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묻지마 갭투자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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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묻지마 갭투자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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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김수정 기자] 강동구 소재 한 아파트 시세를 물으려고 최근 해당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에 투자자를 가장해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저런 매물이 있다고 설명하던 중개인은 마지막으로 30평형대 1층 매물을 강력 추천했다. '현 세입자가 놀이방을 운영하고 있어 공실 위험이 없다. 5000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갭(Gap) 투자' 권유다.

3년여 전 수도권 집값이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퍼진 부동산 투자기법이 있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갭 투자다. 피 같은 내 돈을 안 들여도 된다는 의미에서 '무(無)피 투자'라고도 불린다.

방법은 간단하다. 전셋값과 매매가 차이가 차이가 적은 아파트를 고른 뒤 전셋값과 매매가격의 차액만큼만 내 매입하면 된다. 매매가가 5억원, 전셋값이 4억3000만원인 아파트를 자기자본 7000만원만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전세 끼고 매입한 아파트는 다음 세입자를 찾을 때 보증금을 대폭 올려 시장에 내놓는다. 전세물건이 귀해 비싸더라도 새 세입자는 구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 값이 오르면서 보증금 이자와 시세차익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이자 부담 없이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편한 방법이다.

이런 식으로 집 한두 채가 아니라 수십 채를 매입했다는 소위 '고수'들의 무용담이 언제부턴가 인터넷 투자 카페에 흘러 넘친다.

지금까지만 보면 갭투자의 성과는 괜찮다.

최근 3년 간 수도권 아파트값은 10% 올랐다. 2013년 하반기 하락세를 벗어나기 시작해 2014년 3% 상승 반전했고 2015년엔 6% 치솟았다. 작년에도 2% 올랐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3년간 18% 올랐다. 전국으로 확대해봐도 비슷한 추이다.

매매가와 전셋값 격차는 점점 줄었고 지역에 따라 누군가는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을 것이다. 수입이 이렇게 짭짤한데 방법도 쉽고 많이들 하니까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어떤 투자나 그렇듯 갭 투자에도 리스크가 있다. 시장 침체기에 갭 투자한 집의 전셋값이나 매매가가 하락하면 투자금을 날리고 손실을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뉴타운 재개발이 활발할 때 갭 투자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이후 경기악화로 개발사업이 대거 중단되면서 큰 손해를 봤다.

갭 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이들은 감이 뛰어나서 성공한 게 아니다. 일부는 자금력이 따라 줘서, 혹은 운이 좋아서 큰 수익을 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금융권 애널리스트 뺨치게 기술적 분석에 능한 사람들이다. 가격 변동 추이, 거래량 추이, 전세가율, 입주물량 등 기술적 지표를 분석해 리스크를 피한다.

지금 시장에선 거래 건수가 줄고 가격 상승세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미국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조기 대선에 따른 국내 정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연구∙분석 없이 뛰어드는 '묻지마' 갭 투자를 지양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 갭 투자 고수들의 달콤한 성공담에 홀려 막차를 타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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