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잉글랜드 코츠월드. 인간을 초대한 신의 영지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8월 14일 월요일

opinion_top_01.jpg

바람이 불고 음산한 안개가 뒤덮으리라는 상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해나 미세먼지에 움츠러든 선입견으로 노출을 걱정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황홀한 푸른 하늘과 대칭으로 깔린 녹색의 평원, 여기에 간간히 뿌려지는 빗줄기가 연주해내는 교향곡은 대지의 위대한 서사시였다. 영원을 알지 못하고 생을 마쳐야 하는 미천한 내가 신의 초대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실눈을 뜨고도 한참을 보아야 그 끝이 윤곽으로 어른거리는 지평선은 언어의 표현을 거절하는 경외감이었다.

잉글랜드의 보물이라고 자랑할 만 했다. 600년 전 중세 영국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코츠월드(Cotsworld. 영국 중부의 세계적 명소, 털이 곱슬한 양의 이름이기도 함)는 시작부터 가슴을 뛰게 했다. 잔잔한 구릉지대에 펼쳐진 그린의 향연은 이곳이 인간세계와 가깝되 결코 인간의 땅이 아닌, 신의 영지임을 실감하게 했다. 고도 300미터 높이에서 생성되는 최적의 공기 속에 목장과 마을과 초원이 빚어내는 이상향 이였다.

코츠월드의 석회암 지붕은 시간의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쪼갠 돌을 다듬어 가지런히 얹고 정성스럽게 이어 만든 박공지붕은 이끼가 피어올라 지나온 날들의 기억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담장도 벽도, 지붕도 모두 석회암 풍경이다. 대문과 골목 마다 예외 없이 내걸린 꽃 화분은 낮은 시냇물 소리를 타고 정경의 세계로 흘러가고 있었다.

▲ 코츠월드 스완호텔 앞 시냇가에서

▲ 코츠월드 스완호텔 앞 시냇가에서

세익스피어 고향인 스트렛포드 어폰 에이번부터 남쪽 옥스포드까지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초지는 애초 양들이 뛰어놀던 목장으로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유명한 로마시대 도시 바쓰와 세번강 상류를 지나 탬즈강 하류로 연결되는 비옥한 트라이앵글이다. 글로스터셔, 옥스퍼드셔, 워릭셔, 윌셔, 우스터셔 등 6개 카운티 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바이버리(Bibury) 빌리지였다.

크림색 돌들이 잘 다듬어진 마을을 수놓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벌꿀색깔로 변해가는 돌조각 벽채 사이로 육중한 문양이 새겨진 클래식 철제문들이 조화롭다. 누구나 한번쯤 머물고 싶어 하는 스완호텔 앞 시내를 건너 삼각지붕 물결이 중세의 골목길로 나를 이끌었다. 타운하우스 분위기의 알링턴로우(Arlington Rdw) 마을길이 코츠월드 심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면서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의 대명사다. 근처에는 로마 유적지가 산재해 있었다.

▲ 코츠월드의 상징인 알링턴로우 둘레길

▲ 코츠월드의 상징인 알링턴로우 둘레길

현대 정원의 개념을 만든 시인이자 건축가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는 그의 책 ‘지상의 낙원’에서 이 바이버리 마을을 “가장 아름다운 잉글랜드의 상징”이라고 극찬했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코츠월드를 통째로 사들이고 싶어서 5번이나 왔다 갔는지 짐작할 만 하다. 모리스는 힐링이 필요할 때마다 비버리 마을에서 하염없이 걷고 서성거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우리는 전혀 아름답지도 않고 아무런 개성도 없는 단순한 건축물에서 살고 또 일하는 것은 아닌가. 크기에 따라 위치에 따라 돈으로 평가받는 그것들은 너무도 천편일률적이다. 아름다운 집, 멋진 생활은 더 이상 없지 않은가. 그곳에 아름다운 마음도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과연 우리는 즐겁게 일 하는가. 우리의 노동은 정말 가치 있고 보람되며 즐거운가. 휴식은 그것을 누리기 위해, 돈을 벌고자 일하는 과정뿐이어서 과연 즐겁다고 할 수 있을까. 마지못해 하는 고역은 아닌가.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닌가. 그야말로 사는 것이 고행이 아닌가?”

자연에서 진정한 삶의 에너지를 찾고자 했던 모리스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명제이기도 하다. 코츠월드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영국의 모든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을 전개했고 오늘날 역사적 유산을 온전하게 보전하는데 빛나는 공헌을 했다. 근대 공예운동과 아름다운 책 만들기로 영국사회 뒤집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세계를 휩쓴 유토피아 디자인과 생활예술은 코츠월드가 가져다 준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썸머그린은 갈등의 바다를 떠돌다 만난 해안선 같았다. 병든 일상의 나를 소독하고 일으켜 세우는 특효약처럼 여겨졌다. 노동과 이재에 찌든 속세와 절연하는 평화의 치료제로 이만한 처방전도 찾기 힘들 것 같다. 오랜 기다림 위에 올라탄 듯 눈이 아플 때까지 색다른 대지의 장엄함을 담아내던 나의 시선은 돌멩이가 물속에 가라앉는 속도로 급속히 평온해졌다.

▲ 그린 지평선의 광활한 코츠월드 풍경

▲ 그린 지평선의 광활한 코츠월드 풍경

바이버리 둘레 길의 끝은 들판 가득 ‘라벤더 팜’ 이었다. 보랏빛 꽃들이 지천에 널려 하늘과 ‘수직의 수평’ 을 이루고 있었다. 이 오솔길이 메마른 감성에 소나기를 퍼부었다. 오래된 돌담을 돌며 철학과 문학과 인간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그들 사이에 걸쳐져있던 수수께끼 같은 길들을 찾고자 갈망했다. 인간의 정신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면서 우주안의 다양한 것들이 어떻게 서로 어깨를 기대고 있는지 조금씩이라도 알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문을 끌어내는 힘으로 잠겨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마자랭 추기경의 첩보원이 날짜 변경선을 어떻게 밝혀내고 ‘전날’ 을 회복했는지의 물음(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전날의 섬’)과 멜크의 수도사 아드소(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 주인공)의 한탄이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곳은 들판이 보이면서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고 했던가. 단순한 인간의 말들이 이곳에서는 진리의 ‘로고스’ 가 되어 공중으로 떠다니는 듯했다.

코츠월드의 사색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앞서간 영국의 비결이었다. 대문호 세익스피어와 위대한 예술가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뉴턴과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이 공부했던 옥스포드의 영재들에게 이상의 날개를 달아준 벌판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옥스포드대 캠퍼스 교회)에 앉아 두 손을 모으면 생각의 점들이 코츠월드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섭리의 구조였다. 그들이 가장 가치 있는 에너지를 창조하도록 영감을 준 디딤돌이었다. 인간을 압도하는 위대한 자연은 노동의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최고의 비타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 컨슈머타임스(http://www.cstime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