을 한데 묶음으로써 손실의 통계적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의 위험을 제3자에게 전가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보험료로 손실을 보상해 준다. 

그래서 보험은 인간이 만든 가장 합리적인 경제제도라고 한다. 보험은 좋은 제도임에 틀림이 없다. 보험업계에서도 좋은 제도라고 자랑하고, 그래서 소비자에게 가입하라고 권유하고 판매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좋은 '보험' 제도를 보험업계에서는 제대로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숨기거나, 덮어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보험은 보험일 뿐이지, '생활','금융','재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생활, 금융, 재무설계의 일부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그럼에도 '보험'을 판매한다고 내세우지 못하고, 적금과 비슷한 저축성 보험이라니, '재무설계'해 준다고 내세운다. 애시당초 접근부터 아예 소비자를 속이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재무설계는 하지도 못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솔루션은 '보험' 가입으로 귀결된다.

보험업계 스스로가 보험이라 내세울 수 없을 정도로 보험의 신뢰와 이미지가 나쁘니까 좋은 이미지의 용어로 덮어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실제로 보험설계사 자신들의 "業"을 나타내는 이름마져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으면서 어떻게 소비자에게 "좋은 제도, 좋은 상품"이라고 보험을 팔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우리나라 보험소비자들이 느끼는 보험 산업에 대한 신뢰도는 전 세계 꼴찌라는 것이 정설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캡제미니(Capgemini)가 전 세계 주요국 보험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신뢰도 설문조사인 '세계보험보고서(World Insurance Report 2013)'에서 세계 5위의 보험시장인 한국의 보험산업이 신뢰도 면에서는 '꼴찌'를 기록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뿐 아니라 우리나라 보험 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도와 이미지의 '하위수준'은 국내외 여러 보고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보험연구원의 '보험시장 신뢰도 설문조사'에서도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39명 가운데 89.7%인 35명이 '보험산업의 신뢰도와 이미지가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낮다'고 답했다.  
 
이들은 보험산업의 이미지가 타 금융업에 비해 낮은 이유에 대해 '보험설계사와 대리점의 전문성 부족과 보험사간 과당경쟁, 상품의 복잡성' 등을 꼽았다. 보험업계 수장들 스스로가 보험산업의 부조리와 신뢰성 부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험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인식, 이미지, 신뢰도가 아무리 '바닥' 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바꾸어야지, 이름을 바꾸어 소비자를 속이는 것은 더욱 용납하기가 어렵다. 보험산업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든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불완전판매와 부당한 보험금지급 거부로 인한 지급분쟁이다. 금융감독원 소비자 민원의 절반 이상이 보험민원이다.

이것부터 고치고 소비자들의 신뢰를 새로이 쌓아 나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이것을 고치지 않고 '보험'자체를 숨기고 소비자를 속이는 한, 보험에 대한 신뢰 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금융산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그런 면에서 보험산업은 첫 단추 부터 잘못 꿰어져 있는 것이다.  이름 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인데, 이름을 폼 나게 바꾼다고 소비자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보험설계사'란 제대로 된 이름을 쓰고 보험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한 걸음씩 추진해 나가야 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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