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보물 병마용'의 낮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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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보물 병마용'의 낮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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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보물 병마용'의 낮은 자세

 

 

 

 

 

 

 

 

인간이 저질렀다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가능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고통을 견뎌내고서야 눈앞에 펼쳐진 이 불가사의가 현실이 되었을까를. 실물크기의 수많은 병사들은 아직도 눈빛이 살아있었다. 금방이라도 진격명령을 기다리는 연병장의 군대 대오 같았다. 진시황의 고분군은 그 웅장함으로 방문객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절대왕권의 힘으로 빚어낸 고대의 지하왕국을 칭찬만 하기에는 이성의 그림자가 쉴 새 없이 고개를 드는 현장이었다.

2천년을 넘게 지탱해온 '병마용' 갱도는 곳곳이 무너지고 부서져가는 중이었다. 현재까지 출토된 1100여개의 토상 가운데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거의 없어 보였다. 안면이 뭉개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갔거나 칼집이 유실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한곳에 사람들은 장사진을 이뤘다. 중국정부가 특별보존중인 진관지보(鎭館之寶), 보물 중에 진짜 보물로 여기는 '무릎 꿇은 병마용' 이다. 옷의 무늬와 머리카락까지 선명하게 보일정도로 보관상태가 완벽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진나라의 특별 유산이다.

 

▲ 중국 시안(西安) 병마용 박물관의 진관지보
▲ 중국 시안(西安) 병마용 박물관의 진관지보

 

특수 유리 상자속의 주인공은 시선을 압도했다. 적지 않은 기다림 끝에 사면에서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이 보물의 '온전한 생존' 이유는 무릎을 굽힌 자세다. 1974년 농부의 신고로 발굴이 시작된 1호, 2호, 3호 갱(坑)에서 찾아낸 것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발굴단과 중국 고고학계가 들썩거릴 만한 수확이었다. 영생을 꿈꿨던 무모한 황제의 비밀커튼 너머 숨겨진 '호위병' 이 후세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진관지보는 모두 서있는 다른 병마용 때문에 완벽한 상태가 가능했다.오랜 세월 천정이 무너지고 흙이 덮여가는 동안 주변의 수 천 개가 일정한 키로 숲을 이룬 보호막 덕분에 '처음처럼' 생생함이 유지되었을 것이다. 무릎을 굽힌 포즈는 왼쪽 발이 허리와 삼각형을 이루며 상체를 지탱하고 있어 안정적이었다. 몸통이 곧추선 늠름한 자태는 살아있는 기상 그대로였다. 주어진 '겸손함' 이 2천년 세월을 거뜬히 관통하게 해준 열쇠였던 셈이다.

겸손은 함부로 나서지 않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적절한 낮음은 비겁함이나 나약함과는 구별된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으면 쉽게 넘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다. 웃자라고 솟아오르면 꺾이지 않고 견딜 수가 없다. 자연의 이치다. 자세가 높아지면 원하지 않는 풍상을 겪을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스스로 교만해져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한다. 그러다 무리를 하고 망가지는 것이 보통의 세상사다. 역사가 말해주는 진실이다.

 

▲ 가장 큰 규모의 병마용 1호 갱 전시관에서.
▲ 가장 큰 규모의 병마용 1호 갱 전시관에서.

 

권력은 비정한 승부의 세계다. 나라 안팎의 권력교차로 숨이 가쁜 5월이다. 보복의 아우성과 원망의 야유가 들끓는다. 독일의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게 정치"라고 했다. 마오쩌둥은 "피 흘리는 정치가 전쟁이고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정치"라는 말로 험난했던 현세를 자조했다. 진관지보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상의 겸손함과 낮음의 미학이 주는 영원성을 암시하고 있다. 당장 높은 자세의 돋보임은 낮은 자세의 오랜 생명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칭기스칸의 성공은 부하 야율초재의 전략을 존중하면서 비롯되었다.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으로만 인물을 발탁했던 덕분에 당대의 탁월함이 빛났던 그는 "한 가지 이익을 얻는 것이 한 가지 해로움을 제거함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드는 것이 한 가지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고 간파했다. 공존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기보다 욕심을 제거하는 쪽이 더 현명한 선택이다. 탁월함은 낮은 자세로 잘못만을 예리하게 도려내는 것이다. 그래야 진관지보처럼 오래 빛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대표기자 justin-7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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