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레슬링 PLA '쇼다운 쇼', 링 붕괴도 이들을 막을순 없다(경기리뷰)
상태바
프로레슬링 PLA '쇼다운 쇼', 링 붕괴도 이들을 막을순 없다(경기리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김종효 기자)
[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악!"

비명소리와 함께 방금 전까지 링을 휘젓던 조경호가 링에서 사라졌다. 가슴이 철렁했다. 프로레슬링 시합 중 링의 최상단 로프가 떨어지면서 그곳에 몸을 의지했던 조경호 역시 링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 최상단 로프가 무너져 내리며 조경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사진=김종효 기자)
▲ 최상단 로프가 무너져 내리며 조경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사진=김종효 기자)

승패가 정해져 있는 프로레슬링이고, 전세계 최대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서도 링이 무너지는 연출이 있기에 실제 상황인지 아닌지 확언할 수 없는 상태. 곧 조경호가 다시 링으로 올라와 시호와 시합을 재개했음에도 현장의 팬들은 웅성거렸다.

경기가 종료된 뒤 PLA를 책임지고 있는 김두훈이 나와 현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원인은 로프를 지탱하던 한쪽 코너의 고리 부분이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PLA의 책임이 아닌, 링 제작업체의 관리 부분 문제로 볼 수 있으나 김두훈은 먼 길 현장까지 온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준비한 최고 수준의 경기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어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로프가 끊어진 것이 아니라 연결고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기에 긴급처방조차 불가능했지만 현장 관중은 모두 박수를 보내며 오히려 선수들을 격려했다. 박수에 응하듯 선수들은 최상단 로프가 없는 가운데서도 당황하지 않고 최고의 시합을 보여줬다. 한두 번 경기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큰 어색함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시합을 갖는 PLA의 현장대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12일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PLA 소극장에서 국내 프로레슬링 단체 PLA(Professional Live Action) 8월 흥행인 '쇼다운 쇼(Showdown Show, 이하 한글명으로만 표기)'가 열렸다. 단체 이름과 이번 대회명에서도 엿볼 수 있듯 PLA는 화려한 엔터테이닝 프로레슬링을 보여주는 단체다.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볼거리가 많고 기믹(프로레슬링에서의 캐릭터)이 정확하며 경기의 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이번 '쇼다운 쇼'는 '승부가 있는 쇼'라는 의미와 프로레슬링이 쇼라면 '정말 쇼다운 쇼를 보여주겠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함축돼 있다. 네이밍 센스가 기발하면서도 PLA의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보인다.

1. 조경호(챔피언) vs. 시호(도전자): PLA 인천지역 챔피언십


이번 대회엔 총 4경기가 준비됐다. 오프닝 매치로 조경호와 시호의 인천지역 챔피언십이 열렸다. 초장부터 화려한 경기로 흥을 돋우겠다는 경기 배치였다. 

조경호와 시호의 대립은 상당히 주목할만 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기 대립이다. 한류 프로레슬러로 불리며 국내는 물론 세계적 수준의 프로레슬링 무대에서도 손색이 없는 실력의 조경호는 시호의 프로레슬링 스승 역할을 해왔다. 시호는 탁월한 습득력과 운동 신경, 유연성 등으로 조경호의 스타일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현 시점에서 조경호와 시호는 국내 프로레슬러 중 최고의 테크니컬 레슬러로 자리매김했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조경호와 시호는 지난 2013년 첫 시합을 가진 뒤 팬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스승과 제자라는 배경을 모르더라도 화려한 동작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이들의 시합은 매번 WWE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다만, 시호는 2013년 첫 시합 후 조경호와의 3연전에서 단 한 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번 시합의 초점을 'Streak(연승)'vs'Broken(저지)'에도 맞출 수 있기에 대립이 더 재미있어졌다. 실제로 PLA에서 사전 공개한 조경호와 시호 대립 프로모는 조경호가 연승을 거둬 4-0이 될 것이냐, 시호가 승리해 둘의 전적을 3-1로 만들 것이냐를 중심으로 제작됐다.

언제나 그랬듯 둘의 경기는 '믿고 보는 경기'였다. 앞서 언급했듯 최상단 로프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이들은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들을 모두 선사했고 관중을 흥분시켰다. 기술의 향연 끝에 경기는 더블 카운트아웃으로 끝났다. 

조경호는 타이틀을 지키게 됐지만, 경기 후 시호가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졌고 관중은 환호로 이 대립이 계속 이어지길 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흔히 볼 수 없는 장기 대립에, 대립이 가진 배경도 짜임새가 있고, 경기의 질도 계속 향상되고 있기에 나온 당연한 반응이라 풀이된다. 특히 조경호는 경기 후 마이크워크와 시호에게 슈퍼킥을 날리는 모습으로 악역전환을 암시하는 듯 했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대회 후 조경호는 링에서 추락한 당시를 언급하며 몸상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다는 대답으로 안심시켰다. 오는 9월 일본에서 시합을 앞두고 있는 조경호는 PLA 인천지역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한 채 일본으로 건너갈 전망이다. 다만, 카운트아웃으로 챔피언을 지켰다는 것은 본인 역시 뒤끝이 남는다는 말로 시호와 한 번 더 경기를 했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도 내비쳤다.

2. 진예석 vs. 김세현: 싱글경기


김세현의 데뷔전이다. 김세현은 '미스터 고구려'라는,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인 기믹을 갖고 등장했기에 시선을 강탈했다.

데뷔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세현은 괜찮은 경기를 한 편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 여러 곳에서 보였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큰 무대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상대를 부상 입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다. 긴장감과 부담감이 평소와는 다른 무브로 나타나곤 한다. 물론 김세현은 이 정도의 위험성을 동반한 것이 아니었지만, 향후 경기에선 조금 더 힘을 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세현의 기믹은 박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경기복까지 기믹을 고려한 완벽한 세팅이었다. 경기 내에서도 해당 기믹을 조금 더 살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는 알맞는 대립 상대를 만난 뒤 기믹을 이용한 비중을 늘려나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

경기는 김세현의 데뷔전 패배로 끝났다. 군입대한 PLA 선수 진개성 동생인 진예석은 김세현에게 데뷔전에서 쓴맛을 보여준 뒤 신발로 머리를 때려 굴욕을 한 번 더 선사했다. 아래서 언급하겠지만 뽀리맨이 단시간에 급격한 성장을 거둔 사례를 보면 김세현 역시 빠른 시일 안에 PLA 주요 로스터로 오르리라 기대해본다. 물론 진예석 역시 성장해 군 제대 후 형인 진개성과 함께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3. 쓰마쉔 vs. 불사조: 싱글경기


링에서의 경기 자체보다 경기 내의 스토리텔링이 매우 빛났던 경기다. 연극 배우이기도 한 불사조는 애드리브와 스크립트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모습으로 관중이 경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링에서의 관록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얘기처럼 불사조의 경험이 빛을 발했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중국판 루세프'라 불릴만한 쓰마쉔의 매니저가 이번 경기의 키포인트로 작용했다. 계속해서 불사조의 시선을 분산시켰고 경기 승패에도 관여했다. 경기의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하면서 관중도 즐겁게 하는 동시에 관중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주요한 역할을 충분히 했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경기는 쓰마쉔의 승리로 끝났다. 쓰마쉔의 매니저가 수플렉스를 사용하는 불사조의 다리를 잡아 쓰마쉔의 핀폴승을 이끌었다. 분하게 패배한 불사조였지만 곧 쓰마쉔과 매니저를 응징했고, 마지막까지 팬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불사조는 오늘도 "즐거운 인생!"을 크게 외쳤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대립이 몇 번 이어지지 않는 경우 단 한 경기에 스토리텔링 요소를 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불사조는 전혀 어색함 없이 이 경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토리텔링 요소를 모두 담아냈다. 최근 프로레슬링이 링에서의 경기 질을 우선시하는 추세지만, 이런 불사조의 모습은 다른 프로레슬러들이 배울만한 점이다. 엔터테이닝 요소가 중요한 프로레슬링에서 경기의 기본기만큼이나 중요한 포인트다.

4. 김두훈(챔피언) vs. 뽀리맨(도전자): PLA 인터내셔널 챔피언십


단순한 개그 캐릭터였던 뽀리맨이 단기간에 이 정도까지 성장할 줄 누가 알았을까. 경기 내내 쉬지 않고 말을 해 웃음을 주는 모습은 그대로, 링 안에서의 프로레슬링 능력은 훨씬 더 좋아졌다. PLA 인터내셔널 챔피언십까지 치른다는 말에 물음표를 던졌지만 결과는 한 번 더 경기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남겼다.

김두훈은 한국어로 하는 마이크워크를 국내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하는 선수라고 평가된다. 사전 제작된 프로모에서 보여줬듯 지속된 노력으로 완성된 이런 자연스러운 한국어 마이크워크는 국내 팬들이 대립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해준다. 경기 스타일도 시원시원해서 그의 시합엔 볼거리가 늘 풍부하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김두훈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 같은 경기였지만 뽀리맨은 그만의 캐릭터를 제대로 살렸다. 후반의 갑작스런 스프레이 사용은 관중들이 '혹시'라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반전적인 요소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후반엔 김두훈에게 처절하리만치 갖가지 기술을 얻어맞고 패배했지만, 뽀리맨의 성공적인 챔피언십 도전기였다. 


기술이 많다는 것은 프로레슬링에서 매우 큰 장점이지만, 링에서의 경기는 단지 기술을 많이 쓴다고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뽀리맨이 보여준 기술의 수를 갖고 논하기보다는 다른 의미에서 경기 운영력은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심지어는 기술을 접수하는 것까지 놀랍게 성장했다. 이런 성장이 김두훈과 대립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발휘됐다. 김두훈과 뽀리맨은 흠잡을 것이 없는 경기를 보여줬다.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 (사진=김종효 기자)

챔피언 벨트를 지킨 김두훈은 뽀리맨을 응징함으로써 챔피언의 위상을 보여줬다. 경기 후 어린이 관중에게 팬서비스 하는 모습도 매우 좋았다. 특히 김두훈은 경기 내내 어린이 관중을 신경쓰면서도 자신의 이미지도 유지하는 영리한 모습을 보였다.


대회가 끝난 후 김두훈은 모든 선수들을 링으로 불러 관중과 사진촬영을 하게 하는 등 프로레슬링에 '커튼콜'을 도입해 박수를 받았다. 또 다시 한 번 링에서의 갑작스런 사태를 언급하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경기장을 떠나는 관중 중 이 사태에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은 없었다. 최상단 로프가 떨어지는 사고가 없었다면 더 좋은 경기가 나왔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털어놓는 관중은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수준급 경기를 뽑아내줬다는 것에 감탄하는 관중이 더 많았다. 아마 링이 붕괴됐어도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끝까지 '쇼다운 쇼'를 보여줬을 것이다.

기자는 국내 프로레슬링의 문제점을 꼽으라면 자본과 팬들의 관심, 그리고 지속성을 언급하곤 한다. PLA는 무엇보다 지속성 측면에서 문제점을 탈피한 단체다. 그렇기에 WWE에서도 보기 힘든 장기 대립이 나올 수 있고, 충분한 배경 요소가 갖춰진 챔피언십을 치를 수 있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스토리는 분명 관중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최우선적인 조건이다. 그런 것이 갖춰진 PLA가 다음 대회에선 어떤 모습으로 관중을 찾아갈 지 기대된다. 그리고 언제나 국내 프로레슬링 대회를 보고 나면 느끼는 것이지만 '직접 보면 다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