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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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CEO
  • 최동훈 기자 cdhz@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07월 19일 07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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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토리 아키오 지음/오씨이오/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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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최동훈 기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무한경쟁시대'는 속도를 갖고 있다. 이는 절대적인 수치를 지니고 있지도 않거니와 사람에 따라 빠름 또는 느림을 느끼는 정도는 달라서 이에 적응하는 수단과 방법도 다르다.

열심히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이따금 남의 수준을 평가한다. '저 사람은 흐름에 발 맞춰 사는구나', '이 자는 옛날 사람 같아'.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저자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신속하게' 내려진다. 그런데 동시에 의문이 든다. 'CEO가 어떻게 거북이 마냥 느릴 수 있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CEO는 명석하고 지혜롭고 셈이 빠른 유형의 사람으로 떠올리기 마련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다수고,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 자질은 기본 소양이 아니겠냔 말이다.

제목의 주인공이기도 한 저자는 그런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그에 대한 옛날 얘기부터 꺼내자면,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한 말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 "너는 머리가 나쁘니 굳이 대학 갈 생각하지 말고 대학 나온 사람 쓰는 일을 해라".

그는 학창시절 열등생이었다. 학급에서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학생이었고 고등학교 입시에서 줄줄이 낙방했다. 어머니가 쌀 한 가마니로 거래한 덕에 겨우 입학할 수 있었다.

4년제 대학은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고 단기 대학에 운 좋게 추가 합격했지만 학업은 늘 뒷전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광고 회사에서도 영업 실적은 최하위였다. 결국 6개월 만에 잘렸다. 사정사정해 재입사했지만 결국 반년을 못 버티고 퇴사 당했다. 그에겐 희망이 없어 보였다.

뭐라도 해 먹고 살자는 생각으로 연 게 가구점이었다. 하지만 대인공포증이 있어 손님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다. 회사는 당연히 적자를 이어갔다. 그렇게 늘 '루저'같은 삶을 살 것 같았던 그의 일상에 변곡점이 나타났다. 한 컨설팅 회사의 주도로 다녀오게 된 '미국 가구업계 시찰 여행'이었다.

고국 일본보다 훨씬 앞선 미국 시장을 목격한 그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미국의 풍요로움을 일본에 전하고 싶다, 일본인도 미국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게 하고 싶다'. 저자는 이 때가 지금 자신의 성공을 부른 첫 번째 요소로 꼽는다.

그는 "내 힘으로 사람들 월급을 세 배 올려주기 힘들지만, 가구 가격은 3분의 1로 낮출 수 있지 않을까"라고 혼자 되뇌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주거 환경을 자유롭게 꾸미고 바꿀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의 그는 이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면 그의 가구점은 고만고만한 동네 여타 가구점들과 경쟁하다 어느 순간 공중 분해됐을 거라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망한 가구점들의 가구를 싼 값에 사들여 되팔다 도매상의 감시를 받고 범죄자처럼 운영을 이어가기도 했다. 사장이 됐다고 똑똑해지지 않듯, 그의 어리숙한 모습을 보고 회사 운영 능력에 의구심을 가진 직원들은 하나둘 직장을 그만뒀다. 새로운 아이템 도입은 몇 년 간 적자를 면치 못하기도 했다.

그는 "내 자신이 늘 '꼴찌'라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아를 비우고 남의 장점을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전형적인 사례인 것. 이 같은 태도로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한 그는 당시 자국 업계에서 최초로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 해외 공장 건설 등 돌파구를 개발했다.

이쯤에서 그가 일군 회사를 소개해야겠다. 1967년 회사 전신인 '니토리 가구점'에서 시작된 일본 유통업계 1위 기업 '니토리'다. 일본이 극심한 경제 위기에 봉착했던 시기인 1990년대말~2000년대초 '잃어버린 20년' 중 일부 기간엔  623% 성장(매출액 기준)을 달성했다. 나라에선 저성장 파고를 이겨낸 대표적 불사적 기업으로 꼽고 있다.

미국, 중국, 대만에 걸쳐 437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고, 지난해 한 해 동안 6500만명이 니토리 제품을 구매했다. 연 매출은 5129억엔(5조1290억원). 지난 2월 기준 '30년 연속 매출·이익 증가'를 기록해 일본 4000여개 상장사 중 1위를 차지했다.

'뭘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모두가 몰두하고 있을 때 그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불가능이라 여겨진 성취를 일궜다. '거북이 CEO'는 장기 저성장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 기업들에도 좋은 본보기와 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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