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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영혼이 머무는 리버풀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2017년 06월 2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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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었다. 간간히 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제법 굵게 쏟아졌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가는 ‘아이리쉬 레인’ 이다. 리버풀 메튜 스트리트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비틀즈 신화’ 에 끌려 온 이들이다. 56년 전 첫 공연으로 전설이 탄생한 그 현장의 중년들은 이미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비틀즈 성지에 도착했는데 잠깐의 비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표정들이다.

‘캐번 클럽’ 은 그렇게 세월을 거슬러 찬란한 과거를 지키고 있었다. 존 레논의 귀여운 동상이 입구에 서있고 옆으로 이어지는 벽에는 지구상의 모든 언어로 휘갈긴 찬사메모들로 가득했다. 말 그대로 동굴 같은 지하 펍(Pub)에서 반항적이었던 10대 소년 4명은 운명처럼 20세기중반을 두드렸다. 로큰롤 역사를 다시 쓰게 했고 그 중심에 우뚝 섰다.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룻밤 단돈 5파운드를 받고 무대에 선 소년들(1961년)은 2년 뒤 300파운드의 출연료를 받았다. 60배로 대우가 달라졌으니 ‘예술벤처 스타트업’ 이라고 해야 할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런던과 미국진출로 3년 만에 연간 천 만장씩의 노래집을 팔아 치웠다. 그룹해체까지 8년 동안 만든 곡들은 12장의 디스크에 담겼고 5억장이 나갔다. 수수께끼 같은 기록이다. 빌보드 차트 역사상 1위곡 20개를 제조해낸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1999년 타임지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피카소와 비틀즈를 선정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았다.

▲ 비틀즈 신화를 탄생시킨 리버풀의 캐번클럽

▲ 비틀즈 신화를 탄생시킨 리버풀의 캐번클럽

“존(레논)은 비틀즈의 영혼이었고 조지(해리슨)는 비틀즈의 정신이었으며 폴(매카트니)은 비틀즈의 심장이었고 링고(스타)는 비틀즈의 드러머였다” 영국인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다. 그룹이 깨지고(1970년) 천상의 싱어 존 레논의 암살(1980년)로 4인조 비틀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노래는 세계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레논의 유품 속에서 발견된 미발표곡을 나는 좋아한다. ‘새처럼 자유롭게(Free as a bird)’, 하늘을 훨훨 끝없이 새가 되어 날고 싶은 욕망은 그나 나나 인간의 본능 같은 것이겠지. 레논은 그래서 일찍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리버풀은 영국 대표 항구다. 아이리시해에 인접한 머지강변을 중심으로 비상했다. 노예무역의 중심지로 인류 산업혁명의 거점으로 근대를 관통해온 도시는 이제 비틀즈의 잔영만이 짙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노래는 아직도 매년 1500만 명을 이 도시로 불러들인다. 18세기 대항해 시대, 태양의 제국을 거치고 아일랜드와의 연락 거점일 때가 전성기였다. 오후의 석양처럼 스러져 가는 역사 속으로 광장을 건너는 늙은 바람만이 흘러간 추억을 속삭이듯 머뭇거렸다. 강변에서 너무도 익숙한 4명의 얼굴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 올 것 같다.

▲ 리버풀 머지강변 비틀즈 4인 청동상에서
▲ 리버풀 머지강변 비틀즈 4인 청동상에서

허기를 참지 못해 알버트 도크(빅토리아 여왕 남편의 이름을 딴 조선소)의 조그만 카페에 들렀다. 조선소의 영광은 무너지고 고요한 바다만이 주머니 같은 수면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1700명이 희생된 비극의 타이타닉호가 만들어지고 출항했던 장소다. 상상했던 폐허는 없었다. 대신 완전히 다른 컨셉으로 디자인된 예술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피쉬 앤 칩(생선과 감자튀김)’ 을 시키는 동안 그레고리안 성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소리의 방향을 찾아 귀가 움직였다. 비틀즈의 레퍼토리들이 수도원 수사들의 합창으로 리메이크되어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가벼운 낮술은 오후의 바람을 행복하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다. 알버트 도크 난간에 머리를 기대고 머지 강가에서 올라오는 해풍에 몸을 맡겼다. 아직 폴 메카트니가 이 도시에 남아 성모마리아의 품속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렛 잇 비’ 의 가사처럼. 아련한 선율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기사작위를 받은 폴만이 옛 둥지를 맴돌고 있는 셈이다. 밥 딜런과 함께 공연을 준비한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들은 70을 넘긴 노인들이다. 생전에 한 무대에서 두 거장을 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바람만이 알겠지. 바람만이 알겠지(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곡)”

▲ 영국의 전성기를 견인한 알버트 도크 예술촌 (옛 조선소)

▲ 영국의 전성기를 견인한 알버트 도크 예술촌 (옛 조선소)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발명품’ 비틀즈는 곧 바로 21세기의 전설이 되었다. 어떤 찬사도 언어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데 동의한다. 이제 시대라는 관객만이 남았다. 지나간 생명보다 흘러가는 세월이 그들 앞에 서있다. 까닭도 없이 가끔 흥얼거리는 노래 “오블라디 오블라다(인생은 흘러간다는 아프리카 말)”처럼 말이다. 비틀즈는 잠깐 동안 만나 불처럼 타오른 뒤 긴 이별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인생의 모든 인연이 그렇듯이.

맥주 한잔을 들고 부두를 서성거리며 비틀즈가 출연한 영화 ‘HELP’ 를 떠올렸다. 심장을 재물로 바쳐야 하는 성스러운 곳에서 마법의 반지가 우연히 폴 매카트니의 수중에 들어가고 동양의 성자 카일리가 반지의 주인공 심장을 꺼내 신을 달래려고 머나먼 리버풀까지 찾아가는 스토리다. 영화는 실패했지만 삽입곡 ‘예스터데이(Yesterday)'는 전 세계 청춘들의 가슴을 태워 재로 묻었다.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 그녀가 왜 떠났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런 말도 없이“. 청년시절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았다. 그러다 ”인생이 왜 허무하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런 말도 없이“ 라고 묻고 싶은 때가 되었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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