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상태바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 최동훈 인턴기자 cdhz@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06월 15일 08시 47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케리 이건 지음/부키/1만3800원
PHOTO_2017061584606.jpg

[컨슈머타임스 최동훈 인턴기자] 삶은 소중하다. 그래서 매번 살아내는게 쉽지 않다. 이말의 뜻은, 소중히 간직하는 대상일수록 그것이 더 무결한 상태이길 원하는 우리 마음 때문이다. 내 옷에 묻은 먼지는 무심히 털어내지만 갓난 자식 눈가에 맺힌 눈물에 우리는 심히 예민해진다.

하지만 아끼고자 하는 마음이 거듭 쌓이면 때론 벅찰 때도 있다. 내 삶은 왜 이 모양이지, 좋은 일은 내게만 생기지 않는걸까. 더 많이 원할수록 부족해지는 것인데도 우리는 불편한 감정을 잘못 해석한다. "이 인생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닐까" 같은 생각.

하지만 우리는 이 삶이 종결되길 원하지 않는다. 사는 것도 고통이지만 죽음은 더 피하고 싶다. 살아있는 것은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죽었다'가 아닌 '살고 있지 않다'로 받아들인다. 죽음은 현재 상태에서 완전한 반전이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긋지긋한 삶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미화한다. 그에 대한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거기 포함된 하나가 '죽기 전 삶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꾸미는 동기부여 혹은 원동력'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만든다.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자고 즐기는 본능에 충실하다가 인생의 종착지에 문득 도착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우리는 결심한다. 뭐라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누려야겠다고, 되도록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늦춰야겠다고. 그 다음엔 인터넷 서핑을 통해 남들이 하는 '죽기 전 꼭 해봐야할 00가지 목록'을 정리하는 것이다.

저자도 이번 저서 '살아요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에피소드처럼 '아직은' 살아있지만 죽음을 핥으며 매일을 고통스럽게 보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사랑하는 동반자를 만나 결혼해 아이를 출산하며 모자람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출산과정에서 맞은 진정제의 부작용으로 환각, 망상, 정신분열과 자살충동 등 정신질환을 겪으며 그의 삶은 한순간 무너지는 듯 느꼈다고 한다. 아이가 무릎에 앉아 엄마를 보며 웃고 있지만 아이가 이미 죽었다고 여기며 슬퍼하던 그였다. 그가 아팠던 이유는 그의 삶이 마치 통상적인 의미의 모양새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자신에게만 들이닥친 것 같은 이 불행에 외로움과 절망을 느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의 삶이 전환점을 맞은 건 버킷리스트를 세워 인생을 채우는 방식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원래의 생활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얻으면서였다. 그는 호스피스에서 일하며 거기서 만난 요양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생의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둔 사람들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그는 주의 깊게 듣는다. 자신보다 더 죽음의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되려 그에게 살고 싶은 마음을 키운다.

몰래 따 먹은 사과의 맛과 달아날 때 가슴과 다리에 느끼던 터질 듯한 감각, 스키니 디핑을 처음 했을 때 맨몸에 닿은 물의 느낌, 아기 머리에서 맡은 냄새, 야외에서 사랑을 나눴을 때 맨살을 스치던 바람의 느낌. 특히 그중엔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경험 중 하나, 즉 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싱그러움이 피어나는 걸 지켜볼 새 없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가 한 말, "어쨌든 아이가 내 곁에 숨쉬고 있을 때도, 그렇지 않은 지금도 나는 그 애의 엄마에요. 앞으로도 그럴거구요. 아이는 내게 큰 선물을 줬어요." 저자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80대 할머니가 그에게 남긴 한마디, "약속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멋진 삶을 살아요."

우리는 삶의 궤적을 특별하게 꾸며야만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라는 유일한 존재로 이미 남다른 그림을 그렸다. 진정 살았다고 할 수 있을 때는 남이 세운 기준을 충족시켰을 때가 아니라 나만의 작품을 완성할 때가 아닐까. 이 순간 내 호흡은 마주앉은 사람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했지만 그 음식이 준 영양분으로 각자가 해내는 일은 개개인에게 아주 고유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높은 존재다. 행복한 사람이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죽음도 더 이상 아파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삶보다 더 나은 삶이 될 게다.

저자 케리 이건은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워싱턴대학교와 리대학교에서 학사 학위,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결혼 후 겪은 정신질환으로 인해 완치 후에도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시간 깊은 우울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호스피스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는 채플런으로 일하며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 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안을 얻고난 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