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베끼기 경쟁에 피해자는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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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베끼기 경쟁에 피해자는 소비자
  • 전은정 기자 eunsjr@cstimes.com
  • 기사출고 2017년 05월 17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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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끼기가 도를 넘었지만 아이디어 상품 법적 제재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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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전은정 기자] 금융권의 '베끼기' 전쟁이 도를 넘어서면서 소비자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상품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비슷한 상품의 홍수 속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특히 은행권의 경우 과거 예·적금상품을 베끼는 것에서 벗어나 어플리케이션(앱), 금융 서비스, 복합점포까지 따라하는 등 범위가 매우 넓어진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앱 구현에서 점포 개점까지…'가지각색'

금융권에서 상품 아이디어를 따라하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통합 멤버십 서비스 앱은 지난 2015년 말 하나금융그룹(하나멤버스)이 시작했다. 이후 우리은행(위비멤버스), KB금융그룹(리브메이트), 신한금융그룹(신한판클럽) 등이 비슷한 앱을 속속 내놨다. 이들 앱의 주요 기능은 은행·카드·증권 등 금융 계열사와 연계해 통합 멤버십 포인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바일 전용 자동차대출은 신한은행(써니 마이카 대출)이 시작했다. 이후 KB국민은행(KB모바일 매직카대출), 우리은행(위비 모바일 오토론), KEB하나은행(원큐 오토론), NH농협은행(간편 오토론)도 비슷한 상품을 내놨다. 자사 모바일 앱을 이용한 100% 비대면 대출이 특징이다.

증권과 은행을 결합한 복합점포도 신한금융에서 시작했다. KB금융, NH농협금융 등도 뒤를 이었다. 하나금융은 올해 안에 개점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 비용·시간 절약…서로 간의 베끼기 '용인'

금융사들이 이처럼 상품이나 서비스를 베끼는 이유는 비용과 시간 때문이다.

투자비용과 개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사 상품을 통해 미리 시장 반응을 살펴본 후 출시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금융권은 이 같은 점을 감안해 사실상 베끼기를 용인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 A씨는 "상품을 먼저 내놓더라도 1~3개월 안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타행 상품들이 나온다"며 "고객군과 마케팅 전략이 다들 비슷하기 때문에 (타행 상품이나 금융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차용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모습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 B씨는 "은행들은 손쉽게 상품을 출시해 인기에 편승하고 시장을 키우려는 심산이 있어 제재를 원치 않는다"며 "공들여 내놓은 상품의 경우 특허를 신청하고 상품명을 출원하는 정도로 베끼기를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받고 있다.

30대 소비자 오모 씨는 "최근 신탁 상품에 가입하려고 여러 은행을 가봤는데 은행이름만 다를 뿐 상품 내용이 거의 다 똑같았다"며 "게다가 여기저기서 '최초'를 외치는 통에 혼란스러웠다"고 호소했다.

◆ 은행, 배타적사용권 '있으나 마나'

현재 은행업계는 증권·보험업계와 같이 특정 상품에 대한 독창성과 유용성이 인정되면 최소 3개월에서 1년간 독점 판매를 허용해주는 배타적사용권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실효성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에도 배타적사용권이 있지만 활성화가 안 되고 있다"며 "은행은 여수신 기능이 기본이고 공공성도 강해서 배타적사용권을 획득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은행들의 상품은 대부분 아이디어에 관련된 것이라 법적인 제재가 불가능하다.

양진영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예적금이나 대출상품, 복합점포 같은 것들은 아이디어에 가깝기 때문에 지적재산권으로 인정이 안 된다"며 "특수한 알고리즘이나 소스코드 등을 사용해 만들지 않는 이상 일반 사람들도 구상해 낼 수 있다고 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이어 "이 때문에 다른 은행의 상품을 보고 비슷한 상품을 내놔도 제재할 수 없다"며 "다만 독특한 상품명이나 브랜드, 이미지까지 비슷하게 출시한다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 관계자는 "베끼기 관행이 반복되면 금리 인하 위주의 상품을 내놓는 경쟁이 지속될 수 있다"며 "차별화 된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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