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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안으로 빛을 영접하라. 제임스 터렐

김경한 justin747@cstimes.com 기사 출고: 2017년 05월 30일 오전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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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암흑은 평화보다 공포에 가깝다. 고립무원의 절망감이나 존재가 비존재 속으로 침몰하는 것 같은 느낌이 그렇다. 좁고 캄캄한 공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에서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빛이 아니라 느리게 흘러내리는 빛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이 발원지다. 손으로 푸르스름한 면을 만져보았지만 텅 빈 공간이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그 안에 거대한 방이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놀라움과 신비함의 연속이었다. 강렬하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빛은 얼마 만에 나를 완전히 다른 사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간성은 이미 지워져 속세와 절연된 상태로 더 깊은 빛의 심원을 탐하게 되었다. 촉감에 의지한 공간에서 후각과 짐작만으로 공기의 움직임을 느껴야 하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기하학적 사면에서 이뤄지는 파랑과 빨간빛의 오묘한 교차는 미천한 인간들을 신들의 울타리 밖으로 노출시키는 듯했다.

빛은 끓임 없이 마음 안쪽을 들락거렸다. 그 순간 외부의 빛이 아니라 안쪽의 빛을 찾아 침잠해 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웠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3차원 공간이 평면으로, 평면이 입체공간으로 확장해 갔다. 물질적인 빛이 보이는 시야를 거슬러 올라와서 내면의 비타민으로 체화되어 나갔다. 육체의 겉은 매일 씻어내지만 정신을 지배하는 영혼은 청소할 기회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린 터렐의 가상현실

▲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린 터렐의 가상현실

제임스 터렐((1943-. 미국)은 화가이기 이전에 퀘이커 교도다. 빛의 연구를 통한 설치미술가이며 심리분석가다. 그의 손끝에서 빛은 전혀 다른 의미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광막한 캘리포니아 고향의 자연과 애리조나 사막의 빛을 찾아 50년 외길을 걸어온 이력이 독특하다. “안으로 들어가서 빛을 영접한다. 모든 인간은 자기안의 신성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기르는 법을 배우면 다 구원 받을 수 있다” 역시 퀘이커 신봉자였던 할머니의 말이 메타포가 되었다. 덥수룩한 수염은 70대 중반을 넘긴 노년의 라이트 아티스트(Light Artist)를 영적으로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켜주고 있었다.

터렐은 빛 자체를 가두거나 조금씩 모아 통로를 만들어 주면서 움직이는 작품들을 시도했다. 빛이 인간의 발상과 사고를 전환시킨다는 철학으로 미술의 영역 밖을 탐구해왔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보츠, 미술가 로버트 어윈과 함께 빛의 생리학도 연구 중이다. 조각, 설치미술, 현상학, 인지생리학 모두가 지대한 관심영역이다. 현대의 ‘위대한 화가 50인’ 반열에 들어간 이유가 있었다.

빛을 탐구한 피에르 프란체스카(1450년)의 ‘그리스도의 세계’ 나 자코모 발라(1910년)의 ‘거리의 빛’ 같은 걸작들도 있었지만 터렐의 시도와는 근본이 달랐다. 그는 이 경지를 뛰어넘어 물리적이고 현상학적인 지각과 관련된 설치미술의 근원적인 미학을 개척해 냈다. 모든 가능한 상상력 너머의 영적인 신성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압권이다.

▲ 애리조나 사막에서 대지예술 작업중인 제임스 터렐

▲ 애리조나 사막에서 대지예술 작업중인 제임스 터렐

일본의 명품 나오시마(오카야마 앞바다의 지중미술관)에 고정 전시중인 터렐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만 해도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원주 오크밸리 ‘뮤지엄산’ 에서 그의 이색적인 걸작을 만났을 때 빛의 세계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상하이의 조우는 완벽하게 다른 감동을 안겨주었다. 서울과 제주도에서 기획했던 특별전을 통해 터렐은 한국 팬들과 인연을 맺었고 거장의 가치는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상하이 엑스포의 파도가 지나간 전시장에 롱미술관(龍美術館)은 우뚝 서있었다. 근대의 고가철도를 뚝 잘라내 거친 철골구조를 살린 가운데 땅에 지어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택시운전기사부터 시작한 미술관 주인의 입신스토리는 또 다른 흥밋거리다. 학교를 갈수 없이 가난했던 유이첸(劉益謙. 1963-. 신리이그룹. 新利益集團 회장)은 운전과 행상으로 떠돌다가 가죽공장으로 종자돈을 모았다. 중국주식시장은 그에게 갑부의 길을 열어줬다.

크리스티의 큰손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미술전시기획의 개척자로 변신한 것은 중국 예술계의 엄청난 선물이었다. 600년 전 명나라 때 만들어진 황제의 찻잔 ‘계향배’ 를 홍콩 경매장에서 천3백 억 원에 사들이는가 하면 얼마 전에는 모딜리아니 누드화를 천8백 억 원에 매입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롱미술관은 아시아 최고의 제임스 터렐 전시관이다. 여기서 그의 빛은 온전한 평가를 받고 있었다.

▲ 상하이의 명소 롱 미술관에서

▲ 상하이의 명소 롱 미술관에서

텅 빈 공간과 공간이 이어질 뿐인데 그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빛을 찾는 노마드가 되었다. 내가 그 빛을 인지하는지 그 빛이 나에게 스며드는지 끓임 없는 여명의 빛을 찾아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사람들부터 가까이 꾸었던 꿈들까지 혼란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터렐의 신비한 빛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거리면서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 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이런 시대에 모든 것은 새롭고 또 모험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소유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지만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아늑하다. 왜냐하면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별들이 내뿜고 있는 빛과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게오르규 루카치. 헝가리 출신 철학자 ‘소설의 이론’ 중에서)

신(神)이 떠나간 시대, 이제 우리에게 이 광대한 빛을 주는 우주는 알 수 없는 세계로 공포감과 불안의 대상이다. 더 이상 신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간 홀로 우주와 맞서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 크고 짐작조차 하기가 어렵다. 아늑하지 않으면 무한한 우주는 인간들에게 허무를 안길 뿐이다. 별과 우주가 동행했던 유년시절, 신화를 듣고 노래를 부르며 살았던 그때를 터렐의 프리즘 속에서 더듬고 있었다. 흩어진 빛의 들판에 버려졌다가 정제된 빛의 세계로 진입한 기분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사유를 가득 길어 올린 느낌이었다. 낡은 영혼의 바다를 탈출해 나오기 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무릇 모든 삶이 그러할 것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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